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토마토·쥬키니호박의 ‘청천벽력’ … 정부는 ‘있으나 마나’

특정 품종 안전성 파동에 재배농가 직간접 피해 심각

각종 생산비 폭등에 이어 물량폐기·소비위축 날벼락

정부 농가피해 수습 우왕좌왕 … 농민들 부아만 돋워

  • 입력 2023.05.01 00:00
  • 수정 2023.05.02 10:3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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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24일, 경남 고성 농민 A씨의 유기농 쥬키니호박 하우스가 국립종자원에 의해 폐쇄돼 있다. 느닷없이 닥친 GMO 파동에 A씨는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매우 힘든 상황에 놓였다.
지난달 24일, 경남 고성 농민 A씨의 유기농 쥬키니호박 하우스가 국립종자원에 의해 폐쇄돼 있다. 느닷없이 닥친 GMO 파동에 A씨는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매우 힘든 상황에 놓였다.

구토를 유발하는 방울토마토 품종 ‘HS2106’. 유전자조작(GMO) 쥬키니호박 품종 ‘대금’·‘가야금’. 수만 가지 농산물 품종 중 단 세 개일 뿐이지만 파급력은 엄청났다. 문제의 품종을 심은 농민들도, 해당 품종과 전혀 상관없는 농민들도 깊은 상처를 입었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남 고성에서 유기농업을 하는 A씨의 쥬키니호박 하우스는 국립종자원의 ‘출입금지’ 딱지가 붙은 채 폐쇄돼 있다. 오래 전부터 GMO 반대운동에 참여하며 ‘가장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농사를 지어왔지만, 조금이라도 더 농사를 잘 지어보고자 치열하게 공부해서 선택한 품종이 하필 GMO 품종인 ‘가야금’이었다. 한순간에 죄인이 된 기분,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끊임없이 A씨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

A씨를 보듬고 재기를 도와야 할 행정은 오히려 그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음에도 하우스는 아직 폐쇄 상태고 보상안은 베일에 싸여 있다. 보상안이 미확정이라면 작물을 폐기하기에 앞서 재배 면적·실태 조사라도 철저히 이뤄져야 할 텐데, 공무원이 하우스 문 한 번 제대로 열어본 적 없는데도 폐기 절차가 진행 중이다.

더욱 답답한 건 폐쇄된 하우스에서 다시 경작을 할 수 있는지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1년이든 2년이든 박과 작물 혹은 일반 농산물에 대한 경작금지 기간이 부과된다면 농사가 정지된 채 농지 임차료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혹여나 필지가 친환경 인증을 상실한다면 A씨의 유기농사는 무농약부터 시작해 처음부터 다시 기틀을 닦아야 한다.

사태 수습은 국립종자원이 담당하고 있지만, “그냥 와서 현장파악만 하고 간 게 실태조사냐”라는 물음에 “그럼 누가 어떤 조사를 해야 조사라고 생각하시냐”는 답이 돌아오고, “친환경 필지는 유지가 되는 거냐”는 물음엔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농가 피해를 수습하는 정부의 매뉴얼이 부재하다 보니 일선 행정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A씨는 “지금 심긴 호박에 대한 보상은 중요하지 않다. 올해 농사 안지었다 치고 보상 안 받으면 된다. 문제는 농사짓는 사람이 땅이 있어야 살 것 아닌가. 이 필지가 (친환경 인증) 취소되면 난 평생 직장을 잃는 셈인데, 이 문제가 방치되고 있어 그게 울분이 터진다”며 분개했다.

경남 진주에 있는 최현옥·유안열씨의 쥬키니호박 하우스에서 최현옥씨가 작업 중이다. GMO 파동 직전 쥬키니호박 가격은 예년보다 호조였지만, 최씨 부부는 파동이 일어난 시점부터 출하를 시작한 탓에 더욱 속이 쓰린 처지다.
경남 진주에 있는 최현옥·유안열씨의 쥬키니호박 하우스에서 최현옥씨가 작업 중이다. GMO 파동 직전 쥬키니호박 가격은 예년보다 호조였지만, 최씨 부부는 파동이 일어난 시점부터 출하를 시작한 탓에 더욱 속이 쓰린 처지다.

GMO가 아닌, 멀쩡한 쥬키니호박을 심은 농가들도 피해는 여실하다. 사태 초기 출하정지 기간 동안 저장하다 폐기한 물량에 아직 보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설령 충분한 보상이 이뤄진다 해도 이 물량은 전체 피해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사태 이후 곤두박질친 도매가격에 소득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회복의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귀농 첫해에 재앙을 맞닥뜨린 경남 진주 쥬키니 농가 유안열씨는 “30년 전 이곳에서 농사일을 도울 때 쥬키니호박 10kg 가격이 3,000~4,000원이었다. 지금은 박스값과 하우스 비용이 각각 4배씩이나 올랐는데도 최근에 3,000~4,000원 가격이 나왔다”며 “정말 일하기 싫은데 그때그때 수확하지 않으면 작물이 망가져 어쩔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행정의 수습이 원활치 않은 건 이들 일반 농가들도 마찬가지다. 유씨는 “출하정지 이후 지금까지 정부도 지자체도 아무 말이 없다. 보관을 어떻게 하면 보상을 어떻게 해주겠다는 말도 없었다.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한 “주변 지인들에게 ‘쥬키니 좀 줄까’라고 물으면 찝찝해하고 두려워한다. 소비자 인식이 굳어져버려 앞으로의 농사도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유재석 부여군농민회장의 방울토마토 하우스. 인근에선 제법 고품질 방울토마토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속절없이 떨어지는 가격에 수확작업도 농장 관리도 평소보다 의욕이 한풀 꺾인 상태다. 한승호 기자
유재석 부여군농민회장의 방울토마토 하우스. 인근에선 제법 고품질 방울토마토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속절없이 떨어지는 가격에 수확작업도 농장 관리도 평소보다 의욕이 한풀 꺾인 상태다. 한승호 기자

방울토마토도 거의 똑같은 상황이다. ‘구토 유발’이 특정 품종의 문제임이 확인됐음에도 반토막난 가격이 좀체 올라오지 않고 있다. 마냥 출하를 미룰 순 없어도 최대한 작업을 늦추고 있는 탓에 하우스마다 새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들이 즐비하다.

방울토마토 농사 10년차인 유재석 충남 부여군농민회장은 “사태 이후 20일 동안만 따져도 개인적으로 1,000만원 가까운 손실이 난 것 같다. 태풍 같은 건 그래도 한순간 지나가면 끝이지만 안전성 문제가 방송을 탄 이상 적어도 올해 농사는 어렵다고 본다”며 “농민들이 약을 잘못 썼거나 했다면 얼마든지 과오를 인정할 수 있지만, 종자 하나 때문에 이런 파동이 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억울해했다.

또 “정부가 사태 초기에 ‘쓴맛 나는 방울토마토 먹지 말라’고 강조하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 쓴맛이 어쩌구 하니 사람 입맛이란 게 멀쩡한 토마토도 괜히 쓴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 특정 품종에만 문제가 있다는 얘길 확실히 했다면 피해가 있어도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을 것”이라고 야속한 심정을 토로했다.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방울토마토와 쥬키니호박은 노지채소에 비해 투입비용이 월등히 많은 작목들이며, 특히 3~4월 사이 출하하는 물량은 생육기가 겨울을 정통으로 관통하는 탓에 생산비가 일년 중 가장 높다. 자재비·기름값·인건비 폭등 등 시설농가들에겐 특히 무거운 악재들을 감내해가며 올해도 힘겹게 농사를 벌였지만 구토와 GMO라는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났고, 이런 상황에서도 정책의 위로와 도움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충남 부여에서 쥬키니호박 농사를 짓는 심상규씨의 하우스 안. 심씨는 “정부가 ‘보상해 줄테니 저장물량을 폐기하라’더니 한 달째 아무 말이 없고, 재해가 아니니 보험금을 받을 수도 없다”고 답답해했다. 한승호 기자
충남 부여에서 쥬키니호박 농사를 짓는 심상규씨의 하우스 안. 심씨는 “정부가 ‘보상해 줄테니 저장물량을 폐기하라’더니 한 달째 아무 말이 없고, 재해가 아니니 보험금을 받을 수도 없다”고 답답해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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