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사업구조 개편 10년, 그리고 쌀값 폭락 … 농협의 현주소는

2022 국정감사 – 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

  • 입력 2022.10.07 20:56
  • 수정 2022.10.13 17:5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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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 및 금융계열사 포함) 국정감사가 7일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렸다. 모처럼 국회가 아닌 안방에서 의원들을 맞이하게 된 농협 임직원들의 거동엔 아침부터 한층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농협은 조직과 자본 규모가 방대한 만큼 국감이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기관이다. 의원들은 이번 국감에서도 저마다 단단한 준비를 갖춰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최근 농업계 최대의 화두는 쌀이다. 쌀 수매를 직접 수행하는 주체가 농협인 만큼 쌀 재고 및 가격 문제는 농식품부에 이어 농협 국감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졌다. 하지만 쌀 외에도 경제사업 실태나 횡령·비리 문제, 수입농산물 유통 문제 등 굵직한 주제들이 몇 갈래로 나뉘면서 너무 산만하지도, 너무 일률적이지도 않은 균형 있는 감사가 이뤄졌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회장이 산하기관 임원들과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회장이 산하기관 임원들과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쌀 문제, 줏대 없는 농협

농협중앙회는 2021년산 쌀값 폭락으로 인한 전국 농협 손실 규모를 약 2,700억원(RPC 1,350억원, 비RPC 1,35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이자자금 3,000억원과 손실보전금 410억원 등 정책자금이 투입되고 있지만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 최근엔 신곡 수매가가 속속 결정되고 있는데, 자칫 수매가 삭감으로 이 부담이 농민들에게 전가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의원들은 저마다 상황의 심각성을 조명하며 우려와 당부를 덧붙였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향후 격리곡 대책에 대해 “적정 시기에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한다”, 신곡 수매가에 대해 “중앙회가 보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가격결정에 의견을 전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조합장들이 모여서 결정하고 있다”는 등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일부 의원들의 지적을 받았다. 최춘식(국민의힘)·이원택(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에만 모든 걸 맡기지 말고 농협에서 대안 제시를 해줘야 한다”, “수매가 결정을 조합장들이 알아서 하라는 건 정답이 아니다. 농민들 1년 농사 소득이 결정나는 것이기 때문에 중앙회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쌀 문제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던 이 회장이 유일하게 목소리를 높인 부분이 있는데, 애석하게도 농가 정서와는 엇나가는 이야기였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회장에게 “농협이 이렇게 손실을 입게 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정부 양곡정책 실패 이야기를 이끌어내고자 한 질문이었지만, 이 회장은 엉뚱하게도 “지난해 수매를 시작할 때 (중부지역) RPC들을 만나 ‘그렇게 고가로 매입하면 남쪽 RPC들은 어떡하나. 당신들 잘못하는 거다’라고 얘기했다. 그때 너무 고가로 매입했기 때문에 손실이 커졌다”고 답했다. 신 의원은 “농협이 농민들 피해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회장께서 일관되게 중시하는 ‘현장 농민 목소리’를 정확하게 대변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한편 이날 국감 과정에서 정부의 ‘쌀 45만톤 시장격리’에 기만적 요소가 있음이 확인됐다. 정부는 기존 47만톤(정부 37만톤, 농협 10만톤) 격리물량에 더해 이번에 새로 45만톤 추가 격리 계획을 발표했는데,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우성태 농협경제지주 대표에게 질의한 결과 농협이 담당하는 10만톤이 기존·신규 물량에 중복 포함돼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윤 의원실은 국감 도중 즉시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해 “45만톤 격리는 대국민 사기”라고 정부를 강력 비판했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회장이 쌀 문제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회장이 쌀 문제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제사업, 제대로 가고 있나

올해는 농협 사업구조 개편으로 신용·경제사업이 분리된 지 10년째 되는 해다. 때문에 사업구조 개편의 목적이었던 ‘경제사업 활성화’에 대한 의원들의 점검이 활발히 이뤄졌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성적은 낙제점이다. 사업구조 개편 당시 2020년까지 회원조합 출하량의 50%를 중앙회가 책임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까지 40%를 밑돌고, 투자계획 대비 집행실적, 소비자유통 점유비, 조합원·소비자 만족도도 하락 중이다. 어기구(더불어민주당)·이달곤(국민의힘) 등 다수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성희 회장은 이에 “중앙회 책임도 크지만 일선 농민과 조합 책임도 크다. 중앙회가 아닌 백화점 등을 이용하고 나서 상품성 떨어지는 물건만 가져오면 우린 어떡하나”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원택·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사업 수익배분 문제를 지적했다. 이 의원은 “금융사업 수익이 많아지는데 경제사업으로 넘어오는 비중은 적어진다. 농협금융지주의 농업지원사업비 부담 비율을 현행 2.5%에서 4%로 상향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으며, 위 의원은 “금융지주의 돈을 경제지주보다 중앙회가 너무 많이 받아가고 있다. 경제지주가 매취사업을 확대하려면 손해를 감안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지금 예산배분은 그렇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농민과 동떨어진 중앙회의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쌀값 폭락과 농업경영비 폭등 국면에서 ‘물가 안정’을 제1과제로 꼽은 농협중앙회를 비판했고,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역대 최고 수익에도 농협이 농가 환원에 인색하다’는 최근 농민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국감에 반영했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사업구조 개편 이후의 재무구조 악화(차입금 급증) 자체를 우려했다. 그는 “정부 이자 지원까지 중단되는데 금융지주 수익 배분만으로 차입금을 충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시 농협 사업구조 개편에 앞장선 관료들이 지금 고위직인 만큼 농식품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농협의 재정 악화가 농업인 고혈짜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사업구조 개편 이후의 재무구조 악화와 관련된 질의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사업구조 개편 이후의 재무구조 악화와 관련된 질의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횡령’, 그리고 ‘옵티머스’

올 상반기 내내 농협을 따라다닌 ‘횡령’ 이슈 또한 국감에서 빠질 수 없었다. 의원들은 저마다 횡령사고 관련 통계자료를 제시했는데, 기준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금융권 횡령사고의 중심에 농협이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지역농협에서 발생한 사고 역시 중앙회에 관리 미흡 책임이 있게 마련이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은 “개인의 도덕적 해이로 판단하기 전에 시스템적 결함이 있는 건 아닌지 잘 살펴봐 달라”고 말했으며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손해 미수금을 못 채우면 여러분(중앙회 임직원) 월급에서 공제하라. 그 정도 책임경영을 해야 농민들이 신뢰를 갖는다”고 일갈했다. 이성희 회장은 “깊이 반성한다”며 “관리·징계 지침을 새로 만들어 거의 완성 단계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횡령과 별개로 최근 2년 농협 국감을 뜨겁게 달궜던 ‘옵티머스’ 투자사고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손실 규모와 수복 상태를 점검하는 의원도 있었지만, 대개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가 표적이 됐다. 회사에 수천억대 손실을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대표직을 연임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감에선 의원들이 정 대표의 책임을 추궁하다 “다른 기관들과 책임관계를 다투는 중이라 조심스럽다”는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대표의 침착한 설명에 한 발 물러났지만, 올해는 “그만두게 하기는커녕 연임을 시켰나”라는 질책이 크게 몰아쳤다. 늘 안정적인 답변을 내놓는 손 대표도 이 질책에 대해선 연신 “송구하게 생각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농협 직원들의 횡령 사건에 대해 이성희 회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농축협 횡령사고에 대해 이성희 회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회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회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한승호 기자

비정규직·수입농산물·재해보험

질의가 많이 몰리진 않았지만 의미 있는 의제들도 있었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농협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짚었다. 지역농협의 근속 2년 미만 비정규직 비율은 38.8%에 달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DC형 퇴직연금 가입률이 높다. 비정규직을 자동 정규직화하는 제주축협의 선진적 단체협약은 중앙회에 의해 무력화됐으며, 농협하나로유통에선 명절에 지급하는 농촌사랑상품권 액수를 계약 형태에 따라 차별했다. 농협중앙회는 국감 당일에도 정문에서 노조의 시위가 이어질 정도로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는데, 윤 의원이 노조 곳곳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챙겨 국감에 끄집어낸 것이다.

단골 지적인 수입농산물 취급 행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농협이 판매하는 위탁생산(PB)상품들이 대거 수입산 원료를 쓰고 있으며, 중앙회 계열사 구내식당 중에도 수입 식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본지의 하나로마트 수입농산물 판매 실태 기사(정신줄 놓은 농협 … 하나로마트 수입농산물 판매 활개)를 인용하며 “중앙회에 하나로마트 수입농산물 취급현황 자료를 요청했는데 ‘자료가 없다’는 답변이 왔다. 관리도 안되고, 기준도 안 지키고, 제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꾸짖었다.

그 밖에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은 “농협이 협동조합인 이상 보조금 등 국가 위탁사업은 줄여나가야 한다. 업무를 살펴보면 이게 위탁사업인지 자체사업인지 구별도 안 된다”며 농협이 정체성 확립을 위해 농식품부와 선을 그을 것을 주문했고,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납 협약을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했는데 농협은 왜 협약상 지위를 갖고 있으면서 이의제기를 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은 농작물재해보험의 품목 부족, 손해사정 문제, 가입 장벽 등에 개선을 요구했다. 최문섭 NH손해보험 대표는 이 가운데 이모작 가입 조건에 대해 “이모작은 후작 심을 때 전작이 일체 남아있지 않아야 가능했는데, 연구해보니 부당하다 느끼고 올해 가을배추부턴 이 가입조건을 없앴다”고 설명했다.

한편 ‘태양광사업’·‘성남FC’ 등 최근 여야 정쟁의 소재들도 농협 국감에 다수 등장했다. 공격(여당)-방어(야당) 구도가 형성되고 오후 질의에 그 빈도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예년의 다른 정치 이슈들처럼 국감 전체를 지배하진 않았고 이날 농협 국감은 비교적 충실하게 마무리됐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회장이 중앙회 계열사 구내식당에서 수입 식재료를 사용하는 경우에 대한 의원의 질의에 우성태 농협경제지주 농업경제대표이사에게 사실 확인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회장이 중앙회 계열사 구내식당에서 수입 식재료 사용에 대한 의원의 질의에 우성태 농협경제지주 농업경제대표이사에게 사실 확인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가운데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반대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가운데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반대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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