농업안전보건센터 운영, 정말 비효율이었나?

여성농민들, ‘안전재해 교육만으론 의학적 공백 못 메꿔’

  • 입력 2024.02.08 18:28
  • 수정 2024.02.11 18:50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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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정부의 예산 효율화 기조에 따라 지난 1월 1일 농업안전보건센터(센터)가 폐업한 가운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양옥희, 전여농)이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센터는 농약중독·골격계질환 같은 농민의 직업성 질환에 대한 의학적 연구, 질환자 추적관리(농민 건강검진 기반 공동 코호트)·치료 방안 연구,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체계 구축, 건강검진 사후 상담·심층 분석 등을 해왔다. 지난 2013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가 전국 권역별로 대학병원을 지정·운영해 왔다.

정부는 유관 사업으로 농촌진흥청(청장 조재호, 농진청)의 농작업 안전재해 예방사업을 확대·강화한다는 방침이나 과연 해당 사업이 의학적 영역까지 담보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전여농은 지난달 초 농식품부와 농진청에 각각 질의서를 보내, 센터 폐지에 따른 사후 대책과 유관 사업의 내용을 묻고, 현장 의견수렴을 위한 여성농민 단체와의 간담회 추진을 요청했다. 지난달 29일에는 ‘농업인 질환 관련 연구·교육·치료 전문기관의 복원·확대’를 촉구하는 성명도 냈다. 농진청은 이에 2024년 안전재해 예방사업 내용과 오는 3월 초 간담회 추진 일정을 답해 왔고, 8일 기준 농식품부는 답변하지 않은 상태다.

여성농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센터 폐지가 급작스러운 데다 센터의 의학·보건적 기능을 이어갈 대안이 뚜렷하지 않아서다. 센터가 구축한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관련 사업, 현장 연계 보건교육 등에 만족도도 높았다.

아울러 이번 폐지는 센터 설립·운영의 정책적 방향성에도 어긋난다. 센터 운영 기간은 10년이지만 그에 대한 논의·준비·시행은 2003년 출범한 노무현정부 때부터 이명박·박근혜·문재인정부까지 정치 진영을 넘어 전 기간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 20년간 5년 단위로 수립·시행된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기본계획’에도 지속 반영된 정책이다. 이 계획은 센터 사업의 근거법이기도 한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5년 단위 법정계획으로 현재 제4차 기본계획(2020~2024년)이 시행 중이다.

농식품부 전현직 담당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농식품부도 이를 잘 알기에 센터 역할을 수년째 논의해 왔고, 예산 감소 등 부침 속에서도 운영을 지속했다. 하지만 농민질환에 대한 보건 정책 강화 및 센터 역할 확대를 못했고, 윤석열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감축 기조까지 겹치면서 결국 예산 효율화의 칼날을 막아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농식품부는 “농업재해에 대한 의학적 연구를 놓지 않겠다는 건 명확하다. (축적된) 자료도 귀하다. 앞으로 전면 확대될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도 센터 연구의 결과물로, 이 사업이 정착되면 여성농민뿐 아니라 다른 농민들에게도 확대될 수 있어 관련 사업을 놓지 않겠다”라며 “센터의 기능에 대한 평가·개선 방향을 계속 논의해 왔고, 의학적 기능도 없애지 않으려 논의 중이다. 농진청과 함께 간담회 추진 등 현장의 의견도 받겠다”라고 밝혔다.

충남농업안전보건센터가 진행했던 ‘농업인 농업안전보건서비스’. 출처=농업안전보건센터 누리집
충남농업안전보건센터가 진행했던 ‘농업인 농업안전보건서비스’. 출처=농업안전보건센터 누리집

한편 전여농이 받은 농진청 답변서를 보면, 올해 주요 안전재해 예방사업은 △농작업 재해예방 관리운영(농진청), △작목별 맞춤형 안전관리실천 시범(시군농업기술센터) △농업인 안전실천 역량강화 지원(도·시군농업기술센터)으로, 각 사업은 재해예방을 위한 관리·교육이 중점이다. 농업인 안전관리 실천·교육지원(76→215개소), 안전리더 위촉 확대 및 역량강화(420→496명) 사업은 지난해보다 확대됐다.

이춘선 전여농 정책위원장은 “교육만 강화하는 건 기본적으로 재해의 책임을 농민에게 떠넘기는 것과 같다. 농진청은 교육사업을 넘어 장기적이고 확대된 정책 전망을 정부에 건의해야 한다”라며 “농민들에게 의견 한마디 묻지 않고 없앴다는 게 문제다. 기재부가 사업 중복을 이유로 (운영 지속을) 반대했다는데 사실상 중복도 아니다. 농민의 건강은 사업의 성과를 운운할 문제가 아니다. 부족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부속 사업을 더 추진했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산재병원이 있듯 농민들도 농업재해 예방·검진·치료까지 연계되는 전문 의료체계가 필요하다. 센터의 그간 역할이 그 출발점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도 “센터는 질환 예방에서 진단·진료 방향까지 수립하고 동일 집단을 의료적으로 면밀하게 연구하는 등 엄연한 의학적·공중보건학적 기능을 수행했다. 농진청의 전문성은 이와는 다른 차원”이라며 “초고령화 상태인 농민질환 문제를 방치하기로 한 것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적은 예산이었지만 여성농민들의 호응이 좋았던 사업을 몰래 없애버린 건 정부가 농민들을 개의치 않는다는 뜻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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