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전망 2023 - 식량안보] 전문가들, 식량주권 대신 ‘수입선 다변화’ 통한 식량안보부터 강조

농업전망 2023을 지배한 식량안보 논리
정부 “해외 곡물 엘리베이터 확보 계획”

  • 입력 2023.01.20 08:14
  • 수정 2023.01.23 08:27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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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김병연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장(왼쪽)이 ‘농업전망 2023' 대회에서 ‘세계질서의 변화와 경제안보'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김병연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장(왼쪽)이 ‘농업전망 2023' 대회에서 ‘세계질서의 변화와 경제안보'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나라 안에서의 식량자급률 강화(식량주권 강화) 노력이 아닌, ‘어느 나라에서 식량을 구하건 소비자에게 공급할 식량만 구하면 상관 없다’는 식의 ‘식량안보’ 논리가 지난 18일 ‘농업전망 2023(농업전망)’ 대회장인 aT센터 제2전시장을 지배했다.

농업전망 제2부 ‘2023년 농정 현안’ 분과 1 ‘식량안보와 농가 경영안정’에서 김종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세계 식량위기를 전망하며 “미국·중국 간 분쟁과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범세계적 공급망 재편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세계경제 격변은 금융시장 등을 통해 곡물 가격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 뒤 “이에 더해 기후변화로 인한 흉작, 기후변화 완화·적응 정책(예컨대 유기농업 정책)에 따른 식량 생산비 상승도 세계 식량시장의 위기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곡물가격 폭등(애그플레이션) 등의 식량위기는 국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전례도 있다. 김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애그플레이션 이전인 2007~2008년 우리나라의 곡물 총 수입액은 3조원 대였으나, 이전과 비슷한 물량이 수입된 2008년 수입액은 6조원을 넘었다. 2021년 기준 곡물 총 수입액은 7조원을 넘어섬으로써 우리나라 농업 총생산액의 12.6%, 총부가가치의 21.3%에 달했다. 애그플레이션 심화로 향후 수입액이 더 폭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황 진단은 농업계 전반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나 제시하는 대안은 완전히 달랐다. 김 연구위원은 식량안보 강화를 통한 세계 식량위기 대응체계 마련을 위한 중심 목표로서 ‘식품 물가안정’과 ‘수입 곡물 전방산업의 경영안정’을 거론했다.

농경연 및 농림축산식품부 등 농관련 기관의 ‘수입 곡물 전방산업의 경영안정’ 기조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농경연은 이날 식량안보 관련 분과 토론자 중 한 명으로 김학수 미국곡물협회 한국사무소 대표를 앉혔다. 김학수 대표는 “식량안보 측면에서 곡물 유통망의 확보가 중요하다. 이는 한국 곡물산업의 세계화 측면에서 중요한 접근”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곡물협회는 미국산 옥수수·수수·보리 등의 곡물과 에탄올·주정박 등 관련 제품의 해외시장 개척을 목적으로 1960년에 설립한 미국의 비영리 사단법인이며, 미국산 곡물의 시장개척 활동 및 이미지 제고를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다.

또 다른 토론 참가자인 정원호 부산대 교수는 “밀·콩 등 타작물 재배에 대한 지원사업 강화를 통해 자급률이 낮은 품목에 대한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 뒤 “쌀 대책은 (현재 현장 농민들이 제기 중인) 시장격리 조치 대신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쌀 정책과 밭작물 정책을 나란히 놓고 “정부가 쌀에 대한 가격 보장도 해주고, 농작물재해보험을 통해 쌀 수확량 감소분도 보장하다 보니 (농민들이 쌀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밭작물의 경우 상대적으로 자급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전한영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현재 국내에서 쌀은 소비 감소 등으로 남는다. 반면 밀·콩은 여전히 자급률이 낮다. 쌀에서 밀·콩 등 타 작물로 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는데, 생산성 강화방안으로 제시한 게 푸드테크,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팜 등 현장 절대다수의 농민들로선 접근하기 어려운 방안들이었다.

국내에서 조달 불가능한 식량은 ‘해외 곡물 엘리베이터’를 통해 들여오겠다는 게 이날 전 정책관의 입장이자 농식품부의 기조다. 해외 곡물 엘리베이터란 민간기업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곡물유통시설을 뜻한다. 전 정책관은 “해외 곡물 엘리베이터를 현 정권 내에 5개소까지 확보해서 국내 반입 곡물량의 18~20%까지를 우리 자본으로 들여오겠다는 게 농식품부의 계획”이라며 “현재 포스코 등의 기업이 일부 곡물 엘리베이터를 우크라이나·미국 등에 갖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밝혔다.

‘식량주권 확보’보다 ‘공급망 확보’ 문제에 관료·전문가들이 얼마나 집중하는지는 농업전망 제1부 기조강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은 ‘안정적 공급망의 확보 필요성’을 거론하며 “농업 공급망의 주요 지위를 차지하는 국가(예컨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들의 (전쟁 등으로 인한 공급망) 취약성을 확인하게 된 상황에서, 대체 수입처·공급처 확보가 중요하다”며 ‘포괄적 식량안보’ 관점에서 “프랜들리 네이션(우호적인 국가)과의 식량수급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대(對)중국 경제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주장이었다.

직접 거론하진 않았으나, 김 원장의 주장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의 기조와 맞닿아 있다. 미국-중국 간 갈등 고조로 중국과 이어진 공급망이 위기에 처할 수 있으니, 한국은 미국 등 ‘프랜들리 네이션’과의 밀착을 통해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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