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협이 소신을 세우려면

  • 입력 2022.10.16 18:00
  • 수정 2022.10.17 09:1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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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공기 쌀값 300원’은 농민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원래는 농민들이 최소한 여타 국민들과 대등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부르짖은 구호였는데, 농업생산비가 폭등해버린 근래의 상황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구호가 됐다. 1960년대 정부의 저곡가 정책이 전개된 이래 쌀값은 단 한 번도 농민들에게 충분한 적이 없었고 최근엔 더욱 부족하다.

그런 쌀값을 농협중앙회장이 “너무 비싸다”고 말한다. 지난 7일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 “농협이 (쌀값 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된 이유가 뭐냐”는 의원의 질문에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지난해 (지역농협들이) 수매할 때 너무 고가로 매입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당시 중부지역 농협들에게 “그렇게 고가로 매입하면 남쪽 농협들은 어떡하나. 당신들 잘못하는 거다”라고 꾸짖었다는 얘길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의원의 질의 의도는 정부의 정책실패를 짚고자 한 것이었고, 객관적·상식적인 시각으로 바라봐도 현재 쌀값 문제의 원인은 정책실패 외에 어떤 답도 내놓을 수 없다. 이 회장의 시각은 농업계 대표 인사로서의 판단력은 둘째치고 아예 상식을 벗어나 있다. 그동안 쌀값 사태에 이상하리만치 침묵으로 일관해온 이 회장의 속내가 국정감사에서 비로소 확인된 것이다.

지난해 수확기 전국 평균 쌀값을 밥 한 공기로 환산하면 약 267원이다. 농민들은 300원도 부족하다 여기는 반면 농협중앙회장은 267원도 비싸다 여기고 있다. 농협중앙회장이 얼마나 농민 걱정보다 물가 걱정, 회원조합 재정 걱정을 앞세우고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래서 농협중앙회장은 조합원이 직접 뽑아야 하는 것이다. 중앙회장이 유권자 조합원의 눈치를 본다면 어떻게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고서 어떻게 연임을 노릴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전국 조합원의 표를 등에 업은 농협중앙회장이라면 마침내 소신 있게 농식품부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과 동떨어진 농협중앙회를 정상화하기 위해선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개혁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단 하나, 중앙회장 선거제 개혁(조합원 직선제)만은 아주 간단명료하면서도 단기적 개혁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다.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랜 시간 농업계 모두가 조합원 직선제를 요구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장을 손바닥 안에서 주무르고 있는 농식품부만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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