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푸드테크에는 보이지 않는 농민·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 입력 2023.02.12 18:00
  • 수정 2023.02.15 17:56
  • 기자명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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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소가 위치한 용산은 요즘 핫플(핫플레이스의 줄인말)이라 불리는 곳이다. 주변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새로 들어선 가게 앞에서 환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면용 기기 등을 판매하던 허름한 건물이 이제는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오는 핫플 카페가 됐다.

핫플에서 볼 수 있는 먹거리도 변화의 중심에 있다. 김치찌개, 순댓국, 백반 등과 같은 종류에서 이제는 베트남, 태국, 멕시코 음식 등을 판매하는 식당이 늘어났다. 소셜미디어 페이스북, 유튜브에서 인스타그램, 틱톡이 활발한 정보 창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실에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꼰대가 되지는 않을까 잠시 걱정도 해 본다. 이제는 ‘용리단길’이라 이름 붙은 그 길에서 유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고급 양고기 스테이크 집이 된 곳에 있던 장애인단체는 혹시 너무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떠나게 된 것은 아닌지. 핫한 곳이라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몰리고 새롭게 변화가 이어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또 얼마되지 않아 문을 닫는 일이 반복된다. 우리의 삶에서 늘상 유행은 생겨났다가 사라짐을 반복했다. 현재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세입자의 고통과 그곳에서 살았던 잊혀진 것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씁쓸해졌다.

우리나라 농업에도 변화는 언제나 요구돼 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농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신소득작목으로 전환하기도, 빚을 내어 시설을 투자해 시설농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전기, 전자 기술개발에 이어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했고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노동을 대신해주는 세상이 돼가고 있다.

2023년, 농업계에는 음식(Food)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푸드테크(FoodTech)라는 이슈가 던져졌고 아마도 이번 정권의 주요 정책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의 장밋빛 전망에 따라 우리 농업의 미래도 함께 발전시킬 수 있을까? 도시로 떠났던 청년들이 다시 농촌으로 되돌아오고 농촌마을에 활기가 넘치는 미래를 꿈꿀 수도 있게 될까? 하지만 푸드테크 발전방안에서 말하는 미래에 농민은 보이지 않는다. 농민은 사라져 잊혀지고 기술과 기업만이 남아버릴 것 같아 무서운 생각이 앞선다.

푸드테크는 농민, 농업, 농촌, 3농 그 어디에도 주안점을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식물공장에서부터 AI, 스마트팜 뿐만 아니라 온라인 전자상거래, 주문 배달 앱 산업까지 포함되는 푸드테크는 또다시 등장한 겉포장의 변화였다. 농정의 패러다임 전환을 외쳤던 것이 무색하게도 또다시 기술혁신을 앞세운 경쟁력 강화와 성장주도가 대세가 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먹거리 정책에서 농민은 빠질 수 없는 주체이고 식품산업은 농업과 별개가 아니다. 하지만 식품산업에 투자가 늘어나고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식품산업에 뛰어들어도 우리 농민, 농업과 함께 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식품 자본만의 찬란한 미래일 뿐이다. 먹거리 생산의 주체인 농민의 삶과 별개가 아니라 농민에게도 이로운 구조로 식품산업이 설계돼야 한다. 기술혁신, 기업의 발전만큼이나 농민들의 삶도 나아질 수 있다면 우리나라 농업의 상황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어느 것이 우선이고, 무엇을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방향은 달라진다. 농민의 지속가능한 삶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식품산업이 커지는 만큼 우리나라 농민과 농업의 위상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방향에서는 3농의 자리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크다. 이것이 그저 우려일 뿐이라며 외면해서는 안 된다. 쓰러져가는 농민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농민 육성을 본격화해야 한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식품산업에 접목해 국내산 원재료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식물공장이 아닌 농지보전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식량주권 실현도 꿈꿔 볼 수 있다.

화물의 무게가 골고루 철길에 나눠져야 하는 것처럼 정책도 그러해야 한다. 자본을 위한, 일부의 성공을 위한 정책이 아닌 다수 농민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정책이 돼야 한다. 농민과 식품업계 서로에게 상생이 되는, 우리나라 농업과 선순환을 이루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지속가능한 성장 경제를 구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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