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건강권 차별 50년 … 겨우 쟁취한 여성 특수건강검진도 위기

  • 입력 2021.08.15 18:00
  • 수정 2021.08.15 21:5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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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5개 여성농민단체가 지난 3일 세종시 기획재정부 정문 앞에서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옥희 전여농 회장(왼쪽)과 이숙원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회장이 ‘농부병 예방 프로그램 실시 의무화, 산재보험 시스템 도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여성농민 특수건강검진 예산 편성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5개 여성농민단체가 지난 3일 세종시 기획재정부 정문 앞에서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옥희 전여농 회장(왼쪽)과 이숙원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회장이 ‘농부병 예방 프로그램 실시 의무화, 산재보험 시스템 도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여성농민 특수건강검진 예산 편성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은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해 광업, 건설업과 함께 가장 위험한 업종으로 지정된 산업이다.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전국 1만여 농가를 표본으로 삼아 실시한 ‘2020년 농업인 업무상 질병 조사’에 따르면 업무상 질병 유병율이 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 100명 중 5명은 영농활동으로 인해 얻은 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다. 직업적 특성과 유병률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 및 높은 사고율에도 불구하고 농민 대부분은 지난 1964년 처음 도입된 사회보장제도 ‘산업재해보장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50년 넘도록 벗어나 있으며, 예방을 위한 특수건강검진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산재보험에 못 미치는 민간’ 농업인안전보험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농민들을 위한 별도의 장치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재보험의 빈자리를 대신할 목적으로 ‘농업인안전보험’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 보험은 보험회사(NH농협생명)에 의해 운영되는 민간보험으로, 산재보험과 같이 강제가입에 따른 무조건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정책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가입자는 약 87만5,000명으로, 전체 농가 인구(2019년 기준 약 224만명)를 기준으로 하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농민들은 산재보험과 비교해 부실하고, 신뢰가 떨어지는 보장체계를 가진 민간상품을 자부담을 져가며 가입해야 한다. 농업경영체 등록을 마친 법률상의 ‘농업인’만 국고지원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모든 상품의 보험료에 국고 50%를 지원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더 높은 의료지원이 필요한 고령의 은퇴농은 오히려 이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보장체계와 관련된 단적인 예로, 사망사고의 경우 농업인안전보험은 유족지급금으로 일반1형 6,000만원(산재형 1억2,000만원)을 지급하는데, 평균임금의 47% 이상을 유족연금으로 받거나 1,300일분의 평균임금을 일시금으로 지급할 수도 있는 산재보험에 비해 일반적으로 보상 수준이 낮다. 여기에 덧붙이는 장의비 또한 일반1형 100만원(산재형 1,000만원)에 불과한 반면 산재보험은 소득에 따라 최저 약 1,100만원에서 최대 1,600만원까지 보장한다. 그나마 산재보험에 준하는 산재형은 연간 보험료가 20만원 수준인데, 지역에 따라 지자체 지원은 없는 경우도 있어 많은 자부담을 져야만 가입할 수 있는 상황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보험이 사실상 ‘사고’의 보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애초 가입 기간이 1년으로 설계된 이 상품은 기간 내 발생한 사고에 따른 사망이나 장해에 대한 보험금 지급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오랜 시간 농업에 종사한 농민이 퇴행성 관절염 판정을 받은 경우, 또는 지속적인 농약 노출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병증의 경우 치료비 지급이 불가능하단 얘기다. 관절염 등의 근골격계 질환은 약관상 ‘특정질병’으로 따로 분류해, 수술 행위가 발생한 경우에 한해 30만원의 급여를 지급하는 데 그친다. 농약 중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사실상 인과관계 입증이 쉬운 급성 농약 중독에 한해서만 보상하고 있다.

이수진 한양대 의과대학 교수는 지난 2018년 펴낸 ‘우리나라 농업인의 농작업 재해 현황과 보상체계’에서 보험사업자가 농작업 관련 질병을 매우 협소하게 해석, ‘농업인 안전보건법’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한 질병에만 일률적으로 보상하고 이 목록에서 제외된 질병은 원칙적으로 보상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농약노출에 의한 중독 증상은 비교적 인과관계가 명확한 급성 중독부터 저농도로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발생하는 만성 중독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라며 “특히 직업성 암의 경우에는 최초의 노출 이후 수년에서 수십 년의 잠복기를 거쳐 질병이 발현되는 특성으로 인해 전문가들도 업무관련성 평가가 쉽지 않아 별도의 정밀 역학조사 등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농업인 안전보험’에서 ‘농작업 관련 질병’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업무 관련성 평가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없는 민간보험회사에서 수행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여성농민들이 겨우 딛은 첫발, ‘특수건강검진’조차 무산 위기

농민들은 자신들의 직업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랜 세월 투쟁해왔다. 특히 밭농업 종사 비율과 함께 근골격계 질환 유병율이 높은 여성농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2020년 기준 ‘농부병’을 앓고 있는 농민들의 84.6%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근골격계 질환 유병률은 여성 5.2%, 남성 3.7%로 여성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바 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여성농민단체들은 근골격계 질환을 농부병으로 인정하고, 이를 사전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부터 실시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정권교체를 이룬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 설정한 ‘100대 국정과제’의 실천 과제에 해당 내용을 명시함으로써 화답했고, 지난 2018년에는 ‘여성농어업인 육성법’에 주기적 건강검진 실시에 관한 조항이 추가됐다.

순조롭게 흘러갈 것으로 보였던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사업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기재부)의 반대로 무산 위기에 처했다. 올해 ‘예산철’에 작성된 기재부의 1차 예산안에는 시범사업을 위한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료 현장(5개 대학병원)에 설치돼 이를 수행하는 ‘농업안전보건센터’의 예산도 절반 이상 삭감됐다. 올해 여성농업인 육성계획에 특수건강검진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이후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었던 여성농민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제도를 요구한 여성농민들의 절박함은 물론이고, 이를 수용한 담당부처의 ‘진심’까지 생각하면 이러한 결정은 일방통행에 가까운 불통이라는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하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최근 시범사업 실시를 위한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농식품부는 이미 지난 2019년부터 2년에 걸친 실험 성격의 예비사업을 통해 사업을 준비했고, 연구용역을 통해 이제 시범사업 시행안까지 갖춰놓은 상황이다.

도입 이유 차고 넘치는 특수건강검진

조선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지난 7월 말 농식품부에 제출한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추진방안 연구’는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실시의 필요성을 상세하게 따져 내놓고 있다. 연구자들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40세 이상의 여성농업인과 남성농업인 모두 일반인구집단에 비해 근골격계질환의 유병률이 월등히 높았는데, 예를 들어 관절증의 연령표준화유병률은 여성농업인(32.9%), 여성일반인구(24.5%), 남성농업인(17.8%), 남성일반인구(12.0%) 순이었다.

국민건강보험 수진자료(2015년)에 대한 분석을 해보니 본인부담금 의료비 지출 역시 남녀농업인 모두 비농업인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특히 여성농업인의 지출은 근골격계 질환에서 비농업인 33만4,000원에 비해 농업인 125만5,000원으로 3.7배 높았고, 신경계통 질환은 5.2배, 뇌혈관계 질환은 4.7배, 심장 질환도 3.5배나 높았다. 금액 자체는 약간 낮지만 남성농업인 역시 비농업인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에 대해 농업인들이 비농업인에 비해 보다 중증의 상태에서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이 사업의 긍정적 효과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예상한다. 대표적인 논거로 근골격계 질환 고위험군에 대한 조기개입의 효과는 그 선례를 분석한 결과 기대할 만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 클리닉은 지난 1998년 근골격계 질환으로 일시적 업무 장애가 있었던 노동자 1만3,077명을 대상으로 조기개입 치료를 한 결과 일시적 업무장애의 39%, 영구적 업무장애의 50%를 감소시킨 사례를 남겼다고 소개했다.

농업 바깥을 바라보더라도 특수건강진단을 도입할 명분은 충분하다.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에 적용되는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제130조에서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건강진단을 규정하고 있다.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소수의 농업법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미 특수건강진단을 받고 있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24개 사업장에서 1,277명의 농림업 종사자가 진단을 받았다. 또한 이 법 15조에서는 보건관리의 의무를 지는 사업장의 유형 중 하나로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이 되는 단순반복작업 등을 하는 사업장’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한편 경찰공무원이나 소방공무원 등 특수 공무직의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특수건강검진을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정신적 장해를 일으키는 위해요소까지 표준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예비사업 참여 여성농민들도 ‘만족’

지난해 예비사업에 참여했던 여성농민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544명이 답변한 만족도 조사에서 대기시간·친절도·검진항목·건강상태파악을 종합해 산출한 종합만족도는 93.4%였다. 다만 검진항목에 대한 만족도는 83.4%로 다소 낮았는데, 보고서는 “검진항목이 여성농업인의 건강상태를 보다 잘 반영할 수 있도록 발전될 필요가 있으며 권장되는 건강행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경상대학교병원에서 검진에 참여했던 권경희(경남 합천)씨는 “솔직히 자기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이 정도의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여성농민들이 농촌에서 과연 얼마나 될 수 있겠냐”라면서도 “농민들은 자기가 아픈 것이야 다 알고 있으니, 확인의 의미를 넘어 이제 실질적으로 어떤 행동과 치료를 통해 통증을 예방하고 나아질 수 있는지 자세히 알려준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우준 기자

 

 

 

특수건강검진, 실제로 해 보니

 

2020년 전국 5개 농업안전보건센터서 예비사업 실시

검진 대상자 551명 가운데 근골격계 질환자 53.4%

“상당히 높은 수준의 유병률 … 예방 위한 조치 필요”

 

이번 연구용역에는 지난 2020년 전국 5개 농업안전보건센터가 551명의 여성농민을 대상으로 시행된 특수건강검진 예비사업의 결과도 포함돼 있다. 센터들은 신체계측·혈액검사·소변검사·방사선촬영·폐활량검사·안저검사·골밀도검사·근골격계 신체진찰·신체기능평가·체성분검사 등을 통해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과 안저질환,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폐질환 등을 진단했다.

당시 수검한 여성농민들의 일반적 특성을 살펴보면, 연령으로는 50대가 47.4%(261명), 60대가 42.5%(234명)로 주류를 차지했다. 주 작목으로 밭 작물을 다루는 여성농민이 43.2%(238명)로 가장 많았으며, 과수(19.8%)·시설(19.4%)·벼(14%)가 고른 비율로 뒤를 이었다. 또한 70%가 넘는 대상자가 최소 40세 이전에 농업을 시작하고 20년 이상 종사했다는 특징이 있다.

근골격계 질환이 대표적인 농부병으로 언급되는 만큼 농작업 유형 파악도 중요한 선행과제였다. 농작업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12개의 신체부담작업을 제시하고, 전혀·약간·자주·항상으로 선택지를 나눈 질문에서 ‘자주’ 이상의 답이 과반을 차지한 항목들이 눈에 띈다. 특히 손목과 손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일(89.6%), 팔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일(82.4%), 손으로 힘을 주어 쥐는 일(70%), 쪼그려 앉거나 무릎을 굽히는 일(63.3%) 등은 매우 높은 빈도를 보였다.

또한 농약 작업을 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83.7%에 이르렀는데, 농약 평균 노출시간을 추정한 결과는 연간 약 20시간이었다. 농약을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대행을 맡겨 노출시간이 0인 농민들도 있는 반면(19.6%) 50시간 이상 노출되는 경우(10.3%)도 있어 작목에 따라 농민 간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들이 증상을 가장 많이 호소한 부위는 허리나 엉덩이였고, 다음이 무릎과 허벅지였다. 크게 7개 부위로 나눈 신체 중 최소 하나 이상의 부위에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71.9%에 달했다.

실제 결과는 어땠을까. 근골격계 방사선 촬영을 진행했더니 수검자의 75.1%가 무릎관절 사이 간격이 4mm 이하인 ‘방사선학적 무릎관절염’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연령·비만·농작업부담을 보정한 결과). 이밖에도 손가락관절염은 50.8%에서 관찰됐는데 양손 모두 엄지손가락의 첫 번째 마디에서 가장 많이 나타났고, 왼손보다 오른손의 빈도가 높았다. 이밖에도 요추골절은 5.3%, 디스크협착은 26.5%의 검사자에서 관찰됐다.

이후 진단기준에 따라 조사한 실제 유병률 결과를 보면, 최소 1개 이상의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는 여성농민이 53.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환별로는 무릎관절염 31.8%, 퇴행성요추질환 12%, 회전근개질환 22.7%, 손관절염 22.3% 순이었다. 농약 급성중독 경험률은 35.2%로 동일한 기준으로 남성농민 1,980명을 조사했던 결과(24.7%)보다 높았다. 우울증(6.2%), 폐쇄성폐질환(1.8%), 골다공증(8.8%), 근감소증(해당없음) 등의 유병률 수준은 전반적으로 양호했다.

연구자들은 비교적 결과가 양호했던 우울증·골다공증·근감소증 등의 경우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농민들이 (애초) 건강상태가 양호한 사람으로 선택됐을 가능성, 즉 건강근로자효과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일반인구집단에서 낮은 유병률을 보이는 40대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유병률을 보이는 만큼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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