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내 기부금 어떻게 쓰이나?’

지자체 대부분 사용처 미확정한 가운데, 20여곳 기금사업 눈길

의미 있는 기부•지역에 관심 지속 위해선 기금사업 내실화 필요

  • 입력 2023.06.23 09:39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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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고향사랑기부제로 모금된 기금의 사용 목적과 대상이 명확해야 한다는 지적이 관련 논의에서 꾸준히 나온 바 있다.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관심이 많은 한국의 기부문화에서 기부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기부에 대한 ‘선한 영향력’이 확산하는 데도 중요하며 이는 결국 제도의 성공적 안착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연구자, 학계, 현장의 목소리다.

현재 ‘고향사랑e음(고향사랑기부금 홈페이지)’을 보면, 전국 243개 지자체 가운데 기금 사용처(기금사업 내용)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지역은 20여곳뿐이다. 대부분은 △사업 내용 공모, 설문조사 등을 통한 ‘계획 수립 중’, ‘향후 수립 예정’이거나 △안정적 사업 진행을 위해 일정 정도의 기금을 적립한다면서 기금사업 확정 전까진 기부금을 전액 예치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기금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채「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에 따른 기부금 사용처(△사회적 취약계층의 지원 및 청소년의 육성·보호 △지역 주민의 문화·예술·보건 등의 증진 △시민참여, 자원봉사 등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원 △그 밖에 주민의 복리 증진에 필요한 사업) 규정 자체만 게시해 놨다.

고향사랑기부제 본격 시행으로 각 지자체는 모금 홍보와 접수를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기부자들은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일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역의 특성과 고민을 살린 구체적인 기금사업을 제시한 몇몇 지자체가 눈에 띈다.

광주극장 전경. 1935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최선진이 세운 극장으로 영화사적 중요 자산이자 현존 최고 단관 극장이다. 광주광역시 동구 제공
광주극장 전경. 1935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최선진이 세운 극장으로 영화사적 중요 자산이자 현존 최고 단관 극장이다. 광주광역시 동구 제공

먼저 광주광역시 동구는 기금사업으로 ‘광주극장 100년 프로젝트’, ‘발달장애 청소년 ET야구단 지원 프로젝트’, ‘어린이 재능 발견과 “꿈” 키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광주극장은 국내 현존 가장 오래된 단관 극장으로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광주극장의 역사적·인문적 가치를 계승하고 시민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사업이다. ET야구단은 2016년 전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발달장애인 청소년 야구동아리다. 후원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끝났지만, 야구단은 지속돼야 한다는 열망이 모여 기금사업에 선정됐다. 청소년 장애인들의 신체활동과 자존감 향상을 끌어내고 향후 관련 시설과 어린이 발달 재활치료센터를 조성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문화예술, 스포츠, 문예 등 분야에서 재능을 키우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2025년 시작)는 좀 더 구체화 중이다.

김희선 광주 동구 인구정책계장은 “동구는 인구가 10만명밖에 안 되는 기초지자체다. 시·군에 견줘 특산물이 좋지 않고 애향심도 적은 편이라 기부금 사용처를 빨리 정해 전국적 공감을 얻고 관심을 가진 이들의 선한 영향력, 자율적 기부문화를 정착하고 싶어 기획하게 됐다”면서 “지역 현안이면서도 전국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회 공헌·공익적 사업을 우선했고,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고향사랑기부제의 취지를 살려, 관계인구 형성과 공동화되고 있는 광주극장 인근 지역(충장로 4·5가)의 경제 활성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희선 계장은 “관심 있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도록 화두를 던진 셈이다. 동구의 사업을 보고 ‘내가 기부했더니 이런 곳에 쓰여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며 다른 이에게 알리면 자연스럽게 자율기부를 유도하고 선한 영향력도 퍼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했다”고 말했다.

향후 3년간 광주극장 프로젝트는 15억원, ET야구단은 10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처럼 지자체가 별다른 준비 없이 기부금을 받고 소정의 답례품을 제공하는 형태를 넘어 기금사업 내용부터 내실 있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고향사랑기부제 논의에서 매번 강조돼 왔다. 기부자는 좀 더 의미 있는 기부를, 지자체는 지속적인 기부와 관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눈에 띄는 기금사업은 △주거 지원이 필요한 청년노동자에게 주택을 저렴하게 임대하는 공유주택 조성사업(울산 동구) △지역사회 단체, 시민이 함께하는 서해안 환경정화 프로그램 ‘숨쉬는 서해안 프로젝트’(경기 화성시) △취약 의료환경 및 접근성 개선 사업 구체화(강원 인제) △저소득 취약계층 아동의 치아교정 지원(충북도) △취약계층 어린이 영구치 지원, 콩 선별장 현대화 등 5개안 설문 결과 뒤 최종 결정 예정(충남 공주시) △기부자, 관광객, 군민이 함께하는 해안가·해변길 정화 활동(충남 태안군) △로컬푸드 활용 먹거리 복지사업(전북 완주군) △인공지능(AI)·반려로봇 활용 독거 어르신 집중돌봄서비스 지원(전남 순천시) △우주강국, 기회, 치유, 활력, 공동체, 역사, 환경을 테마로 한 기금사업(전남 고흥군) △농수산업 가정 자녀 시간제 돌봄센터 운영(전남 진도군) △‘해변보멍 줍깅 프로젝트’ 자원봉사자, 관광객, 제주도민과 함께하는 해양쓰레기 플로깅 추진(제주)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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