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고랭지배추 산지인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배추 10kg 도매가격이 1만원대 중반의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이곳 농민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시세는 뛰었어도 대다수 농민들의 소득은 되레 떨어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 상승의 이면에 작황 붕괴가 있다는 건 정한 이치다. 봄철 지독한 가뭄에 이은 여름철 지리한 장마. 생육기 내내 흙이 마를 날이 없었던 고랭지배추는 광범위한 무름병 피해를 입었다. 어느 밭이든 멀리서 봐도 30%는 허옇게 죽었고 가까이서 살펴보면 절반 가까이가 망가져 있다. 이미 지난달 말에 포전매매가 끝났지만 상인들이 잔금을 칼질하거나 계약을 포기하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다.
김영돈 정선군농민회장을 예로 들면 1억9,000만원(3만평)의 계약 금액이 1억1,000만원으로 삭감됐다. 통계청이 조사한 2020년 고랭지배추 경영비를 3만평으로 환산하면 약 1억4,770만원. 본전치기 내지 적자 농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적자 농사보다 농민들을 우울하게 하는 건 농림축산식품부의 방관이다. 종잡을 수 없는 기상이변과 대체작목 없는 ‘강제 연작’으로 고랭지배추 병해는 최근 3~4년 사이 만성화돼버렸다. 농가 피해가 매년 반복되는 구조지만 기후위기 대응이나 토양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정책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농식품부의 촉각은 소비지를 향해 있다. 배춧값이 치솟으면 청와대나 기획재정부로부터 꾸중이라도 들을세라, 언론을 다독이고 물가를 잡겠다는 홍보에 전념한다. 내놓는 발표마다 ‘평년 작황’, ‘평년 가격’을 강조하다 혹여 폭등이 현실화되면 가격억제 대책을 집중시킨다. 그 속에서 농민은 늘 곁다리 신세다.
김영돈 회장은 “언제부턴가 소비자물가에 대한 농업정책만 있고 농민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없어진 것 같다. 무턱대고 가격만 조절하려 하지 말고 농민이 애써 기른 농산물이 소비자에게 잘 갈 수 있도록 생산·유통에 대한 고민을 해줘야 궁극적으로 소비자도 저렴하고 안정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사실 배추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밥상물가 안정’에 대한 농식품부의 집착은 다른 작목들에서 방관을 넘어 압박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전국의 농촌을 절망으로 몰고 있는 쌀값 폭락이 바로 농식품부의 작품이며 마늘·양파·감자, 심지어 생산자단체의 힘이 막강한 축산물까지 물가를 잡기 위한 정책적 수입 확대를 감행하고 있다.
농업이 희생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호황인 것도 아니다. 농민들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폭등한 생산비와 정부의 가격억제 정책 사이에서 압사당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보나, 쏟아지는 정책의 양으로 보나 최근 농식품부의 농업정책은 농민들에게 유난히 가혹하다는 느낌을 준다.
「정부조직법」상 농식품부는 농산·축산, 식량·농지·수리, 식품산업진흥, 농촌개발 및 농산물 유통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다. 업무의 중심이 단연 농업·농촌에 있으며 밥상물가에 이토록 치중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농민을 보지 않는 대통령엔 유권자의 책임이 일부 존재하지만, 농민을 보지 않는 농식품부는 전적으로 그 자신의 직무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