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격 폭락한 농산물도 ‘낮은 가격 유지’ 위해 공급량 확대

한파 여파로 상추 등 일부 품목 수급 어려움 포착되나

대책 미비 속 지난해부터 가격 폭락 겪는 품목도 다수

농식품부 ‘폭락 품목’ 공급량 확대 계획에 농민들 분노

  • 입력 2023.01.06 09:00
  • 수정 2023.01.06 09:39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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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정부가 설 명절을 앞두고 물가 안정을 이유로 이미 가격이 폭락한 상태인 배추를 비롯한 농산물에 대한 공급량을 확대한다고 밝혀 농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한 배추밭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배추를 수확해 망에 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가 설 명절을 앞두고 물가 안정을 이유로 이미 가격이 폭락한 상태인 배추를 비롯한 농산물에 대한 공급량을 확대한다고 밝혀 농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한 배추밭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배추를 수확해 망에 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코로나19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보다 자유로운 설 명절에 앞서 장바구니 물가와 폭등한 채소값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는 물가 안정에 총력 대응하겠다며 ‘역대 최대 물량 성수품 공급을 통한 낮은 수준의 가격 유지’와 ‘농산물 할인지원 확대를 통한 소비자 체감물가 완화’를 강조한 상황이다.

전남과 제주지역 한파·폭설과 난방비 급등의 영향으로 상추 등 일부 농산물 수급에 다소 차질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품목의 가격 ‘폭등’은 일시적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식품부도 지난 4일 “예년보다 이른 설 명절을 맞이해 배추·무 등 채소류와 사과·배 등 과일류, 밤·대추 등 임산물 공급은 대체로 안정적이며 축산물 공급도 대체로 양호한 상황이나 닭고기와 계란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이 변수가 되고 있다”며 “설 성수기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해 명절 전 역대 최대 규모의 성수품을 공급하고, 농축산물 할인 지원 규모를 확대하는 등 설 성수품 수급 안정 대책을 추진해 10대 성수품 가격이 전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0대 성수품은 △배추 △무 △사과 △배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계란 △밤 △대추 등이다. 농식품부는 1월 2일부터 20일까지 설 명절 전 3주간 해당 품목의 물량을 평시 대비 약 1.5배 공급하겠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배추는 계약재배 물량 4만2,000톤과 정부 비축물량 1만톤 등을 활용해 일일 평균 160톤을 공급할 예정이며, 무도 계약재배 물량 19만2,000톤과 정부 비축 5,000톤으로 하루 평균 240톤을 공급할 계획이다. 사과와 배도 각각 농협 계약재배 물량 1만8,000톤과 1만3,000톤을 활용, 일 평균 1,059톤과 765톤을 공급한다. 하지만 문제는 농식품부가 역대 최대 물량 공급으로 저가 유지를 약속한 배추·배(신고) 등의 최근 가격이 이미 유례없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무렵 김장철에 앞선 금배추 보도 이후 배추가격은 재배면적과 출하량, 단수 증가로 연일 최저값을 갱신하고 있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10kg 배추 상품의 가격은 지난 10월 이후 줄곧 내리막이다. 지난 4일 상품 배추 10kg 도매가격은 평균 5,072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1년 전 가격인 8,098원 대비 약 37.4%, 평년 가격 7,009원 대비 약 27.4% 하락한 값이다. 여기에 거듭 뛰어오른 생산비를 고려하면 농민들의 손실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가 공급 확대를 강조한 배(신고) 역시 가격 하락세를 겪고 있는 대표 품목 중 하나다. 지난 4일 15kg 상품의 평균 도매가격은 4만980원으로 1년 전 5만1,612원 대비 약 20.6%, 평년 가격인 4만8,081원 대비 약 14.8% 떨어진 상태다.

이에 현장에서는 정부의 일부 성수품 비축물량 공급에 분노하고 있다. 특히 가을배추부터 이어진 겨울배추 가격 연쇄 폭락에 지난해 말부터 긴급 대책안 마련을 거듭 요구했던 전국배추생산자협회 전남지부와 해남군지회에서는 “가격 폭락으로 현장에서는 거래 자체가 이뤄지질 않는데, 비축물량을 풀어 성수품 공급을 늘리겠다는 건 제정신인 공무원이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일갈했고, 이무진 전국배추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역시 “배춧값 폭락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도 않았는데 공급량을 늘려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생각이 어디서 나온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지금 현장에서는 농민들이 살길을 걱정하고 있는데, 농식품부는 물가잡기에만 혈안이 돼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격분했다.

이어 전국배추생산자협회는 지난 5일 성명을 통해 “농산물 가격 폭락을 조장하는 정부의 설 장바구니 안정 대책을 강력 규탄한다. 5일 가락시장 배추 최하 경매가격은 10kg에 1,800원으로 운반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실정인데, 설을 앞두고 평시 대비 1.5배 이상의 배추를 시장에 푼다는 것이 과연 정부가 할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으며 생산 농민은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 표명인지 분명히 답해야 한다”라고 질타했다.

또 “현재 배추가격 폭락의 근본 원인은 여름배추 가격 상승의 원인을 고려하지 않고 수입 농산물로만 가격을 급하게 하락시키려 한 정부의 잘못된 수급정책이다. 이로 인해 현재 거래 자체가 완전히 끊겨 농가는 지난해 농자재값도 갚지 못하는 실정이다”라며 “지난해 12월 농식품부 유통정책관은 전남의 생산자 대표들과 만나 현재의 가격이 유지될 경우 비축 물량 1만톤을 절대 방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조합장과 농민에게 한 약속마저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정부를 농민은 신뢰할 수 없으며, 현재 가을배추 120ha에 대한 출하정지와 폐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시장에 평소보다 1.5배나 되는 물량을 방출하겠다는 정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배추협회는 “가격이 폭락해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면 시장개입이라 어렵다고 답하던 정부가 물가를 핑계로 폭락한 농산물 가격을 더 폭락시키려는 이런 행위를 맘 놓고 한다”며 정부를 향해 시장 방출 계획 철회와 폐기 등의 긴급 가격 안정 대책, 근본 수급 안정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편 농식품부는 공급물량 확대 이외에도 소비자 물가 체감도 완화를 위해 농산물 할인지원 예산 161억원을 배정했다. 이에 1월 5일부터 25일까지 10개 설 성수품과 △양파 △깐마늘 △상추 △오이 △청양고추 △딸기 등 물가부담 경감을 위해 필요한 품목을 대상으로 20%(전통시장은 30%) 할인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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