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군 농어촌버스, 누구를 위해 달리나

  • 입력 2023.10.15 18:00
  • 수정 2023.10.15 19:34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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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강원도 양구에서 유일한 농어촌버스 사업자, 현대운수(주)의 한 시내버스가 지난달 22일 운행을 시작하는 가운데 차고지 입구에 ‘교통약자 외면하는 폐업협박 중단하라! 버스 완전공영제 실시하라!’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승호 기자
강원도 양구에서 유일한 농어촌버스 사업자, 현대운수(주)의 한 시내버스가 지난달 22일 운행을 시작하는 가운데 차고지 입구에 ‘교통약자 외면하는 폐업협박 중단하라! 버스 완전공영제 실시하라!’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2일 양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구군 방산면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시내버스라지만 차종은 10여년 전 출시된 자일대우버스의 소형버스 ‘레스타’. 지난 2021년 자일대우버스가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기면서 사실상 단종됐지만, 도로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차종이자 초창기 마을버스의 모습이다. 이미 마을버스도 대형화했고 저상, 전기버스 등 다양하지만, 이날 탄 버스는 10여년 전에 멈춰 있는 듯했다. 아니 그보다 더 먼 시절, 서울 시내버스에 맨 처음 냉방장치가 설치됐다는 1986년 이전이 맞겠다.

추석이 코앞이나 아직 늦더위가 남았는데도 버스 에어컨은 가동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가동 불가다. 고장 난 지 오래였다. 대신 버스의 모든 창문이 열려 있었다. 타고 가는 내내 창문으로 들이치는 바람을 맞고 있자니 얼굴은 얼얼하고 머리카락은 산발이 됐다. 절절 끓었던 지난여름에도 에어컨을 대신한 건 창문. 승객은 물론 운행 내내 차에 있어야 하는 기사들도 폭염에 시달렸다.

고장 난 창문이 닫히지 않아 들이치는 빗줄기를 그대로 맞으며 운전하는 일도 있었다. 의자를 덮은 인조가죽은 곳곳이 찢어졌고, 군데군데 깨진 창틀은 투명 테이프로 간신히 붙어 있었다. 녹슬어 부슬거리는 외장, 심하게 닳아 내부 철심까지 드러난 바퀴. 옛 영화에나 나올 법한 버스는 겉모습뿐 아니라 엔진 부품 고장, 요소수 미투입 등 내부 상태도 심각했다. 일부러 골라 타지도 않았건만 우연히 올라탄 버스가 이랬다.

지팡이 없이 걷기 힘든 80대 할머니는 읍내 치과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젊은 군인 둘은 치킨을 사 들고 동료들이 기다리는 부대로 돌아가는 길. 송편용 반죽으로 쓸 쌀가루를 지인에게 전하러 가는 중년 부인 등 승객은 8명. ‘1시간에 한 대밖에 안 다니는데 불편하진 않으시냐?’ 물으니 지팡이 대신 손잡이를 꽉 움켜잡은 할머니는 “그래도 없으면 안 돼”라고 답한다. 앞자리에 앉은 중년 부인도 거든다. “1시간에 한 대라도 없으면 안 되죠.”

틈을 타 대화를 이어가 본다. “손님이 적어서 버스 운영이 어렵대요(기자).” 할머니가 답했다. “솔직히 기름값도 안 나올 거야. 그래도, 단 10명이 타더라도 없으면 안 돼.” 힘줘 답하는 그. 평생을 양구에 살며 자식들 대학 공부까지 다 시켜냈단 이야기며 그때는 버스에 사람이 ‘미어터지게 탔다’는 기억도 전했다. 이야기가 잦아들 무렵 버스가 동네 정류장에 멈췄다. 버스 문이 열리자 여든셋 할머니는 지팡이부터 문밖으로 던져 놓고, 거의 기듯이 계단을 내려가 지팡이를 주워 들었다. 할머니의 기역자 허리가 조금 펴진 순간, 버스는 힘을 쥐어짜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가을빛이 내려앉기 시작한 시골 도로와 도로 둘레의 한가롭고 평화롭기까지 한 산골 풍경. 그러나 떠오르는 복잡한 의문들. 하루에 몇 명밖에 안 타는 농촌 버스는 이래도 되는가. 버스 상태는 그동안 왜 방치됐는가. 노인 인구가 도시보다 많은데 저상버스는 왜 없나. 도시였다면 어림없었을 이 상황. 이 버스는 누구를 위해 달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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