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토마토-쥬키니호박에 덮친 ‘또 하나의 농업재해’

  • 입력 2023.05.01 00: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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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방울토마토·쥬키니호박 종자 파동은 문제의 품종을 재배한 농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지만, 정상 품종을 재배한 다른 모든 농민들에게도 심각한 소비부진·가격하락 피해를 가져오고 있다. 지난달 19일, 충남 부여군 장암면의 한 방울토마토 농장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낮은 가격에 숙기를 최대한 미뤄 수확한 탓에 그 빛깔이 유난히 붉다. 한승호 기자
방울토마토·쥬키니호박 종자 파동은 문제의 품종을 재배한 농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지만, 정상 품종을 재배한 다른 모든 농민들에게도 심각한 소비부진·가격하락 피해를 가져오고 있다. 지난달 19일, 충남 부여군 장암면의 한 방울토마토 농장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낮은 가격에 숙기를 최대한 미뤄 수확한 탓에 그 빛깔이 유난히 붉다. 한승호 기자

지난 2월 하순경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 “방울토마토를 먹고 구토를 했다”는 게시물이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점점 그 빈도가 늘어나고 신고·보도가 속출하자 정부는 3월 30일 긴급회의를 열어 “방울토마토에 쓴맛이 나면 섭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했다. 피해가 확인된 건 특정 품종(HS2106, 상표명 TY올스타)뿐이었지만, 예년보다 낮은 겨울기온으로 인해 방울토마토 전반에 이상성분이 생겼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2주에 걸친 분석결과 HS2106 품종에 한한 특별한 현상임이 밝혀졌지만 급속히 냉각된 시장은 좀체 정상화되지 않았다. 3월 내내 3kg당 2만원 안팎을 유지하던 대추방울토마토 도매가격은 정부 긴급회의 직후부터 내리막을 타기 시작해 지난달 중순부터 지금까지 1만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문제의 품종을 재배한 20개 농가는 둘째치고, 아무 문제가 없는 3,000여 방울토마토 농가들까지 느닷없이 폭락의 늪에 빠져버렸다.

같은 시기, 쥬키니호박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정부는 3월 26일 부처 합동발표를 통해 국내에서 2015년부터 생산·유통돼온 쥬키니호박 종자 2종(대금·가야금)이 유전자조작(GMO) 호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종자 수입검역에서 GMO 쥬키니호박 종자가 발견된 걸 계기로 올해 국내 종자기업 대상 검사를 강화했고, 결국 충격적인 결과에 직면한 것이다.

우리 스스로 ‘GMO 청정국’이라고 안심하기엔 국가의 책임과 관리가 너무나 안일했다는 게 드러났으며, 문제가 터진 이후에도 정부의 대처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2월 한때 10kg당 6만원대를 찍고 3월에도 2만~3만원대를 기록하던 쥬키니호박 도매가격은 지난달부터 7,000원대와 1만원대를 오가고 있다. 방울토마토와 마찬가지로 17개 GMO 양성농가 외에 3,000여 쥬키니호박 농가 전체가 피해를 입고 있다.

먹거리는 대중이 안전성 이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항목으로, 작은 이슈에도 가격이 크게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 2021년 중국산 ‘알몸배추’ 파동이 일어났을 때 김치 소비가 급감해 애꿎은 국내 배추농가까지 휘청였고, 2010년대 초반까지 고소득 작목으로 뿌리내렸던 매실은 근거조차 모호한 독성 파동으로 지금까지도 매년 생산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이번 방울토마토·쥬키니호박 사태 역시 문제의 품종들이 시장에서 차단된 이후에도 가격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으며 언제쯤 정상 복귀할지도 가늠할 수 없다.

문제의 품종을 재배했든 재배하지 않았든 농민들은 이 사태에서 아무 잘못이 없다. 이는 명징한 사실이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가 한순간에 덮쳤고 소득은 반토막, 반의 반토막이 났다. 전형적인 ‘재해’의 양상이다.

책임질 이들은 분명히 있다. 종자업체들은 철저한 확인이나 검증 없이 비정상적인 종자를 판매했다. 정부는 국내에 유통되는 종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뿐더러 문제가 터진 이후에도 국민들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피해농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며 업체들에 대한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점검도 감감무소식이다.

수십 수백 가지 기상재해와 병해충, 풍작으로 인한 가격하락과 흉작으로 인한 소득감소, 무분별한 수입, 범유행전염병, 농업생산비 폭등 등 농업엔 가혹하리만치 많은 악성 변수가 존재한다. 이번 사태에 따른 농민 피해조차 개인의 손실로 마무리된다면, 농민들은 앞으로 또 하나의 불안감을 짊어지고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어떤 변수들보다도 억울하고 답답한 성격이며, 앞으로 쌀·고추·양파·마늘·배추 모든 품목이 당장 내일이라도 겪을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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