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내가 살고 있는 지역만 빼고 전국 어떤 지자체에든 연간 500만원 한도로 기부를 할 수 있다. 기부액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로 돌려주고, 그 이상은 16.5%를 세액공제 해준다. 기부를 받은 지자체는 기부자에게 기부액의 30%를 지역 특산물로 제공한다. 문재인정부가 설계하고 윤석열정부가 시행하는 ‘고향사랑기부제’다.
비정상적 근대화 과정과 맹목적 자본주의의 폐해 속에 대한민국은 극심한 지역불균형의 수렁에 빠져 있다. 도시는 인구과밀에 주택난·구직난이 만성화됐지만 농촌엔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해가 다르게 사라져가는 농촌 학교와 비어가는 농가주택을 곁눈으로나마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 사는 농촌’의 잔여수명이 불과 한 세대도 남지 않았음을 절감할 것이다.
7대 특별·광역시와 경기도의 인구는 이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세수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경기도를 제외한 8개 자치도의 지방세를 모두 합쳐야 겨우 경기도나 서울시의 지방세에 견줄 수 있다. 농촌 소멸은 뻔히 눈에 보이지만, 농촌 지자체가 이에 맞서 발버둥치려 해본들 그 동력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향사랑기부제는 문재인-윤석열정부가 지역소멸에 대응코자 내놓은 가장 구체적인 정책이다. ‘내가 사는 지역만 빼고 기부 가능’. 대다수의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는 국내 여건상, 이 제도는 도시의 자본을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기부가 활발해지면 활발해질수록 농촌 지자체의 재정여건은 호전된다.
지자체는 기부받은 돈을 지역주민 삶의 질 개선, 지역공동체 활성화, 기타 복지후생에 사용한다. 그동안 예산이 없어 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업들을 시도할 수 있고, 노력 여하에 따라 침체돼가는 공동체를 복원하고 인구를 유입시킬 만한 매력적인 여건들을 조성할 수 있다.
물론 고향사랑기부제가 만능은 아니다. 기부가 얼마나 활성화될지도 미지수고 지역 간 기부액 편차와 유치경쟁 과열 등의 문제 소지가 있다. 외부 자본에 지역 재정 일부를 기대게 된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주민자치의 관점에선 오히려 독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농촌이 대책 없는 소멸의 길을 걸어가던 가운데 이들 지역에 한 줄기 요란한 동력이 생겨났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판과 회의의 시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제도를 바람직하게 굴려갈 수 있을지 미래지향적 고민이 더 절실한 시점이다.
올해 본격적인 제도 시행을 전후해 전국 농촌 지자체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기부답례품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말 그대로 ‘유치 경쟁’밖에 없는 상태다. 지자체가 자기 지역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니, 기부자들의 눈엔 답례품·세액공제 등 콩고물밖에 보이는 게 없다. 고향사랑기부제엔 아직 고향에 대한 ‘사랑’이 설 자리가 없다.
기부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며 이 제도에서 기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지자체, 그리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진정성 있는 고민 뿐이다. 모처럼 농촌에 활력을 불러온 이 제도를, 우리는 성공적·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충실히 고민하고 있는가. 시행 초기 고향사랑기부제의 밝은 분위기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우려들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