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자체들의 활발한 기부금 유치 경쟁과 기부답례품 개발은 고향사랑기부제의 열기를 보여주는 현상이지만 한편으론 지켜보는 이들의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뜨거운 유치 열기에 비해 기부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위험하리만치 빈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고향사랑기부제가 일본 고향납세제의 시행착오를 보고 수정·보완해 만든 제도라지만 그 보완사항은 ‘모금’ 부분에 한정돼 있다. 제도의 설계와 법률 조항이 모두 ‘자본의 이동’에만 방점을 찍고 있을 뿐, 그 자본을 활용한 구체적 지역 활성화 방안은 거의 전적으로 지자체에 내맡기고 있다.
지자체라고 단단한 고민이 있는 건 아니다. 제도를 관장하는 중앙정부 부처가 행정안전부이다 보니 지자체의 담당부서 또한 회계·세정 담당부서로 고정돼 있다. 자연스레 정책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 되고 일단 기부금을 유치해 재정을 확대하는 데에 공력이 치중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기부금 유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기부한 돈이 얼마나 보람 있게 쓰이는지, 기부 수혜자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지’를 기부자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수반한 특별한 경우라 답례품·세액공제만으로도 기본적인 참여 유도가 가능하겠지만, 그 구조는 명백히 앞뒤가 바뀌어 있다. 기부 액수의 유의미한 확대와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기부자들에게 ‘원초적 미끼’가 아닌 ‘내실 있는 계획’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권선필 목원대 행정학부 교수는 “기부는 기부자들을 설득하는 게 기본인데, 지금 고향사랑기부제는 기부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기부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진행하고 있다”며 “기존의 예산체계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사업, 그러면서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들을 구체적으로 개발해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고향사랑기부제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크라우드펀딩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내놓는 정책들을 보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기부금을 납부하는 방식이다. 그는 “크라우드펀딩 방식의 고향사랑기부제는 2016~2017년에 이미 정부 실험도 마쳤다. 최소한의 기준만 정해 주고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방식을 택하도록, 행안부가 정책적 유연성만 발휘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역시 제도의 초점을 ‘유치’에서 ‘정책’으로 빨리 옮겨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답례품 위주 유치경쟁 과열을 매우 진지하게 경계하는 입장이다. 그는 “특히 선거철이 되면 유치 실적이 크게 부각되고 다른 정책은 싹 묻힐 것이다. 지자체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부금을 모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비리와 불법이 발생할지 가늠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또 “답례품에 집중하다간 특산품이 좋고 기획을 잘하는 지자체에만 기부가 몰려 지자체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게 된다. 지역 내에서도 ‘누구의 어떤 상품을 답례품으로 선정할 것인가’를 두고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조원희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기부금 운용에 있어 지역주민의 참여를 특히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지역사랑기부금 운용을 도청과 시·군청이 다 맡아 하게 돼 있다. 중간지원조직을 둬서 운용을 맡기는 일본처럼, 민간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한발 더 나가, 읍·면 단위에서 기부금 사용계획을 세워 주민 주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주민자치를 위한 소중한 종잣돈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