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농어촌버스, 정비한다지만 여전히 갈 길 멀어

양구군, 버스에 불나고 폐차 수준까지 돼서야 정비 명령 내려

현대운수, ‘적자에 폐업하겠다’더니 번복 … 과제는 버스 ‘공공성’

  • 입력 2023.10.15 18:00
  • 수정 2023.10.15 19:08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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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달리던 버스 앞바퀴에서 불이 났다. 엔진 부품 고장에 경고등이 계속 들어와도 ‘스캐너로 리셋’하고(차량용 진단기로 끄고) 다시 운행했다. 경고등이 켜지면 시동이 안 걸리지만 당장 운행이 급한 기사들이 써온 임시방편이다. 바퀴는 닳아 철심까지 드러났다. 폐차 기한을 두 번이나 연장한 버스가 위태롭게 시골길을 달렸다. 지난달 22일 현장에서 마주한 양구군 농어촌버스(운영업체 현대운수(주))의 모습이다. 도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버스 상태는 탑승자의 불편은 물론 안전까지 위협했다.

양구읍 현대운수 차고지에서 김걸 지회장(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민주버스본부 강원지부 현대운수지회, 이하 노조, 취재원 보호를 위해 기사 실명 미기재)과 운행을 막 끝낸 기사 A씨가 빨간 불이 들어온 계기판을 가리켰다. “스캐너로 그걸(경고등) 지우고 한탕 갔다 오면 또 지운다. 안 지우면 (차가) 안 나가고, 지워도 나가면 또 뜬다. (차가) 힘이 떨어져 오르막에선 힘들다.” A씨가 말했다.

20년 가까이 근속한 정비사가 최근까지 있었지만, 무자격자였다. 기사들은 ‘까맣게 몰랐다’가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직후 무자격 정비사는 퇴사했다. 정비사가 없는 두 달여 동안 외부 정비공장을 이용했지만, 빠른 정비는 어려웠다. 김 지회장은 “그동안 차에 이상이 있어도 어지간하면 그냥 타고 다니라고 하는 실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앞바퀴 화재는 지난달 7일 해안면 방면 운행 중에 일어났다. 기사가 소화기로 불을 끄고 승객을 대피시켰다. 올해 “여러모로 너무 힘들었다”고 속마음을 드러낸 김 지회장은 무엇보다 안전 문제를 걱정했다.

기사 B씨는 “그때그때 고쳤으면 돈도 덜 들었을 텐데 미루다 지금 하려니 부속 구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더 못하는지도 모른다. 회사는 (차를) 내보내기만 하면 되는 걸로 아는데, 주민들더러 그냥 타라는 얘기밖에 안 되잖나”라고 토로했다.

안전관리 소홀은 불법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버스는 매연 저감을 위해 요소수를 붓게 돼 있다. 요소수가 없으면 차가 안 굴러간다. 그게 고장 났는데 안 고치고 요소수 없이도 차가 굴러가게끔 개조했다. 그런 차가 두 대였는데 하나는 폐차됐고 하나 남았다.” 기사 C씨가 말했다.

양구군엔 시내버스 회사가 하나뿐이다. 양구읍과 4개 면을 운행한다. 면 단위 마을버스와 1,700원에 탈 수 있는 희망택시도 있지만, 시내버스를 대체하진 못한다. 마을버스는 면 관내만 돌고, 희망택시는 운행지역과 수혜대상이 한정적이다. 주민들이 ‘승객이 적고 기름값이 안 나와도 시내버스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유다.

현대운수엔 기사 15명, 사무직 2명, 임원 3명(대표이사, 이사, 감사)과 버스 12대가 있다. 현재 버스 9대에 양구군이 정비 명령을 내렸다. 버스 화재 소식이 방송에까지 나온 뒤인 지난달 25일 양구군은 교통안전공단과 합동점검을 진행했고 버스 7대에 정비 명령을 내렸다. 화재 차량 등 2대는 이미 정비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사측은 지난 2일 마모가 심했던 버스 3대의 바퀴도 교체했다. 지난 10일엔 새 정비사도 채용했다. 불이 나고 폐차 수준이 된 뒤에나 이뤄진 대처들이다. 사측과 양구군 모두 ‘늑장 대처 및 방임, 관리 부실’이란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현대운수는 매년 지자체 보조금을 받지만, 적자를 호소하며 올해 초 노선과 버스 감축 및 임금 삭감을 단행했다. 대표이사는 지난 5월 양구군과의 면담에서 ‘8월 폐업’ 의사까지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사측은 폐업신고를 안 했고, 파업 중인 노조와도 합의하지 못했다. 양구군은 ‘농어촌버스 운영체계 개선 용역’ 결과와 군민 의견 수렴, 재정상황에 따라 대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양구 버스 사태는 노조가 총파업을 밝힌 지난 4월 초부터 200일 가까이 지나도록 ‘제자리걸음’ 중인 셈이다.

‘폐업 선언’에 대한 입장을 묻자, 대표이사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뭐든 여건이 맞아야 폐업도 하지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그건 거의 취소상태다”라며 “연말까지 군이 어떤 결정을 내려주길 요청했다. 군이 준공영제든 공영제든 결정을 내려달란 거다”라고 밝혔다. 만약 양구군이 공영제를 선택한다면 소유한 면허권도 “당연히 반납하고, 군이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라고도 말했다.

지난달 22일 강원도 양구군청 앞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강원지부 현대운수지회 기자회견에서 한명희 양구군여성농민회 회장이 버스 완전공영제 시행 등을 양구군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2일 강원도 양구군청 앞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강원지부 현대운수지회 기자회견에서 한명희 양구군여성농민회 회장이 버스 완전공영제 시행 등을 양구군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시급했던 정비가 진행되고 있어도 문제는 여전하다. 노선과 버스 감축에 따른 임금 삭감과 주민 이동권 제한 문제다. 노조는 지난 4월 쟁의권을 확보, 총파업에 나설 수 있었지만, 주민을 위해 버스 운행만은 멈추지 않았다. 대신 지역 농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양구민주단체협의회(대표 오용석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의장, 민단협)와 100일 가까이 양구군청·현대운수 앞(매일)과 양구 오일장에서 선전전을 한다. 이들은 이번 문제를 양구군 버스 체제 개편이란 큰 틀에서 바라보며, 양구군에 더 적극적이고 빠르게 움직이라고 요구한다.

김걸 지회장은 “고령화가 심하다. 학생들은 전부 도시로 나가고 2개 있던 사단(부대)도 1개가 줄어 버스 손님이 별로 없는 건 사실이다. 군이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며 “양구군이 희망택시 지원을 늘리고 마을버스도 운영하는 만큼이나 시내버스도 더 지원하고 빨리 대처했어야 했다. 어디 회사만 문제겠나”라고 말했다.

B씨도 “개인이 계속하긴 힘들 거다. 이윤을 남기려는 사업이 아니잖나. 적자인지 아닌지는 사실 모르지만, 회사가 적자라고 말하니… 적자 경영을 계속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양구군이 적극 나서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노조와 민단협은 양구군의 적극 대응을 강조하지만, 보조금만 계속 늘리는 준공영제는 반대한다. 버스의 공공성을 살리는 길은 공영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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