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목소리엔 귀 닫고 스마트팜·푸드테크만 외치는 농정

시민사회, ‘기술 중심주의 농정’ 대응 논리 개발로 분주

  • 입력 2023.06.16 09:25
  • 수정 2023.06.17 13:5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2일 서울 삼성동 한살림연합 모심1 교육장에서 열린 ‘기후위기 시대의 먹거리, 기술만으로 해결 가능할까?’ 포럼은 시민사회에서 처음으로 ‘기술 만능주의 농정’에 대한 대응 논리를 논의한 자리였다.
지난 12일 서울 삼성동 한살림연합 모심1 교육장에서 열린 ‘기후위기 시대의 먹거리, 기술만으로 해결 가능할까?’ 포럼은 시민사회에서 처음으로 ‘기술 중심주의 농정’에 대한 대응 논리를 논의한 자리였다.

정부 농업·먹거리정책이 ‘기술 중심주의’ 함정에 빠졌다. 스마트팜·푸드테크 등 ‘첨단기술’이 농업·먹거리 문제 해결의 만능 열쇠라 여기는 정부의 논리에 맞서, 농업과 먹거리기본권의 연계를 고민하는 농민·시민·전문가들은 “현장 농민·시민의 목소리부터 들어라”라고 외친다.

지난 12일 서울 삼성동 한살림연합(상임대표 권옥자, 한살림) 모심1 교육장에서 한살림 식생활센터 주최로 열린 ‘기후위기 시대의 먹거리, 기술만으로 해결 가능할까?’ 포럼은 시민사회에서 처음으로 기술 중심주의적 농정에 대한 대응 논리를 논의한 자리였다.

김병수 성공회대 농림생태환경연구소장은 먹거리 관련 최신기술이 제시된 공간으로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을 언급했다. 세계 각국의 대기업 총수, 경제학자, 정치인 등이 스위스 다보스에 모여 진행하는 이 포럼에선 매년 ‘유망기술’들을 선정해 다국적 기업과 각국 정부에 제시하는데, 여기엔 대체육·스마트팜·유전자가위 기술 등도 포함된다.

여기서 잠시 한국의 상황을 보자. 한국 정부의 경우, 푸드테크와 관련해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가 2027년까지 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 30곳 육성, 1,000억원 규모 전용 펀드 조성 등을 추진한다며 대대적 푸드테크 기업 지원을 표방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도 기술 중심주의적 농정을 부추기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 13일 식물공장, 수직농장 등 '스마트 작물재배시설'을 농업시설로 인정하는 「농지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수직농장이나 작물재배 스마트팜은 농업시설로 인정되지 않아 농지에 설치 불가능한 상황인데, 이러한 시설을 농업시설로 인정해 농지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청년 농업인의 초기 투자비 완화로 국내 수직농장 보급과 청년 농업인 유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윤 의원의 입법 취지였다.

김병수 소장은 “국가는 환경·사회적 측면의 지속가능한 먹거리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기술·시장적 접근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중 상당수 기술은 아직 연구·실증 단계로 다양한 측면에서의 검증이 필요하다”며 “식량주권, 식단 변화, 먹거리 손실 방지, 유기농업 확대, 먹거리기본권 보장 등 기후위기 시대의 다양한 쟁점은 기술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병수 소장이 강조한 ‘검증’ 대상의 예시로 대체육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선 소비자단체들이 대체육 기업 임파서블푸드·비욘드미트의 대체육에 각종 화학첨가물이 들어간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대체육의 맛과 향, 색깔을 내기 위해 색소·강화제·보존제·유화제 등 온갖 가공물질을 쓸 뿐더러 일부 품목은 GMO 콩을 원료로 삼는다는 것인데, 이와 관련해 해외에선 대체육·배양육 등의 안전성 검증 및 성분 표기 문제가 쟁점화됐다는 게 김 소장의 설명이다.

김 소장은 ‘식물 기반 대체육’ 구매량이 늘어났다 해서, 기업에서 홍보하는 것과 달리 기존 육류 소비량이 줄지 않았다는 통계도 소개했다. 지난해 7월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소개된 육류 소비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11월부터 2020년 11월까지의 2년간 식물 기반 대체육을 구입한 소비자 7,761명 중 약 86%인 6,672명은 최소 한 번 이상 기존 육류를 구매했다고 응답했다. 대체육만 구매한 소비자는 나머지 14%에 그쳤다.

해당 연구를 진행한 미국 퍼듀대 농업경제학과의 연구자들은 조사 결과에 대해 “대체육이 대체로 구매 가구의 육류 수요를 억제하지 않으며, 대다수 대체육 구매자도 육류를 구매하기에 대체육 시장 점유율 상승이 반드시 시장 확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변혜진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상임연구위원은 대형 정보통신기업(빅테크) 및 농식품 다국적 기업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푸드테크 ‘산업’에 뛰어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밀농업 추진체계 ‘애저 팜비트(Azure FarmBeats)’를 통해, 이 체계 내의 클라우드에 토지·작물·개인정보를 올린 농민에게 마이크로소프트의 협력업체(농약 살포용 드론, 첨단 트랙터 등을 개발하는 농기계회사 및 종자·농약·비료업체 등)가 생산한 제품을 ‘할인’해 판매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바이엘 또한 아마존과의 제휴하에 아메리카 전역에 자사의 종자·농약을 판매하며, 카길·타이슨푸드 등은 배양육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변 연구위원은 “살충제·제초제 등 합성농약 사용 감소는 기업들의 기후변화 해결책에서 생략됐다”며 “기업의 목표는 인류 구원이 아니라 ‘더 많은 판매’다. 따라서 자신의 농약과 비료를 더 많이 사용하라고 조언하는 인공지능·어플리케이션 활용이 이들이 돈 버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결과적으로 자본이 주도하는 스마트팜·푸드테크 기술은 기후위기 해결방안이 아니라는 게 변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변 연구위원은 대체육에 대해서도 “제약기업의 고비용·집약적 기술력에 의존하며, 생명공학 기술로 인간이 먹는 부분만을 키우는 일이자 생물다양성과는 무관한 산업용 먹거리 생산과정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막대하게 과잉생산되는 미국산 콩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값싼 콩 단백질 대체육의 생산·유통은 기후변화와 수질 오염, 삼림 벌채에 기여하는 낭비적이고 자원 집약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런 가짜 육류제품이 환경에 좋다는 마케팅이 바람직할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경기도 여주 농민 곽동훈씨는 스마트팜과 관련된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3년 전 지자체의 ‘스마트 지중점적관수(압력에 의해 물이 한 방울씩 나오게 만든 점적호스를 땅속 30cm 깊이에 매설해 뿌리에 직접 물을 공급하는 것)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곽씨는, 이 설비를 갖추면 매년 가뭄 때마다 이 밭 저 밭에 다니며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물 주러 다니는 수고가 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종을 막 심은 시기처럼 물이 절실히 필요할 때 수분이 부족해 모종이 죽으면 한 해 농사가 망하는데, 스마트 지중점적관수 기술은 작물 뿌리가 점적호스가 매설된 20~30cm 깊이까지 도달해야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다. 따라서 비가 안 오면 지중점적관수 시설을 설치한 보람도 없이 스프링클러를 설치·가동해야 하며 노동력 감소 이득도 못 누린다는 게 곽씨의 설명이었다.

곽씨는 “사업 진행 과정에서 공사가 기준에 맞게 잘 진행되는지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든 지자체든 누구 하나 현장에 나와 확인한 사람이 없었고,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에 대한 어떤 매뉴얼도, 지도도 없었다. 사업 결과를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시공업자 한 사람이 모든 일을 진행한 셈”이라고 한 뒤 “‘스마트’라는 이름만 붙이면 그것이 실제 농민에게 필요한지, 현장에서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검증·연구가 부족해도 큰 예산을 들여 일단 실행하고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고 쓴소리했다.

박소현 한살림 식생활센터장은 향후 푸드테크 정책과 관련해 △온실가스 감축 실효성 및 안전성 검증을 위한 정보공개 및 연구 진행 △기업이 아닌 기후위기로 어려움 겪는 농촌 현장을 중심에 둔 정책 실시 △시민 목소리가 반영되는 협치체계(거버넌스) 구성 등을 주장했다. 이와 함께 박 센터장은 ‘지속가능한 농정’은 △전통농법·친환경농법 등 생태 선순환적 생산방식 확대·강화 △지역먹거리 선순환체계를 통한 생산-소비의 안정적 연계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탄소저감 농법 연구 강화 등으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협치문제와 관련해 박 센터장은 “올해 2월 14일 구성된 푸드테크 산업발전협의회는 정부 부처 8인, 학계 전문가 6인, 푸드테크 분야별 10개 기업 관계자, 유관기관 2인 등 총 26명으로 구성됐으나 이중 생산자·소비자·시민사회 관계자는 한 명도 없다”며 “농민·소비자 등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는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가자들 모두가 동의한 지점은 △정부가 먹거리를 산업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정작 현장 농민·시민의 목소리엔 귀를 닫았다는 점 △푸드테크 관련 안전관리 기준 및 안전심사 제도는 여전히 미비하다는 점 △기술 중심주의적 분위기에 맞서 농민·먹거리운동 단체가 연대해 방향성과 관점, 규제방안 등을 논의하고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