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는 먹거리 주권 포기 … 할당관세 넘어 SPS 무력화까지?

  • 입력 2024.01.21 18:00
  • 수정 2024.03.29 10:2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해 8월 31일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주최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열린 ‘무차별 농산물 수입 저지! 농업재해 직접보상 촉구! 농민생존권 사수!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기재부 청사 앞에 쏟아낸 수입 양파와 마늘 등이 경찰들 발밑에서 뒹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8월 31일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주최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열린 ‘무차별 농산물 수입 저지! 농업재해 직접보상 촉구! 농민생존권 사수!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기재부 청사 앞에 쏟아낸 수입 양파와 마늘 등이 경찰들 발밑에서 뒹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식량주권 악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할당관세 및 시장접근물량(TRQ) 확대조치에 대한 정부의 의존도는 2022년에 이어 지난해에 더욱 높아졌다. 농가를 울리는 것은 물론이요, 무엇보다도 국내 먹거리 생산기반의 영구적 손실을 각오해야 하는 추가 개방조치가 ‘세수 펑크’ 압박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젠 전통과수 산업을 지켜왔던 식물위생조치(SPS)까지 스스로 포기하는 것 아니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양경숙 국회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할당관세로 인한 세수 지원 규모는 지난 2019년만 해도 4,709억원에 불과했으며 2020년과 2021년 역시 3,742억원·6,758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2022년에는 전년도 세배 수준인 1조9,654억원까지 증가했고, 지난해 8월까지 집계된 규모가 1조6,5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역시 비슷한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1조원 수준으로 예정됐던 지원 규모가 최근 매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까닭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연중 추가 적용되는 긴급 할당관세 조치 탓이 컸다.

 

지난해 대표 피해 품목 닭고기·양파

올해도 피해 누적·악영향 계속될 듯

돼지고기·대파·고추 등 지난해 할당관세로 인해 직·간접적 피해를 본 품목만 해도 십수 가지에 이르지만, 그중에서도 할당관세의 폐해를 크게 드러낸 품목을 꼽자면 닭고기·양파를 조명할 수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식품수출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닭고기 수입량은 할당관세 물량 15만톤을 포함해 약 23만톤으로, 할당관세 조치가 시행되기 이전이었던 지난 2021년(약 12만톤) 대비 두배 가까이 폭증했다. 수입량 급증으로 인해 닭고기 자급률은 2022년 83.3%에서 76.9%로 급락하며 처음으로 80% 선이 깨졌다.

생계유통가격은 지난 2023년 7월 마지막으로 2,600원대를 기록한 뒤 내림세를 거듭해 현재 1,300원대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국내 닭고기 생산량도 올해 대비 소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수급에 여유가 있다.

‘타당성이 없다’는 대한양계협회·한국육계협회 등 업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닭고기 할당관세 조치는 또 다시 연장돼 올해 1분기에도 3만톤이 추가로 무관세 수입된다. 기간으로는 1년 9개월째, 햇수로는 3년째 총 26만톤이 넘는 물량의 무관세 수입이 이어지는 것으로, 연달아 농축산물 시장을 내주기 바빴던 무역협정의 물결 속에서 그나마 세운 30%의 관세장벽이 우리 손으로 무력화되고 있는 셈이다.

애초 자급률이 낮은 양파는 올해 극심했던 인력난에 난데없는 추가개방까지 겹쳐 생산기반 붕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양파는 지난해 총 11만톤의 물량에 대해 관세를 조정했는데, 연초 2만톤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135%의 관세를 10%로 낮췄으며, 3분기에는 관세 50%의 TRQ 물량 9만톤을 추가 도입했다. 그 결과 지난해 수입된 신선양파는 약 12만톤으로 전년 대비 약 65%가 증가했다. 양파 수입량이 10만톤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17년 이래 7년만이다.

중국산 수입 양파의 시장 공략이 수개월째 거듭된 나머지, 지난해 연말부터 수입 양파가 국산 양파와 동등한 가치로 팔려나가고 있는 점은 특히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부분이다. 1월 현재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의 국산 양파 경매가격은 kg당 1,200~1,300원 수준인데, 수입 양파의 경우 이와 비슷하거나 낙찰 건에 따라 국산보다 가격이 높은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당시 수입을 앞두고 전국양파생산자협회는 “외식산업 수요를 정부가 앞장서 고려하고 대책 없이 수입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반발했는데, 그 우려대로 수입 양파 고정 수요는 현재 경락가격으로 실존이 증명되고 있다.

 

사과 향해 쏟아지는 개방압박

정작 농민들은 아무것도 몰라

심지어 올해 들어선 사실상 철통보호의 영역이었던 전통 과수조차 수입개방의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심각한 수준의 이상기후가 계속되면서 사과·배 등 전통과수의 수확량이 급감하자 조선비즈의 ‘정부의 사과 수입이 추진되고 있다’는 첫 보도 이후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사과 수입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개진되고 있다.

사과가 정말로 수입된다면 국내 사과산업은 얼마나 타격을 받을까. 농경연은 2016년 ‘사과 SPS 수입 금지 조치 해제의 경제적 효과 실증분석’ 보고서에서 “국산·외국산 사과 간 선호가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농업 국내총생산기준 피해액은 5,980억원 수준으로 전망한다”고 짚은 바 있다. 이때 추정한 수입량은 17만4,000톤으로, 근래 3년간 가장 생산량이 많았던 지난 2022년의 생산량 56만,6000톤과 견줘 봐도 31%나 되는 양이다.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지금껏 사과·배 등의 수입을 막아온 외국산 농산물 수입위험분석 절차(IRA)와 식물위생 조치(SPS) 제도가 외래병해충의 국내 유입으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이며 이에 따른 절차 외 다른 요인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을 뿐 적극적으로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과농가들은 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이 본격화되던 시기 이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정의 문제와 함께 크게 지적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022년 현안분석보고서 ‘CPTPP 가입 추진에 따른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상의 쟁점과 과제’에서 CPTPP의 경우 이미 합의·공표된 협정문을 바탕으로 사전에 주요 내용과 그 영향 등을 어느 정도 분석하고 대비할 수 있는 만큼, 이 같은 장점을 활용해 정부가 농업계와의 ‘대내협상’에 진정성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성의만 있다면 이해관계자와 국민을 대상으로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공개적 논의와 협상을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과 생산자들은 그간 정부의 행보로 미뤄봤을 때 사실상 수입을 대비해야 한다는 신호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이와 더불어 정확한 정보와 의향을 알 수 없어 답답함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사과업계 한 관계자는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정확한 정보를 주질 않으니 농가 입장에선 진행되는 걸로 볼 수밖에 없다”라며 “만에 하나 사과가 또 흉년이 든다면 시기를 더욱 당기려 하지 않을까 예측한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