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식량주권’은 세계농민연대체 비아캄페시나가 지난 1996년 총회에서 처음 발표한 개념이다.
어디서 왔으며, 누가 생산·가공했는지를 따지지 않고 오직 먹거리에 대한 접근권 및 보장성만을 중시한 기존의 식량안보 개념은 그간 초국적 농업기업들이 이윤을 창출하고 몸집을 불릴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
이와 달리 식량주권은 우리에게 필요한 먹거리와 그 생산을 뒷받침할 농업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 자국 농업이 엄연히 기능하되, 자급률에 있어 미진한 한국 같은 나라는 식량안보를 바탕으로 식량주권의 실현을 모색함이 바람직하고, 또 당연한 일과도 같다.
그럼에도 그간 정부나 정치인들은 식량주권의 개념을 수용하고 전파하는 데 인색했고, 용어 간 혼용·오용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난 2022년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가 농정공약의 첫머리에서 식량주권 강화를 처음 언급했을 때 놀랐던 사람이 많았던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물론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식량’의 범주만 놓고 봐도 기억에 남는 건 아직 전망조차 불투명한 가루쌀과 논콩 확대 보급 대신 당정이 대통령 거부권까지 동원해 막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지난 2년 새 할당관세 조치로 인해 품목별로 수만톤씩 더 쏟아진 수입 농축산물들은 또 어떤가. 원래 도입 취지대로라면 단기적 처방으로 신중하게 활용해야 할 할당관세에 대한 의존도는 급속히 커져 사실상 상시 수급 정책처럼 기능하고 있다. 심지어는 국내에 직접적 경쟁자가 없는 수입 과일까지 물가 안정 명목으로 대거 관세를 깎아주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국민 먹거리 수급을 책임지는 주무부처가 농림축산식품부인지 기획재정부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게다가 이제는 검역조치를 근간으로 지켜온 전통 과일 시장마저 수입 농산물의 진출에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중심이 어긋난 정부 농정으로 인한 피해는 당연하게도 국내산 농축산물과 생산농민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언론의 부추김 속에 물가안정만을 우선하는 윤석열정부의 행보가 개방농정·농촌붕괴의 새 장을 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