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줄 놓은 농협 … 하나로마트 수입농산물 판매 활개

예산군 하나로마트 돌아 보니 … 나라 이름 외우기도 벅차

과일·반찬·가공식품은 기본, 채소류까지 수입산 판매 성행

‘싸고 큰’ 수입채소, ‘비싸고 작은’ 국산채소 비교진열까지

국정감사 반복 지적도 헛일 … 농협중앙회도 관리에 손 놔

  • 입력 2022.04.17 18:00
  • 수정 2022.04.18 11:12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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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삽교농협 내포신도시 하나로마트에 진열된 수입과일들. 사과·배 등 국산과일은 눈과 손이 닿기 힘든 맨 윗칸에, 수입과일들은 중하단에 진열돼 있다.
삽교농협 내포신도시 하나로마트에 진열된 수입과일들. 사과·배 등 국산과일은 소비자들의 눈과 손이 닿기 힘든 맨 윗칸에, 수입과일들은 중하단에 진열돼 있다.

농협 하나로마트의 수입농산물 판매는 농협 스스로의 태생을 부정하고 농민조합원의 의사를 무시하는 농협의 심각한 병폐다. 농민들의 규탄과 국회 국정감사에서의 지적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지만, 이제는 그조차 무감각해진 듯 수입농산물 판매가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

“지역농협 하나로마트의 수입농산물 판매 실태가 심각하다”는 제보를 받고 본지는 지난 12일 직접 1개 시·군의 하나로마트를 전수조사해봤다. 관련된 잡음이야 경기부터 제주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이번 제보 지역은 강원도였지만, 본지가 택한 지역은 충남 예산군이다. 일체의 사전정보 없이 ‘무작위’로 골라 찾아간 것이다.

조사 결과, 사실상 예산군내 모든 하나로마트에서 중대한 문제가 확인됐다. 가장 심각한 곳은 덕산농협 하나로마트. 통상 하나로마트에서 취급하는 수입농산물이라면 ‘다문화가정 배려’를 구실삼은 수입 열대과일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에선 무려 중국산 당근이 국산 당근과 나란히 진열돼 있다. 중국산 당근은 식당 위주의 소비로 인해 최근엔 어지간한 도시 대형마트나 중소형마트에서도 잘 구비하지 않고 있는 품목이다.

덕산농협의 국산 세척당근(2개) 판매가격은 약 3,000원.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족히 국산의 두 배 크기는 돼 보이는 중국산 세척당근(2개) 가격은 2,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당근뿐 아니라 키위·땅콩 등도 수입산이 더 저렴한 가격표를 달고 국산 바로 옆에 진열돼 있다.

고덕농협도 마찬가지다. 이곳엔 국산 마늘종과 중국산 마늘종이 함께 진열돼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산 마늘종의 식용 가능 부위는 국산의 2배 이상이며 가격은 국산의 3분의2에 불과하다. 국산 위주의 가치소비를 실천하는 국민이 아직은 소수임을 고려할 때, 덕산농협과 고덕농협은 소비자들에게 중국산 농산물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시적으로는 대중에게 ‘중국산 농산물은 크고 저렴하다’는 인식을 각인시키는, 중국산 농산물 홍보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싸고 큰’ 수입산과 ‘비싸고 작은’ 국산을 비교진열해 놓은 덕산농협 하나로마트의 당근(왼쪽)과 고덕농협 하나로마트의 마늘종. 당근은 제일 왼쪽의 작은 것, 마늘종은 위쪽의 짧고 마디가 많은 것이 국산이다. 가격은 둘 다 중국산이 국산의 3분의2 수준이다. 일반적인 선택기준으로라면 중국산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싸고 큰’ 수입산과 ‘비싸고 작은’ 국산을 비교진열해 놓은 덕산농협 하나로마트의 당근(위)과 고덕농협 하나로마트의 마늘종. 당근은 제일 왼쪽의 작은 것, 마늘종은 위쪽의 짧고 마디가 많은 것이 국산이다. 가격은 둘 다 중국산이 국산의 3분의2 수준이다. 일반적인 선택기준으로라면 중국산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이상은 어디까지나 ‘신선농산물’의 ‘국산-수입산 직접경쟁’ 사례다. 꼭 직접경쟁이 아니더라도 필리핀산 바나나·파인애플, 미국산 오렌지·레몬, 칠레·페루산 포도, 태국산 망고, 멕시코산 아보카도 등 수입과일 취급은 기본 중의 기본이며 뉴질랜드산 단호박, 중국산 콩나물·목이버섯 등 충분히 국내 조달 가능한 품목을 수입으로 대체한 경우도 적지 않다. 가장 규모가 큰 삽교농협 내포신도시 하나로마트의 경우 페루산 포도를 품종별로 5종이나 구비하고, 수입농산물들을 여기저기에 반복 진열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가공식품으로 시야를 돌리면 문제는 걷잡을 수도 없어진다. 대기업 브랜드 점유율이 높은 제품들은 이해하더라도 두부·묵·청국장·막걸리·족발·뻥튀기·통조림햄 등 국산 대체가 가능한 소소한 제품 하나하나에 예외없이 수입원료가 들어있고, 무말랭이·고들빼기김치·도라지무침·연근조림·콩자반·깻잎장아찌 등 즉석반찬류의 주재료도 절반 이상이 수입산이다. 어민과의 상생 의지도 포기했는지, 건어물은 물론 선어·패류의 상당수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예산군엔 8개 농협이 운영하는 15개의 하나로마트가 있다. 이 중 4개소는 극소규모 슈퍼마켓형 또는 자재마트형이고 광시농협은 조사 당일 휴업으로 조사에서 누락됐다. 나머지 10개 점포는 모두 과일·가공식품·반찬류·수산물에서의 ‘대대적’ 수입 취급 행태를 공통적으로 보였다. 다만 신양농협 본점 매장의 경우 수입과일을 판매하지 않고(지점에선 판매) 다른 9개소에선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던 국산밀 제품(대기업 브랜드 밀가루)을 1종 구비하는 성의를 보였다.

소비자 기만적 행태도 눈에 띈다. 고덕농협·예산농협·예산축협은 특정 두부 제품을 즉석두부 형태로 모판에 담아 팔고 있지만 이 두부들의 원료콩은 모두 미국산이다. 예산축협은 ‘로컬푸드’라 써진 냉장 매대에 중국산 당근·콩나물·청포묵·도토리묵을 진열해 놨으며, 삽교농협 응봉점의 청국장엔 ‘채소류(국산)’ 스티커가 붙어있지만 제조사가 붙인 라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호주·캐나다산 콩이 원료다.

수입콩 포장 두부를 파는 것도 논란거리지만, 예산농협·예산축협·고덕농협 하나로마트에선 미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를 얼핏 보면 국산 즉석두부인 양 모판에 담아 팔고 있다. 예산농협 하나로마트의 판두부 아래에 붙은 작은 문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수입한 미국산 콩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수입콩 포장 두부를 파는 것도 논란거리지만, 예산농협·예산축협·고덕농협 하나로마트에선 미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를 얼핏 보면 국산 즉석두부인 양 모판에 담아 팔고 있다. 예산농협 하나로마트의 판두부 아래에 붙은 작은 문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수입한 미국산 콩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농협이 수입농산물을 팔아선 안된다는 ‘법 조항’은 없지만, 농협중앙회의 ‘내부 지침’은 버젓이 존재한다. 수입농산물 판매는 농업 관련조직, 특히 협동조합으로서 분명한 도덕적 결함이며 국정감사의 반복적·중점적 지적사항이기 때문이다.

지침은 수입 신선농산물 일체를 비롯해 상술한 모든 수입원료 품목(묵류·수산물 제외)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지역농협이 이를 단 1회라도 어길 경우 농협중앙회는 자금지원 및 신용점포 설치 제한, 각종 표창·예산보조 제한 등의 제재를 가한다.

그러나 이 지침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2013년부터 매년 최소 2~3회씩 지역농협에 지침과 제재사항을 적시한 ‘수입농산물 취급금지’ 공문을 발송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적발돼 제재를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농협중앙회는 “전국의 조합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일일이 나가 지도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인데, 농협중앙회의 자금력과 전국 지역본부 조직망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역 조합장들의 눈치를 살펴 묵인하고 있다 보는 편이 적합하다.

조사 결과 드러난 수입농산물 판매실태는 지역농협들 스스로 주장하는 ‘다문화가정 배려’로 설명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결국은 농협의 정체성과 조합원에 대한 신의를 포기한 채 수익을 좇고 있다 볼 수밖에 없다. 거듭 밝히지만 본지의 조사는 1개 시·군을 무작위 선정해 진행한 것으로, 단지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고덕농협 하나로마트 즉석반찬 코너에 진열된 반찬들. 무말랭이의 무, 마늘종볶음의 마늘종, 고들빼기김치의 고들빼기, 파래무침의 파래가 모두 수입산이다. 이처럼 주원료가 수입산인 반찬이 절반 혹은 그 이상이며, 즉석반찬 코너를 운영하는 예산군내 모든 하나로마트가 똑같은 실정이다.
고덕농협 하나로마트 즉석반찬 코너에 진열된 반찬들. 무말랭이의 무, 마늘종볶음의 마늘종, 고들빼기김치의 고들빼기, 파래무침의 파래가 모두 수입산이다. 이처럼 주원료가 수입산인 반찬이 절반 혹은 그 이상이며, 즉석반찬 코너를 운영하는 예산군내 모든 하나로마트가 똑같은 실정이다.

수입농산물 판매를 포기하면 농협은 감당 못할 재정난에 빠지게 될까? 전남 담양군 소재 모든 농협 하나로마트는 지난 2018년 농민들의 강력한 비판에 부딪혀 ‘수입농산물 불취급 각서’를 쓰고 지금까지 수입농산물을 취급하지 않고 있다. 다문화가정을 위해 국산 바나나·레몬까지 구해 비치하고 있는 곳도 있다.

정원실 담양 창평농협 조합장은 “수입농산물 판매 근절은 조합장 소신의 문제다. 농협 재정에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한다. 농협으로서 농가소득을 고려해야 하는 게 첫째며,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수입농산물은 취급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고덕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직원이 필리핀산 바나나를 매대에 진열하고 있다. 그 옆으로 미국산 오렌지, 칠레산 포도, 뉴질랜드산 키위, 페루산 애플망고 등이 보인다.
고덕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직원이 필리핀산 바나나를 매대에 진열하고 있다. 그 옆으로 미국산 오렌지, 칠레산 포도, 뉴질랜드산 키위, 페루산 애플망고 등이 보인다.
덕산농협 하나로마트에 국산 땅콩·호두와 중국산 땅콩·호두가 나란히 진열돼 있다. 같은 중량이지만 국산은 8,900원, 수입산은 4,000~5,000원이다.
덕산농협 하나로마트에 국산 땅콩·호두와 중국산 땅콩·호두가 나란히 진열돼 있다. 같은 중량이지만 국산은 8,900원, 수입산은 4,000~5,000원이다.
국내 생산량이 충분한 단호박 역시 뉴질랜드산으로 대체돼 있다. 예산군내에서 수입 단호박이 진열된 하나로마트는 덕산농협, 삽교농협 본점, 삽교농협 내포신도시점, 예산축협 총 네 곳이다.
국내 생산량이 충분한 단호박 역시 뉴질랜드산으로 대체돼 있다. 예산군내에서 수입 단호박이 진열된 하나로마트는 덕산농협, 삽교농협 본점, 삽교농협 내포신도시점, 예산축협 총 네 곳이다.
삽교농협 내포신도시 하나로마트에 미국산 오렌지 특판 행사가 진행 중이다. 매대는 물론 그 뒤쪽으로도 오렌지 박스가 수북이 쌓여 있다.
삽교농협 내포신도시 하나로마트에 미국산 오렌지 특판 행사가 진행 중이다. 매대는 물론 그 뒤쪽으로도 오렌지 박스가 수북이 쌓여 있다.
삽교농협 내포신도시 하나로마트에 진열된 수입과일들. 단지 구색맞추기 수준이 아니라 수입과일이 국산과일을 압도하고 있다.
삽교농협 내포신도시 하나로마트에 진열된 수입과일들. 단지 구색맞추기 수준이 아니라 수입과일이 국산과일을 압도하고 있다.
수산물의 수입산 비중도 상당하다. 건어물·젓갈류·반찬류는 대부분이 수입산이며 선어·패류 중에도 노르웨이산 고등어, 대만산 꽁치, 미국산 가오리, 터키산 소라 등 다양한 국가의 상품을 볼 수 있다. 사진은 보리겨를 깔아 마케팅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 놓은 삽교농협 내포신도시 하나로마트의 중국산 부세 굴비.
수산물의 수입산 비중도 상당하다. 건어물·젓갈류·반찬류는 대부분이 수입산이며 선어·패류 중에도 노르웨이산 고등어, 대만산 꽁치, 미국산 가오리, 터키산 소라 등 다양한 국가의 상품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소쿠리에 보리겨를 깔아 마케팅에도 국산 생선들보다 보다 각별히 공을 들여 놓은 삽교농협 내포신도시 하나로마트의 중국산 부세 굴비.
예산축협 하나로마트 내 ‘로컬푸드’라 써진 냉장 매대에 중국산 당근·콩나물·청포묵·도토리묵 등이 진열돼 있다.
예산축협 하나로마트 내 ‘로컬푸드’라 써진 냉장 매대에 중국산 당근·콩나물·청포묵·도토리묵 등이 진열돼 있다.
예산축협 하나로마트의 판두부. 지역명을 붙여 ‘예산두부’라고 표기한 판두부 역시 원료는 미국산 콩이다.
예산축협 하나로마트의 판두부. 지역명을 붙여 ‘예산두부’라고 표기한 판두부 역시 원료는 미국산 콩이다.
삽교농협 하나로마트 응봉점에 중국산 목이버섯이 진열돼 있다.
삽교농협 하나로마트 응봉점에 중국산 목이버섯이 진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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