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호 특집] IPEF·CPTPP, 두 해일 앞에 한국농업은 ‘초비상’

  • 입력 2022.06.26 18:00
  • 수정 2022.06.26 20:5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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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한국농축산연합회,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등 농어민단체 대표 및 농민들이 지난 3월 25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한국농축산연합회,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등 농어민단체 대표 및 농민들이 지난 3월 25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두 개의 해일이 들이닥친다. 이름하여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다. 이 해일들로 인해 한국농업이 완전히 끝장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농민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CPTPP와 IPEF의 공통 표적, 사과

지난 21일, 경북 예천군 반서울금당실체험마을에서 열린 (사)전국사과생산자협회(회장 김충근, 사과생산자협회) 신세대 육성교육 현장에서 권혁정 사과생산자협회 정책실장의 이야기를 듣는 농민들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한국이 FTA에 가입하면서도 사과·배 등의 품목은 세계무역기구(WTO) 위생·식물검역 조치(SPS)를 통해 수입을 막아왔다. 그러나 CPTPP·IPEF 가입 시 SPS 장벽마저 무너진다면 우리 과수산업은 붕괴할 위험성이 크다. (중략) IPEF는 발표 내용상으론 관세 철폐 관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지만, SPS 등 위생검역 관련 내용은 논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이는 수많은 FTA를 통해 관세율 인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알고, 농산물 수입·수출의 가장 큰 걸림돌인 SPS 장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CPTPP에 IPEF까지 겹친다면 결국 우리는 위생검역 주권을 포기하는 셈이고, 이로 인해 과수농업, 나아가 우리 농업·농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과수 중에서도 사과는 IPEF·CPTPP 가입국 다수가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은 작목 중 하나다. 자국산 과일을 한국에 팔려고 혈안이 된 대표적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올해 3월 발간한 ‘2022 대외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사과·배·텍사스자몽·핵과(복숭아, 살구, 매실 등)·블루베리 등 미국산(産) 과일의 한국 시장 접근이 “한국 농림축산식품부의 동식물 검역소에 보류돼 있다”고 지적하며 “미국은 한국 농식품부에 이 제품들에 대한 승인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중략) 미국은 한국에 이 과일들을 수입하도록 허용하기 위해 계속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IPEF 출범이 본격적으로 거론될 때, 미국 사과산업계에서도 IPEF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지난 3월말 민주·공화 양당의 하원의원 91명이 캐서린 타이 USTR 대표와 톰 빌색 농무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SPS 관련 장벽 제거조치가 “농식품 분야에 종사하는 수백만명의 미국인에게 의미있는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 환영하면서도 “IPEF는 (중략) 미국 농산물 수출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짐 베어 유에스애플(US Apple) 대표는 당시 “최근 몇 년 동안 보복 관세가 (사과 수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이 채워야 하는(팔아야 하는) 사과 시장이 있지만, 배에 싣기 전의 훈증 요구사항과 같은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인해 채워질 수 없다”며 “IPEF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가능한 한 빨리 (우리의 요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CPTPP의 경우 이미 협정문에 SPS 관련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CPTPP의 SPS 장(章) 제7조 1항에선 ‘구획화’ 개념을 언급하며, 특정 국가에서 가축전염병 또는 농작물 병해충이 발생하면 기존엔 해당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전면 차단하던 것과 달리, 해당 병해충이 발생한 ‘구획’의 바깥 영역이라면 수입 요청이 가능해졌음을 밝힌다.

또한 그동안 수출국이 ‘이 농축산물은 병해충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걸 수입국에 증명해 온 것과 달리, CPTPP에선 수입국이 수입 규제조치 시 수출국의 요청이 있다면 관련 결정과정을 ‘즉시’ 설명해야 하며(SPS장 제7조 5항), 수출국이 제공한 (병해충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증거를 평가한 결과 수입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왜 수입 불가능한지에 대한 사유를 ‘수입국이 수출국에 설명’해야 한다(제7조 10항).

SPS장 제9조에선 노골적으로 무역제한의 완화를 부추기는 내용들이 담겼다. 회원국이 필요 이상으로 무역 제한적이지 않은 위험관리 옵션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중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제9조 6항). 수입국은 수입승인을 위한 평가를 서둘러야 하며(제9조 7항) 수출국이 요청한다면 ‘왜 위험분석 평가가 늦어지는지에 대한 정보’도 수출국에 제공해야 한다(제9조 8항). 이처럼 CPTPP에선 검역주권을 심대하게 제약하는 내용, 나아가 수출국을 ‘갑,’ 수입국을 ‘을’로 규정하는 내용들이 상당부분 발견된다.

CPTPP 가입으로 SPS 관련 조치가 대대적으로 완화될 시, 국내 사과농업 기반이 무너지리라는 분석은 CPTPP의 전신인 TPP(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며 탈퇴하기 전까지의 CPTPP 명칭)가 가동되던 시기부터 제기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6년 분석에 따르면, SPS를 통한 사과 수입금지 조치 해제 시 생산감소액(소비자들의 국산 선호계수 0.5, 즉 보통으로 가정 시)은 2018년 3,840억원, 2021년 3,970억원, 2024년 4,150억원, 2027년 4,370억원으로 점차 감소액이 증가(연평균 4,080억원)하는 것으로 나타나, 사과 수입으로 국내 사과농업 기반이 점차 무너지리라 예측됐다.

‘경쟁력 강화’만으론 소용없다

정부 말대로 농민들이 자유무역 시대에 발맞춰 ‘경쟁력’을 강화한다 해도, CPTPP 가입 시 소용 없으리라는 게 농민들의 생각이다.

지난 23일 예천 사과생산자협회 신세대 육성교육 현장에서 만난 경북 봉화군 농민 이병욱 씨(사과생산자협회 부회장)는 지난 3월 25일 열렸던 CPTPP 공청회를 “뒤집어 엎어버렸”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정부는 늘 FTA와 CPTPP 등을 추진하며 농민들에게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한다. 농민들은 단 한 순간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은 적이 없다. 최근 기능성 사과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추세에 발맞춰 사과의 영양성분 강화를 위해 재배 과정에서 노력했고, 외국 선진기술 도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신세대 육성교육과 같은 교육도 계속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그러나 농촌진흥청, 나아가 농식품부는 사과 재배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이지 않으며, 선진 농업기술 도입체계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관료, 학자들은 농민에게만 경쟁력을 강화하라면서 대책없이 CPTPP 가입을 추진하니, 어찌 뒤집어엎지 않을 수 있나.”

“정작 우리나라 사과 재배농민들은 사과의 꼭지 제거를 강요당해, 연간 600억원 가량의 생산비가 추가로 들고 있다. CPTPP 가입 시 뉴질랜드·일본 등으로부터 꼭지 달린 사과가 대거 수입될 텐데, 그리되면 사과농가들은 더더욱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진다. 우선은 다른 나라처럼 꼭지 달린 사과가 유통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궁극적으론 CPTPP 가입 신청을 철회해야 한다는 게 사과 재배농민들의 입장이다.”

CPTPP·IPEF 가입국들이 표적으로 삼을 품목은 과수 분야만이 아니다. 유제품 시장 또한 위협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제기된다.

경북 예천군에서 유기농 우유를 생산·가공해 생협 및 (사)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등에 공급해 온 주연섭 논지엠오유가공 대표는 CPTPP 가입 시 시유(시중 판매용 우유)의 경우 일본 홋카이도산 시유가, 가공용 우유의 경우 호주산 우유가 국내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주 대표는 “시유의 경우 과거 호주산 시유가 일부 수입됐으나 맛이 국내 소비자 입맛에 안 맞아 외면당한 바 있어, 타 국가 대비 국내 시유 경쟁력은 어느 정도 갖춰진 편이다. 그러나 홋카이도산 시유는 생산량도 많고, 홋카이도의 환경도 우유 생산에 적합한 환경이기에 우유 맛도 국내 소비자 입맛에 맞다는 평이 많아, 국내 시유 생산농가는 상당한 위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또한 가공유의 경우 CPTPP 가입국인 호주뿐 아니라 IPEF 가입국인 미국의 탈지분유가 추가 수입될 시, 가공유 생산농가 입장에서 타격이 클 것이라는 게 주 대표의 설명이다. 미국유제품수출위원회 등 미국 낙농업계는 한국·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을 미국 낙농산업계의 주된 판로로 상정하면서, 미국산 유제품 판로 확보에 IPEF가 기여하길 기대하는 상황이다.

다극화 시대, 우리 식량주권 지켜야

더 큰 문제가 있다. 농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 등 한국 정부부처들의 태업으로 협정문 번역도 안 됐지만(CPTPP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본인들이 스스로 영어 협정문을 구해 번역 뒤 분석하는 상황) 어쨌든 협정문은 나온 CPTPP와 달리, IPEF는 ‘4개의 기둥’이라는 선언적 내용만 발표됐다. 구체적 내용은 전혀 나온 게 없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미국이 집(IPEF)만 지어놓고 그 집에 아무 내용도 없는 상황에서, 윤석열정부는 이렇다 할 고민 없이 덜컥 그 집에 들어갔다. IPEF의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건만 가입부터 해 놓고 보자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윤석열정부는 출범하자마자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했으며, 미국은 이런 윤석열정부에 미국이 주도하는 모든 질서(한미일 삼각동맹, IPEF 등)에 가담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서양 국가들의 군사협의체인 외교안보 3자협의체(오커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5개의 눈(Five Eyes)’ 등에도 일본과 함께 가입하라고 요구 중이다. IPEF, 나토 정상회의 등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가입이 향후 어떤 ‘덜컥수’를 낳게 될지 현재로선 예측 불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최근의 세계 경제위기 상황에서 세계는 미국 중심 세계질서에 ‘거리두기’를 하며 다양한 세력이 자신들의 자립을 위해 살길을 찾는 ‘다극화(bipolarisation)’ 시대로 변하고 있으며, 다극화 시대에 식량은 ‘무기’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다극화 시대에 발맞춰 한국은 IPEF·CPTPP 가입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식량주권 확보를 위해 노력(예컨대 남북 교류협력 재개, 국내 농업보호를 위한 조치 강구 등)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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