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안전보건센터 폐업, 농민질환 의학 연구 이제 누가?

농식품부, 대학병원 등 지정해 10년간 운영했으나 예산 폐지

농약중독·근골격질환·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등 전담

  • 입력 2024.01.11 18:35
  • 수정 2024.01.12 09:33
  • 기자명 김수나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농민의 직업성 질환을 연구하고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을 전담했던 농업안전보건센터(센터)가 문을 닫았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가 애초 올해 예산안에 책정했지만, 기획재정부(장관 최상목, 기재부)와의 최종 협의 과정에서 관련 예산이 전액 폐지돼서다.

센터는 농식품부가 농어업인삶의질법(「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2013년부터 운영했다(농어업인삶의질법 제15조의2는 ‘국가와 지자체는 농어업인의 질환 및 업무상 재해의 원인 규명과 관련 연구·예방·치료 등을 위해 연구기관·대학교·병원 등이 농어업안전보건센터를 설치·운영할 경우 운영비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

2023년 기준 전국 5개소로 지역별(지정병원·전문 분야)로 강원센터(강원대병원·허리질환), 경남센터(경상대병원·상지근골격계질환), 전남센터(조선대병원·무릎골관절질환), 제주센터(제주대병원·농작업 관련 손상 질환), 충남센터(단국대병원·농약중독)가 있다.

“다른 산업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이 있어 작업 중 발생하는 질병과 손상에 대해 사회보장 틀 안에서 권리를 보장받지만, 농업인은 국가의 보호와 지원이라는 권리 보장이 요원한 분야로 돼 있다(센터 누리집 인사말).”

농업안전보건센터 누리집 인사말 페이지. 농업안전보건센터 누리집 화면 갈무리 
농업안전보건센터 누리집 인사말 페이지. 농업안전보건센터 누리집 화면 갈무리 

이에 따라 센터는 ‘농업인들을 농작업 관련 질병과 손상에서 보호’하고 ‘연구와 이를 활용한 예방사업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운영됐다.

구체 사업은 △농업인의 직업성 질환에 대한 조사·분석 △질환자 모니터링을 통한 농업 활동과 질환과의 연관성 파악 △질환의 사전 예방과 치료 방안 모색 △현장 지침서·프로그램 개발 등이다.

농식품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번 예산 폐지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감축 기조에 따른 영향과 예산 효율화 차원에서 단행된 것으로 보인다.

센터 운영 예산은 이미 감축 기조였는데, 2019~2020년 15억원에서 2021~2023년 6억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이에 따라 효과적인 연구 사업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고, 농촌진흥청(청장 조재호, 농진청) 사업인 농업인 재해·안전 예방사업, 지자체 농업기술센터의 농업인 안전교육 등과 중복된다는 기재부의 판단이 더해진 결과다.

농식품부 담당자는 “그동안 센터는 적은 예산으로 일부 지역에서 연구·예방사업을 해왔지만, 현장 체감도가 낮았다”라며 “농진청도 관련 연구를 하고 있고, 농어업인안전보험법(「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방교육도 확대된 만큼 농진청의 관련 사업을 강화해 운영을 효율화하라는 (기재부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농진청은 “센터가 해온 사업과 안전재해 예방 사업은 근거 법령부터 다른 사업”이라며 “이와 관련해 어떤 업무 협조나 공문도 받은 게 없다”라고 밝혔다. 다만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이 센터의 연구자료를 이관받아 이를 통계화해 ‘농업인안전365 중앙DB센터’ 누리집에서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간의 연구자료가 소실되면 국가적 손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간 센터가 해온 농민질환에 대한 ‘의료적 사업’의 지속 여부가 문제로 남게 된 셈이다.

농업재해 예방교육과 달리 의학적 조사·연구, 농민 특화 건강검진(여성농업인 건강검진 등), 농민 건강검진 사후 상담과 건강검진 자료 심층분석·연구 등 의료진과 전문 연구 인력이 맡아온 분야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현장에선 수년간 구축해서 자리 잡은 사업들이 원점이 돼버린 것에 큰 아쉬움을 표했다.

경상국립대병원 농업안전보건센터는 “농식품부가 말하기론 이제 조사·연구 쪽은 그만하고 교육 쪽에 포커스를 둬서 하겠다는 거다. 해마다 사업 방향이 바뀌기도 했고 그동안 농식품부 요구대로 해오긴 했지만, (이번엔) 상당히 아쉽다”라며 “조사·연구 파트가 맡아온 여성농업인 건강검진의 경우 그동안 교수·연구진들이 힘써 세팅을 해놨다. 교육 파트도 5개 센터에서 지역마다 돌아다니며 진행했고, 센터마다 참여 인원도 굉장히 많았다. 교육 구축할 때 아주 힘들었지만 이제 자리 잡아서 잘 되던 상황이었는데 다시 0(원점)이 된 거다”라고 전했다.

센터가 남긴 10년간의 발자취는 이제 데이터베이스(DB)로만 남게 됐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