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크 대응 위한 농민·먹거리운동진영 논의 시작돼야

  • 입력 2023.01.15 18:00
  • 수정 2023.01.17 17:2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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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신세계푸드에서 내놓은 대체육 샐러드. 한승호 기자
신세계푸드에서 내놓은 대체육 샐러드. 한승호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가 지난해 12월 푸드테크를 미래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데 대해, 농민·먹거리운동단체들은 아직 구체적 입장을 내놓진 않았다. 푸드테크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지금 당장 푸드테크에 대한 농민·먹거리운동 주체들의 명확한 관점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국내 대체식품 산업 동향

농식품부가 푸드테크 산업 발전방안을 내놓은 현 시점까지의 국내 대체식품 시장 동향은 어떠할까. 국내에선 지구인컴퍼니·알티스트·아머드 프레시 등의 스타트업들이 그동안 대체식품 시장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지구인컴퍼니는 버려진 대두 껍질에서 분리한 단백질과 밀 단백질을 사용한 식물기반 대체육 ‘언리미트’를 출시한 바 있다. 아머드 프레시는 지난해 CES 2022 푸드테크 세션에 참가해 아몬드를 활용한 식물기반 치즈를 선보였으며, 여러 유산균을 섞어 일반 동물성 치즈의 맛과 식감을 구현한 업체로 소개된다.

그러나 국내 대체식품 영역 또한 신세계푸드·SK·롯데푸드 등 대기업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신세계푸드의 경우, 2021년에 자사 브랜드 ‘베러미트(Better Meat)’라는 대체육 냉동햄을 출시했다. 신세계푸드는 베러미트 홍보·판매를 위한 임시매장 ‘더 베러(The Better)’를 지난해 7~12월 서울 압구정동에서 운영한 데 이어, 최근엔 서울 청담동 신세계푸드마켓 내에 ‘더 베러 베키아 에 누보’라는 대체육(신세계푸드 측은 ‘대안육’이라 호칭) 요리매장을 열었다. 현재 이 매장에선 대체육이 들어간 요리들을 2만원 선에서 판매 중이다.

SK의 경우 정밀발효 기술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정밀발효 기술을 보유한 미국 퍼펙트데이 사에 2021년부터 현재까지 9,635만달러(한화 약 1,200억원)를 투자했다. SK는 지난 5~8일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 끌고 간 ‘지속가능식품 푸드트럭’에서 퍼펙트데이의 정밀발효 기술로 개발한 대체유 단백질을 활용해 만든 우유빙수를 팔았다.

대기업들은 푸드테크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으나, 여전히 ‘푸드테크와 국내 농업의 연계’라는 과제엔 관심이 크지 않다.

신세계푸드 베러미트의 경우 함유 원료가 수입 대두유 및 중국산 두류 가공품, 향미증진제인 L-글루탐산나트륨 등이다. 동원F&B는 2018년 미국 비욘드 미트 사의 식물성 패티를 독점 수입한 이래 국내 도·소매 시장과 식당에 공급 중이며, 롯데푸드는 스위스 네슬레의 식물기반 ‘스위트 어썸(Sweet Awesome)’ 버거를 수입해 출시했으며, SPC 그룹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식물기반 대체 달걀을 생산하는 스타트업 ‘잇 저스트(It Just)’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국내 공장에서 잇 저스트의 제품인 ‘저스트 에그’를 생산한다.

농민 삶과는 괴리된 푸드테크 발전방안

이상과 같은 배경 속에서 지난해 말 농식품부의 ‘푸드테크 산업 발전방안(발전방안)’이 나왔다. 최소한 발전방안이 ‘국내 농업과 푸드테크의 연계’라는, 농식품부라면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했을 내용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면 농민들로서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봤을 테다.

그러나 발전방안엔 그렇게 해석할 만한 내용이 극히 빈약했으며, 방점도 ‘기업지원’에만 찍혀 있다 보니 농민의 삶과는 거리가 먼 계획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발전방안엔 △대기업의 푸드테크 분야 진입 규제 △소규모 농민가공 등 현장 중소농이 필요로 하는 기술 관련 지원계획(소규모 농민가공도 ‘먹거리 관련 기술’이기 때문) △국내 농업과 푸드테크의 구체적 연계방안 등 들어가야 할 내용은 빠졌다. 특히 세계적으로 초국적 식품자본의 푸드테크 스타트업 인수·합병 시도가 많았던 만큼, 별도의 대기업 규제책 없이는 농식품부의 의도와 별개로 농식품부가 대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결과만 낳게 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경진 한국친환경농산물가공생산자협회 사무국장은 “푸드테크는 그동안 소규모 농가공 또는 친환경농산물 가공에 참여해 온 농민들이 고민하던 ‘현장 농업, 농민과 연계된 먹거리 제조산업으로서의 가공’과는 전혀 상관 없는 배경에서 나왔다. 농산물이 식품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아닌, 산업이 다시 산업을 낳는 구조”라며 “푸드테크 하에서 농업·농민이 참여할 공간은 없다. 푸드테크 중심 정책이 현실화될 시 가공영역은 농촌 현장과 완전히 분리될 것”이라고 푸드테크 발전방안을 평가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국내 농업과 연계된 내용이 콩 생산단지 조성 확대를 통한 ‘농가-푸드테크 기업 간 원료 계약재배 체결 유도’ 계획이다. 콩이 대체육의 주요 원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나마 마련된 이 계획도 한계가 명백하다.

진주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은 “푸드테크와 연계해 콩 계약재배를 한다 해도, 쓸 수 있는 콩 종류도 기업이 원하는 ‘대량생산’에 적합한 콩 위주로 한정되니 토종콩 등 농촌 농민들이 소량으로 생산한 콩과는 전혀 상관없다”며 “기업과의 계약재배 과정에선 기업이 원하는 일정 규모·규격을 맞춰야 하는 데다 단작 중심으로 가게 된다. 기업은 원료 수급 시 표준화·규격화를 통해 위험요인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말하자면 농촌 중소농 절대 다수와는 상관없는 계획인 셈이다.

한편으로 농식품부는 푸드테크 육성을 명목으로 산업계와 관료, 학계가 모인 ‘푸드테크 산업 발전협의회’를 꾸린다지만, 정작 농식품부가 우선 고려해야 할 농민·시민사회단체는 발전협의회 참가대상에서 누락되는 등, 푸드테크 관련 정보공유 및 논의 영역에서 농민·도시민이 배제된 것도 문제다.

푸드테크 영역 관련 ‘이름 바로잡기’ 시급

농민·먹거리운동 진영에서 푸드테크라는 파고에 어떻게 대응할지 합의되지 않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경진 사무국장은 “농민·먹거리운동단체에서 푸드테크 문제에 대한 논의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공론화하지 않으면 푸드테크를 주도하는 정부·기업 등 주류세력에 의해 농민은 논의 영역에서 더욱 소외되고 정책영역의 ‘객체’로 전락할 것”이라며 “푸드테크 도입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농민·시민의 논의를 통해, 예컨대 대기업의 진입은 어느 정도 선까지 제한할지 등의 규제방안부터 마련해야 하며, 기존 푸드테크 발전방안엔 담기지 않았던 ‘친환경농업과의 연계’ 내용이나 농업·농촌의 기본 가치 관련 내용을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사무국장은 이어 농민·먹거리운동단체 차원에서 푸드테크 관련 용어에 대한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로잡을 필요성을 제기했다. 배양육·대체육, 심지어 일부 기업이 표현하는 ‘대안육’ 등의 표현이 맞냐는 것이다. 전 사무국장은 “예컨대 배양육은 ‘대안 단백질’ 또는 그 밖의 학술적 용어로 불러야 한다. GMO 문제에 대해서도 그랬듯이, 푸드테크 영역의 먹거리에 대해 제대로 된 용어를 쓰는 것은 소비자 혼란 초래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 연구위원은 “식품자본의 대체식품 영역 접근을 통한 ‘그린워싱’을 경계해야 한다”며 “기후정의를 이야기하는 시민 모두가 이러한 시도에 맞서 전면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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