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에 ‘사랑’이 싹트려면

  • 입력 2023.01.22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우리 민족의 명절, 설 연휴를 나흘 앞둔 지난 17일 경북 영주시 단산면 옥대3리 금대마을회관 앞에 고향을 지키며 살아오고 계신 어르신 열 분이 모였다. 긴긴 겨울을 보내며 낮에 회관에 모여 점심식사도 함께 하신 주민분들은 이번 명절을 맞아 고향에 다녀갈 자녀와 손주를 향한 마음을 그 넉넉한 미소와 ‘하트’로 표했다. 아랫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동희, 홍병창 이장, 전옥단, 김순덕, 박숙희, 유산옥, 강정자, 박순기, 김남숙, 김순교 할머니. 한승호 기자
우리 민족의 명절, 설 연휴를 나흘 앞둔 지난 17일 경북 영주시 단산면 옥대3리 금대마을회관 앞에 고향을 지키며 살아오고 계신 어르신 열 분이 모였다. 긴긴 겨울을 보내며 낮에 회관에 모여 점심식사도 함께 하신 주민분들은 이번 명절을 맞아 고향에 다녀갈 자녀와 손주를 향한 마음을 그 넉넉한 미소와 ‘하트’로 표했다. 아랫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동희, 홍병창 이장, 전옥단, 김순덕, 박숙희, 유산옥, 강정자, 박순기, 김남숙, 김순교 할머니. 한승호 기자

내가 살고 있는 지역만 빼고 전국 어떤 지자체에든 연간 500만원 한도로 기부를 할 수 있다. 기부액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로 돌려주고, 그 이상은 16.5%를 세액공제 해준다. 기부를 받은 지자체는 기부자에게 기부액의 30%를 지역 특산물로 제공한다. 문재인정부가 설계하고 윤석열정부가 시행하는 ‘고향사랑기부제’다.

비정상적 근대화 과정과 맹목적 자본주의의 폐해 속에 대한민국은 극심한 지역불균형의 수렁에 빠져 있다. 도시는 인구과밀에 주택난·구직난이 만성화됐지만 농촌엔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해가 다르게 사라져가는 농촌 학교와 비어가는 농가주택을 곁눈으로나마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 사는 농촌’의 잔여수명이 불과 한 세대도 남지 않았음을 절감할 것이다.

7대 특별·광역시와 경기도의 인구는 이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세수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경기도를 제외한 8개 자치도의 지방세를 모두 합쳐야 겨우 경기도나 서울시의 지방세에 견줄 수 있다. 농촌 소멸은 뻔히 눈에 보이지만, 농촌 지자체가 이에 맞서 발버둥치려 해본들 그 동력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향사랑기부제는 문재인-윤석열정부가 지역소멸에 대응코자 내놓은 가장 구체적인 정책이다. ‘내가 사는 지역만 빼고 기부 가능’. 대다수의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는 국내 여건상, 이 제도는 도시의 자본을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기부가 활발해지면 활발해질수록 농촌 지자체의 재정여건은 호전된다.

지자체는 기부받은 돈을 지역주민 삶의 질 개선, 지역공동체 활성화, 기타 복지후생에 사용한다. 그동안 예산이 없어 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업들을 시도할 수 있고, 노력 여하에 따라 침체돼가는 공동체를 복원하고 인구를 유입시킬 만한 매력적인 여건들을 조성할 수 있다.

물론 고향사랑기부제가 만능은 아니다. 기부가 얼마나 활성화될지도 미지수고 지역 간 기부액 편차와 유치경쟁 과열 등의 문제 소지가 있다. 외부 자본에 지역 재정 일부를 기대게 된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주민자치의 관점에선 오히려 독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농촌이 대책 없는 소멸의 길을 걸어가던 가운데 이들 지역에 한 줄기 요란한 동력이 생겨났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판과 회의의 시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제도를 바람직하게 굴려갈 수 있을지 미래지향적 고민이 더 절실한 시점이다.

올해 본격적인 제도 시행을 전후해 전국 농촌 지자체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기부답례품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말 그대로 ‘유치 경쟁’밖에 없는 상태다. 지자체가 자기 지역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니, 기부자들의 눈엔 답례품·세액공제 등 콩고물밖에 보이는 게 없다. 고향사랑기부제엔 아직 고향에 대한 ‘사랑’이 설 자리가 없다.

기부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며 이 제도에서 기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지자체, 그리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진정성 있는 고민 뿐이다. 모처럼 농촌에 활력을 불러온 이 제도를, 우리는 성공적·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충실히 고민하고 있는가. 시행 초기 고향사랑기부제의 밝은 분위기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우려들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