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애타는 현장, 굼뜬 행정

  • 입력 2023.06.18 18:00
  • 수정 2023.06.19 06:36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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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올해 유독 비는 와야 할 때 오지 않았고 되레 오지 않아야 할 때 쏟아붓듯 내려 작물에 적지 않은 피해를 야기했다. 또 얼마 전엔 충북·경북․강원 등의 지역에 알사탕만 한 우박이 내려 농작물과 농민들의 마음을 생채기 냈다.

이처럼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지고 또 빈번해지고 있지만, 농업재해 대책은 여전히 미약한 실정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농업 피해 발생 시 정부는 농어업재해대책법에 근거해 농약대와 대파대 등의 복구비를 지급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7월 관련 고시를 개정·시행해 복구비 대부분의 항목을 인상했지만 폭등한 생산비를 반영하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소극적인 지방 행정의 태도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몇몇 현장에선 농민들의 피해 발생 우려를 ‘과도하다’ 여겨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올해 남도종 마늘을 재배 중인 전남지역 농민들은 파종 이후 극심했던 가뭄과 봄철 냉해, 5월 집중호우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크게 우려했지만, 행정에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봄철 냉해만 하더라도 양파와 맥류 등은 피해조사 대상에 포함됐지만 마늘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생산량 감소 및 상품성 저하가 우려된다는 주장을 지속했으나 결국 마늘은 지상부가 푸르다는 이유로, 도복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조사 대상서 제외됐다.

지난달 집중호우 때도 마찬가지였다. 300mm 이상의 폭우로 논·밭이 잠겼고 수확을 앞둔 비대기 마늘에 피해가 우려돼 농민들은 수차례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행정 관계자는 겉만 보고 “작황이 우수하다”는 자평을 해댔을 뿐 전남도나 농림축산식품부에 피해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지난달 말 농민들은 직접 나서 전남도 관계자 등과 현장 간담회를 마련했다. 피해 상황을 알리며 대책 마련을 촉구한 덕에 남도종 마늘 역시 복구비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굼뜬 행정 탓에 피해면적 조사 당시 이미 수확을 마친 농가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재해 발생 시 농가가 받게 될 복구비는 농민들 말처럼 “농약값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지만 올해는 굼뜬 행정 탓에 그마저도 받지 못할 농민이 적지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행정이 조금만 빨리 움직였더라면 수확 전 피해 농가 수를 정확히 조사해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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