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돌봄 실천주체들 “지역 먹거리계획-먹거리돌봄 연계 절실”

  • 입력 2022.12.11 18:00
  • 수정 2022.12.11 20:5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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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역사회 민간주체들의 먹거리돌봄 실천사례들이 눈에 띈다. 지역 주체들은 먹거리돌봄이 먹거리계획을 통해 지역농업 및 지역산 먹거리와 연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사회 먹거리돌봄 주체들의 최근 고민은 무엇이며, 어떤 대안을 모색 중일까?

익산 청년식당의 분투

전북 익산 사회적협동조합 청소년자립학교가 운영하는 청년식당에서 지난 8일 안윤숙 이사장(가운데)과 직원들이 관내 결식아동·청소년 50명에게 전달할 도시락 반찬을 포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북 익산 사회적협동조합 청소년자립학교가 운영하는 청년식당에서 지난 8일 안윤숙 이사장(가운데)과 직원들이 관내 결식아동·청소년 50명에게 전달할 도시락 반찬을 포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북 익산시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의 먹거리돌봄을 위한 공간인 ‘청년식당’을 운영하는 안윤숙 청년식당 대표. 그는 익산에서 청소년 자립 관련 활동 및 연구를 장기간 벌여온 청소년 문제 전문가로서, 김흥주 원광대 교수 등과 함께 먹거리연구단을 꾸려 청소년 먹거리문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먹거리돌봄과 농업·먹거리의 연결 문제에 대해 천착하게 됐다.

청년식당은 ‘학교 밖 청소년의 자립 지원 및 먹거리돌봄’을 표방하며 2020년에 개소해, 현재는 식당 2호점 및 지역농산물로 생과일주스를 만드는 ‘청년카페(익산 어양동 로컬푸드직매장 내 입점)’까지 문을 연 상태다. 청년식당은 안 대표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사회적협동조합 ‘청소년자립학교’와 원광대학교 사회적경제센터, 익산시 사회적경제지원지원센터의 운영지원 및 청년식당 자체 수익, 그리고 지역주민과 기업 등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년식당 사업이 여타 아동·청소년 먹거리돌봄 사업과 차별화되는 특징 중 하나는, 식재료를 지역산 농산물 위주로 최대한 활용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안 대표는 “예전부터 익산 농민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역산 농산물·장류를 많이 구매하기도 했고, 10년간 로컬푸드(지역먹거리) 관련 공부도 해 왔다”며 “청소년들의 먹거리로서 라면·햄버거·탄산음료 등이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지역의 건강한 먹거리로 만든 밥상을 차리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청년식당 운영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년식당 개소 뒤 안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역 농민들로부터 된장·고추장·간장·참깨·고춧가루 등을 구매하는 일이었다. 식당 운영에 따른 수입이 생기기 전이라 본인의 사비를 들여 구매했다. 일반 식당이라면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중국산 식재료를 싸게 샀겠지만, 안 대표는 가급적 지역산 또는 국산 식재료를 구매하거나, 익산 로컬푸드직매장의 농산물 중 잉여량을 들여와 식재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쌀의 경우 대부분 익산에서 생산된 친환경 쌀을 활용한다. 익산의 친환경 벼 생산자조직인 익산친환경농민협동조합으로부터 쌀을 공급받고 있다. 청년식당은 일반 쌀 가격으로 친환경 쌀을 구매하고, 차액은 기부금 처리하는 구조다.

수원시민들의 ‘공유냉장고’ 확대운동

경기도 수원시의 공유냉장고. 수원공유냉장고시민네트워크 제공
경기도 수원시의 공유냉장고. 수원공유냉장고시민네트워크 제공
경기도 수원시의 공유냉장고에 담긴 먹거리. 수원공유냉장고시민네트워크 제공
경기도 수원시의 공유냉장고에 담긴 먹거리. 수원공유냉장고시민네트워크 제공

경기도 수원시민들의 ‘공유냉장고’ 확산을 위한 자발적 노력 또한 대표적인 먹거리돌봄 사례 중 하나다.

공유냉장고는 이웃과의 음식 나눔을 통해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줄일 목적과 함께, 이웃과의 먹거리 나눔 및 시민 먹거리접근권 강화 등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냉장고다. 현재 전 세계 약 250개 도시에서 공유냉장고(또는 나눔냉장고)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선 수원시민들이 2017년 말부터 ‘공유냉장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원 시내 곳곳에 현재까지 28대의 공유냉장고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추후 11대 추가 설치 예정). 올해 1월 수원시민들은 ‘수원공유냉장고시민네트워크’를 결성하며 공유냉장고 운동을 통한 마을 먹거리공동체 형성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유냉장고는 어떻게 사용할까. 다른 사람과 음식을 나누고 싶은 사람 누구든지 인근 공유냉장고에 음식을 넣으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 누구든지 공유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갈 수 있다(대신 다량의 음식이 있을 시 1인당 1개의 음식만 가져갈 수 있음). 이용은 24시간 내내 가능하다. 공유 가능 품목은 채소·과일·반찬류 및 가공품·반조리식품·냉동식품·빵·떡·음료수·곡류와 음식점 상품권 등이며, 공유하면 안 되는 품목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과 술·약품류·건강보조식품·불량식품 및 냉장고 장기 보관 식품 등이다.

수원 공유냉장고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의 자치적 노력으로 먹거리접근권 강화를 통한 먹거리돌봄 실천에 나섰다는 점이다. 공유냉장고 운동 주체들이 초창기부터 합의한 기조는 △마을주민 중심의 자체 결의에 따른 사업 진행 △마을의 인적·물적 자원에 기반한 사업 진행 △이웃이 편하게 먹거리를 나누기 위해 낙인효과 최소화 등이었다.

낙인효과란 특정 시설 또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 대해 ‘저 사람은 가난해서 저걸 이용하네’ 식으로 편견·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하는데, 수원시민들은 공유냉장고는 어디까지나 주민 상호호혜적 관점에서 먹거리를 나눠먹고자 활용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며 ‘가난한 사람을 지원하기 위한 공유냉장고’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을 배제했다.

수원시민들의 공유냉장고 운동은 모범사례로서 타 지역으로도 퍼져갔다. 현재 경기도 안산시·광명시·이천시, 서울시 송파구·성북구, 충남 홍성군, 대전시 유성구·동구 등에서도 공유냉장고가 설치되고 있다.

개별 주체 노력만으론 100% 지역먹거리 공급 어려워

지역 청소년 먹거리돌봄 속에 지역 먹거리를 연결시키려는 안윤숙 대표의 의지는 굳건하나, 청년식당이라는 개별 식당 차원에서 그 의지를 100% 실현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다.

안 대표는 “일반 식당은 평균 식재료비가 전체 운영비의 30% 정도인데 우리 식당은 60~70% 들어간다”며 “청년식당에선 가급적 지역산 농산물을 사용하려 하지만, 지역산·국산 농산물만 구입할 시 비용이 일반 식당보다 훨씬 많이 들기에 현실적 운영 측면에선 쉽지 않다. 전체 식재료 중 60% 정도를 지역산으로 쓰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올해 들어 그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원래 청년식당에선 친환경 고춧가루, 돼지 앞다리살 등의 식재료로 만든 데다 육수까지 직접 내서 만든 김치찌개를 5,000원에 판매했으나, 올해 추석 직후 식재료 가격 폭등으로 부득이하게 7,500원으로 가격을 올려야 했다. 또한 국산 두부 한 모의 시중 가격이 3,000~4,000원인 반면, 그보다 큰 중국산 두부 한 모는 2,900원이니 수지타산 측면에서 국산 두부를 쓰긴 쉽지 않다.

로컬푸드직매장에서 구매하는 지역산 농산물의 품목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도 고민이다.

안 대표는 “식당을 운영하고 도시락을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배달하는 입장에선 반찬을 골고루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로컬푸드직매장에선 다양한 품목을 구하기 어렵다. 어떤 날은 상추만 많이 남아 상추만 한가득 갖고 온 적도, 당장 활용할 일은 없던 방울토마토가 많이 남아 그걸 갖고 와 직원들과 나눠먹은 적도 있다”며 “자체 수익과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식당 자체의 힘과 의지만으로 100% 로컬푸드를 공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을 밝혔다.

촘촘히 재구성한 먹거리계획, 먹거리돌봄과 연계시키자

안윤숙 대표는 “익산시여성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토종씨앗을 지키기 위해 사과참외 등 다양한 토종작물을 재배하는 만큼, 이 토종작물을 청년식당에 공급할 수 있는지 문의한 적 있었다. 답은 ‘파전 정도는 만들 수 있으나, 그 이상은 어렵다’였다”고 한 뒤 “우선 토종작물을 재배하려면 3년간 토양을 토종작물이 잘 자라도록 가꿔야 하며, 토종작물 농사는 생산량이 적다 보니 이를 식당 등에 공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지자체 차원에서 계약재배체계를 잘 구축하고 청년농민 육성 등을 통해 농민이 안정적 기반 속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아울러 다양한 작물을 재배·공급할 수 있도록 체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야만 먹거리돌봄과 지역 친환경·토종 먹거리의 연결은 가능하다”고 자신이 느낀 교훈을 이야기했다.

한편 박종아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지난해 수원 공유냉장고 운동의 의미를 평가한 보고서 <수원시 공유냉장고와 마을 공유의 복원>에서 공유냉장고 사업에 대해 “도시 먹거리기본종합전략인 푸드플랜의 프로그램으로서 작동되도록 설정해야 한다”고 한 뒤 “푸드플랜은 다양한 정책을 통해 도시민의 먹거리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 공유냉장고는 공유부엌·공유식당으로 확장돼야 하며 도시텃밭·도시농업이 하나의 기반 프로그램으로 (공유냉장고 사업을) 둘러싸야 한다. 로컬푸드와 친환경농산물은 공유냉장고에 건강성과 환경친화성을 제공하게 된다”며 지역 먹거리계획을 통해 공유냉장고에 친환경농산물 등 건강한 먹거리가 가득 차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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