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하나로마트에서 장보고 싶다

  • 입력 2022.09.04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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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마땅히 지키고 살아야 할 도리(도덕)가 있고 이를 체화시키기 위해 고안해둔 장치가 예법(법)이다. 농민의 조직인 농협은 도의적으로 수입농산물을 취급해선 안되며 행여라도 이를 망각할까봐 농협중앙회가 내부규정으로 취급 금지 조항을 달아놨다.

규정상 취급이 금지돼 있는 품목은 다음과 같다. 육안으로 원형을 알아볼 수 있는 모든 수입농산물, 그리고 수입농산물을 원료로 한 즉석반찬·즉석절임류·즉석두부·즉석참(들)기름 등. 전국으로 취재를 다니면서 늘상 하나로마트를 체크하고 있지만, 이 품목들이 없는 곳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도덕은 돈 앞에 무너져내렸다. 지역농협 조합장들은 마트의 이윤을 생각하느라 자신의 본분과 조직의 정체성을 팔아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가 되는 게 법인데, 규정을 손에 쥔 농협중앙회가 눈을 가리고 방관하고 있다.

잘 납득이 되지 않지만, 농협중앙회가 “점검할 인력이 부족하다”길래 지난 4월 기자가 대신 점검을 해줘 봤다. 그리고 문제가 확인된 농협들에 규정에 따라 제재를 가했는지(자금지원, 신용점포 설치, 표창 등 제한) 문의하자, 농협중앙회는 40분 동안의 내부 논의를 거쳐 “제재는 이뤄졌지만 어떤 제재인지는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건네왔다. 답변을 듣고 헛웃음이 나온 건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기자는 하나로마트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국산이겠거니 믿고 산 상품이 수입산이었던 ‘배신’을 두어번 당한 뒤, 어차피 원산지를 꼼꼼히 따져야 할 바엔 일반 슈퍼나 마트를 이용하는 게 더 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최대 특징인 ‘정체성’을 포기한 하나로마트가 무엇으로 농민들의 신뢰를 얻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규정을 안 지키는 조합장들과 관리를 안 하는 농협중앙회 모두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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