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다시 식량주권을 외칠 때

  • 입력 2022.06.05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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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미정상 만찬에 참석해 건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미정상 만찬에 참석해 건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이어 우리의 삶을 뒤흔들지도 모를 또 하나의 파고가 들이닥치고 있다. 이름하여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다.

IPEF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제시한 경제·안보협력체다. 바이든 대통령의 구상에 따르면, IPEF는 ‘4개의 기둥(pillar)’으로 구성된다. 그 내용은 △공정하고 복원력 있는 무역 △공급망 복원력 △사회기반시설, 청정에너지, 탈탄소화 △조세 및 반(反)부패 등이다.

4개의 기둥 내용을 보면, IPEF는 미국 등 태평양·인도양 일대 국가들이 수립하고자 하는 ‘공정 무역체계’이자, 전 지구적 과제로 떠오른 기후위기 대응도 함께하려는 목적의 협력체인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현재의 CPTPP)에 대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불공정한 무역협정”이라며 탈퇴 선언을 한 이래, 미국은 현재까지도 CPTPP 재참가 의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일단 미국이 CPTPP와 별개의 판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짠 것은 확실하다. 왜 굳이 새 판을 짰을까? 철저히 관세 철폐, 자유무역 확대 등 경제문제에 초점을 맞춘 CPTPP와 달리, IPEF는 경제문제에 안보문제까지 결합시킨 협력체라는 차이점이 있다. IPEF의 핵심적인 존재 이유는 미국의 새로운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 나아가 포위·압박하기 위해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지난달 23일, 미국은 일본에서 IPEF 정상회담을 개최해 IPEF의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미국이 태평양·인도양 일대 대부분 나라들에 IPEF 초대장을 보내면서도 중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는 초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얀마와 라오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서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이다. 정치체제와 상관없이 포괄적 무역체계를 만들려는 CPTPP와는 차별화되는, IPEF의 ‘중국 압박’ 성격이 여기서 엿보인다.

IPEF를 ‘중국 압박용’으로 사용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최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발언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달 26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보다도 중국의 도전이 국제질서상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며, 중국 일대의 전략적 환경을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IPEF와 쿼드(Quad, 4개국 안보회담.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참가하는 중국 견제 성격의 군사협의체),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자 안보협의체)를 언급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1일엔 “우리(미국)가 구축하려 한 질서는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적이지만, 중국이 추구하는 질서는 반(反)자유주의적”이라고 말했다.

‘자유주의-반자유주의 편가르기’에 나서는 미국과 이에 극렬 반발하는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이제 막 들어선 윤석열정부는 IPEF 가입을 선언하며 미국의 편가르기에 동참했다. IPEF의 ‘4개의 기둥’ 중 ‘공정하고 복원력 있는 무역’ 부문에선 농업 관련 논의도 이뤄질 예정이다. 그러나 농업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일말의 내용이나마 공개돼 예측은 가능한 RCEP이나 CPTPP와 달리, IPEF에선 농업분야에 대해 어떤 구체적 내용도 나오지 않았다. 오리무중과 같은 상황이지만, 우리는 우선 미국의 농업·먹거리 관련 세계전략을 살피며 미국이 IPEF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IPEF가 우리 농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함과 함께, 신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식량주권을 어떻게 지킬지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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