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드러낸 IPEF … “‘부당한 농식품 수입 제한’은 지양하라”

한국·미국 등 IPEF 참가국들, 장관회의서 각료선언 합의
WTO 협정 기반하에 수입제한 등 각종 '규제 완화' 지향
사실상 미국 농업계 요구 그대로 반영된 채 짜인 기본 틀

  • 입력 2022.09.13 14:2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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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전국민중행동이 지난 8일 서울 코엑스 컨퍼런스룸 앞에서 IPEF 공청회 대응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민중행동이 지난 7월 8일 서울 코엑스 컨퍼런스룸 앞에서 IPEF 공청회 대응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의 내용이 구체화되고 있다. 각계의 우려대로, IPEF 장관회의의 결과물로 도출된 4개 분야 각료선언문엔 ‘농식품 수입을 제한하는 부당한 조치 지양’ 등 우리 농업에 위협이 될 내용이 대거 포함됐다.

미국과 한국·일본 등 14개 IPEF 참가국의 각료들은 지난 8~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IPEF 장관회의에서 △무역 △공급망 △청정경제 △공정경제 등 4개 기둥(pillar)에 대한 각료선언문 채택에 합의하며 공식 협상개시를 선언했다. 이번 장관회의엔 한국 정부를 대표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참가했다.

4개의 기둥 중 ‘기둥 1’인 무역 부문은 농업 관련 내용을 포괄한다. 장관회의에서 참가국 각료들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문에 합치하는 방식으로 △농식품 수입을 제한하는 부당한 조치 지양 △식품 및 농업 공급망의 회복력·연결성 향상 △규제 절차의 투명성 증진 △과학과 위험(요소)에 기반한 의사결정 고도화 △규제·행정 요건에 관한 절차 개선과 협력 증진 △농식품 수출에 대한 부당한 금지 또는 제한조치 지양 △범세계적 식량 공급망에서의 이행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디지털 도구(tool) 및 그밖의 관련 수단·협정 이용 촉진 등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특히 농민들로서 우려되는 내용은 ‘부당한 농식품 수입 제한조치 지양’이다. 미국이 빠진 채 추진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서도 동식물 검역(SPS) 전반에 대한 규제 완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대거 포함된 상황에서, 미국 또한 IPEF를 통해 각종 농식품 수입 제한을 완화하라고 압박할 여지가 생겼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말 IPEF 가동을 선언한 이래, 미국 농업계는 “IPEF에 미국산 농산물의 판로 확보를 위해 농산물 시장개방 관련 내용을 담으라”며 정치권에 로비를 지속해 왔다(본지 992호 <CPTPP 이어 미국발(發) 파고 ‘IPEF’ 들이닥치나> 참고). 아직 각료들의 ‘선언’ 수준이긴 하나, 향후 IPEF 협상의 기본 틀이 될 각료선언문에서부터 미국 농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자국 농산물 판로 확보를 위한 타국 시장개방 압박’ 내용이 담겼다는 점에서 국내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질 전망이다.

한편 각료선언문에 담긴 ‘규제·행정 요건에 관한 절차 개선과 협력 증진’, ‘과학과 위험에 기반한 의사결정 고도화’ 등의 내용은 유전자조작물(GMO) 관련 규제 완화 문제와 직결된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한국의 농업생명공학 규제체계가 미국산 농산물 수출에 “계속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면서 GMO 문제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기조를 보여온 만큼, IPEF를 통해 GMO(유전자가위 기술 포함) 관련 규제 완화를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IPEF 가담국 중 인도의 경우, IPEF의 ‘기둥 1’인 무역 부문 합의엔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피유시 고얄 인도 상공부 장관은 IPEF의 무역 부문 내용이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차별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며, 무역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기둥’에만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IPEF 각료선언문에 드러나는 ‘자유무역 체제 고수’ 입장
WTO 협정이 기본적으로 ‘자유무역 활성화’를 기조로 삼는 만큼, 이를 기반으로 하는 IPEF 장관회의 각료선언문 곳곳에선 사실상 기존 자유무역 체제를 고수하겠다는 관점이 드러난다.

각료선언문의 무역 부문 내용에선 역내 무역 원활화를 위해 △통관절차 간소화 및 투명성 개선 △관세행정의 디지털화 등을 추진한다는 내용,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명목하에 △녹색투자 및 금융 확대 △환경상품·서비스 교역 및 순환경제 촉진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내용이 담겼다. ‘참여국의 투명한 규제절차 확보’, ‘시장경쟁 및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각료선언문에선 IPEF의 ‘기둥 2’인 공급망 부문과 관련해 “역내 국가 간 모든 공급망 협력 과정은 기업 기밀을 보호하고 시장교란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시장 원칙을 준수하며 추진하기로 했다”고 적시해, 기업 이익을 보호하고 시장경제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정작 IPEF의 주도국인 미국은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자국 자동차 제조기업들에만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오히려 자신들이 내걸어 온 자유무역 구호에 위배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IPEF를 자국에 어떤 식으로 유리하게 활용할지, 한국은 이러한 미국발(發) IPEF에 어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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