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미국산 사과 수입하나?

  • 입력 2024.01.12 05:40
  • 수정 2024.01.12 09:31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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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윤석열정부가 ‘물가안정’ 명목하에 미국·뉴질랜드 등 외국산 사과 수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사과 재배 농민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 10일 조선일보의 경제 전문 매체인 조선비즈에서 단독 보도한 <정부, 사상 첫 사과 수입 추진 … “미·뉴질랜드와 협의중”>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는 미국·뉴질랜드와 사과 수입을 위한 검역 협의를 진행 중이다. 최근 사과값 폭등으로 소비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만큼, 물가안정 차원에서 사과 수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는 농식품부의 입장이 해당 기사에 실렸다.

농식품부는 ‘사과 수입 타진’ 보도와 관련해 낸 설명자료에서 “정부는 사과·배뿐만 아니라 오렌지, 망고 등 수출국에서 수입허용 요청한 농산물에 대해 과학적 근거에 따라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진행해 오고 있다”며, 사과에 대해선 “우리나라에 사과 수입위험분석 절차 개시를 요청한 국가는 11개국이며, 과학적 절차에 따라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입장을 밝히면서, 농식품부는 일부 언론이 제기한 ‘사과 수입 필요성 검토’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농식품부가 사과 대상으로 진행한다는 수입위험분석 절차(IRA)란, 외국산 농산물 수입 시 혹시 있을지 모를 병해충 피해 등에 대비해 수입에 수반되는 위험도를 8단계에 걸쳐 평가하는 작업이다.

미국은 1993년 처음으로 한국정부에 미국산 사과 수입허용을 요청한 이래, 현재까지도 사과 수입장벽을 풀라고 압박 중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연례적으로 발간하는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한국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사과·배 등 자국산 과일의 수입 승인 절차 및 미국산 과일의 ‘다양한 시장 접근 요청’을 신속하게 처리하라고 압박해 왔다. 미국의 압박은 2022년 한국 정부도 가담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추진 과정에서 더욱 거세졌다.

앞서 국내 다수 언론은 사과 가격 ‘폭등’ 양상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의 농산물 가격통계를 인용해 강조해 왔다. 일례로 국민일보는 1월 10일자 기사 <물가 잡겠다는데 할당관세, ‘주범’ 사과·배 제외 … 생색내기 비판>에서 사과·배 등이 최근 과일 물가를 크게 끌어올린 핵심 품목임에도 정작 수입하지 않고 있다고, 그로 인해 소비자 물가안정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문제시했다.

앞서 언급한 조선비즈 기사의 경우 농식품부의 사과 수입 검토가 “물가 안정을 넘어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측면도 있다”고 사실상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해당 언론들은 사과 가격 폭등 자체만 언급했을 뿐, 사과 가격이 왜 폭등했는지, 사과 재배 농민들의 상황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경북 영주 문수면 사과농가 장신덕씨가 우박을 맞아 손상된 사과를 수확해 놓고 들여다 보고 있다. 현장에선 심한 경우 실질 피해율이 8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권순창 기자
경북 영주 문수면 사과농가 장신덕씨가 우박을 맞아 손상된 사과를 수확해 놓고 들여다 보고 있다. 현장에선 심한 경우 실질 피해율이 8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권순창 기자

한편 국내 사과 재배 농민들은 사과 수입 가능성을 타진 중인 윤석열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전국사과생산자협회(회장 김충근, 사과협회)는 지난 11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정부에 사과 수입을 위한 모든 협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사과협회는 “사과값 폭등은 생산량이 전년 대비 30% 감소했기 때문”이라며 “사과값이 급등해도 생산농가들의 수입은 전년과 동일하다. 사과값이 아무리 높아도 생산량이 30%나 줄었기에 팔 수 있는 사과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를 수입하면 사과값이 떨어지게 되고, 사과 농가들의 수입은 평년 대비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물가안정을 핑계 삼아 수입 위주 수급대책을 펼칠 것이 아니라 생산농가를 위한 근본 대책을 펼쳐야 한다는 게 사과협회의 입장이다. 사과협회는 전년 대비 사과 생산량이 30% 감소한 원인으로 △봄철 냉해 피해와 결실 불량 △우박과 수해, 계속되는 강우로 인한 탄저병·갈반병 확산 △과수화상병으로 인한 폐원·매몰 등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재해 문제를 거론했다. 사과협회는 봄철 냉해 피해를 막기 위해 열풍 방상팬 공급을 늘리고, 꽃가루 및 화분 매개 벌 생산 확대를 통한 사과꽃 수정률 증대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사과협회는 소비자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한 근본 대책은 국내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꼭지를 절단하지 않은 사과 유통, 유통구조 간소화, 유통마진 최소화 등)임을 강조했다.

미국산 사과주스, 사과 원물 수입 앞선 ‘선발대’?

한편 미국산 사과 원물은 현재로선 수입되지 않고 있으나, 미국산 사과로 가공한 주스는 이미 국내에서 널리 시판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장 농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지난 4일, 사과 주산지인 충남 예산군의 더센트럴 웨딩홀에서 예산문화원 주관으로 열린 신년 하례회. 지역 농민들을 포함한 예산군민들이 다수 참석한 이 자리엔 미국산 사과를 갈아 만든 주스가 제공됐다. 예산군 당국부터도 예산군을 ‘사과의 고장’이라고 홍보하던 차에 벌어진 일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예산 농민들은 당장 미국산 사과주스를 행사장에서 치우라며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그럼에도 행사 주최 측은 사과주스를 치우지 않았다는 게 현장 참가자들의 증언이다.

이와 관련해 예산군농민회(회장 장동진)는 “(음료 제공 시) 사과음료를 가공하는 예산 농가들에 요청하거나 마트에 가서 (예산 사과로 만든 주스를) 산다면 바로 구할 수 있는 수량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사과음료를 올려놨다는 것은 관내 농가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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