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등진 농식품부 … 농업은 ‘국정공백’

최악 농업경영난 속 농식품부, 물가 잡기에 함몰

쌀 역공매 수매·저관세 수입 등 ‘농민 밟기’ 앞장

“정부 수입 없앤다”던 포부마저 4년 만에 헌신짝

  • 입력 2022.08.28 18:00
  • 수정 2022.08.28 19:0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의 반농(反農) 기조가 굳어지고 있다. 치솟는 생산비와 불안정한 작황으로 농업 현장의 고충이 어느 때보다 심하지만, 모든 걸 뒤로한 채 물가 억제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2021년산 쌀 시장격리는 현 사태의 시작점이자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다. 농식품부는 새로운 쌀 수급정책을 발표하면서 ‘자동 시장격리제’라 홍보했지만 이는 기만이었고, 모든 것을 ‘자동’이 아닌 ‘임의’로 결정했다. 적기를 한참 놓친 수매시기와 부족한 수매량은 시장에 아무 신호를 보내지 못했고, ‘최저가 역공매’라는 기형적 수매 방식은 되레 시장가격을 끌어내렸다. 명백히 쌀값 하락을 유도한 정책이었으며 그 결과 유례없는 낙차의 폭락이 발생, 올 가을 농가와 농협의 재정에 막대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여타 농축산물 수급정책은 수입으로 점철돼 있다. 6월 돼지고기가 할당관세(무관세) 수입의 포문을 연 이후 쇠고기·닭고기·분유의 빗장이 열렸다. 관계부처 합동 대책이라지만 농식품부의 견해가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분야며, 실제로 이 대책 발표 이후 농식품부는 ‘신속 이행방안을 논의’하고 나섰다.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햇마늘 출하 초기부터 저율관세할당(TRQ) 운용 계획이 거론되더니 마늘·양파·감자 등 주요 농산물들에 속속 수입이 추진·이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농축산물 수급정책은 수입으로 점철돼 있다. 지난 2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열린 ‘수입축산물 무관세 철회 및 사료값 대책 촉구 궐기대회’에서 축산농민들이 수입농축산물에 대한 정부의 무관세 적용 결정 등을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현재 우리나라 농축산물 수급정책은 수입으로 점철돼 있다. 지난 2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열린 ‘수입축산물 무관세 철회 및 사료값 대책 촉구 궐기대회’에서 축산농민들이 수입농축산물에 대한 정부의 무관세 적용 결정 등을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수입에 있어 눈여겨볼 것은 농식품부의 선명한 기조 변화다. 최근 5년 사이 농식품부 수급정책엔 “수입 없이 국내에서 수급조절을 하자”는 목표가 서 있었다. 채소가격안정제와 노지채소 의무자조금 등 그간 고안·발전시켜온 굵직한 정책들이 모두 이를 위한 것이었고, 실제로 폭넓은 시세 등락에도 불구하고 2018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양파·마늘 TRQ 운용실적은 ‘0’이었다.

시장가격을 낮추기 위한 농축산물 수입정책은 지금껏 거의 모든 경우 통제불가한 가격폭락을 초래했다. 농식품부의 ‘수입 배제’ 목표도 이같은 문제인식에 기인했지만, 지난해 무렵부터 무슨 이유에선가 흐려진 이 목표가 이젠 완전히 실종된 모습이다.

특히 지난 10일 농식품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문서를 보면, 물가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농정철학 자체가 모호해진 모습이 감지된다. 수입을 확대하는 데 있어 ‘농업인의 불만’을 ‘장애요인’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농축산물 할인의 목적은 종전의 ‘소비촉진’이 아닌 ‘서민부담 완화’가 됐다. 쌀값폭락과 농업생산비 폭등 등 농업현장의 산적한 문제는 언급조차 않은 채 물가대책과 수출·청년농, 농촌공간계획, 반려동물 정책으로 문서를 채웠다.

식량주권 개념의 이해 부족이 엿보이는 대목도 있다. ‘민간기업’의 ‘해외 곡물유통시설’ 확보를 지원해 ‘우크라이나 전쟁 복구 시 민관 협력을 통해 식량 확보 기반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식량주권 대책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식량주권’과 ‘식량안보’를 통용하고 있는 것인데, 시대적으로 매우 중요한 두 과제가 개념부터 엇나간다면 정책이 뒤죽박죽될 가능성이 크다.

농식품부는 태생이 농업을 관장하는 조직인 만큼 그 눈길이 농업을 벗어나면 운영 철학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통령 업무보고와 실제 정책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건, 농식품부가 농민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농식품부의 빈약한 철학 아래 농정은 사실상 공백 상태에 가까우며 이로 인해 농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대통령 집권 초기 이례적이라 할 만한 농민들의 연쇄 봉기가 이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