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호 특집] 식량위기 다가오는데 … 떨어지는 쌀값, 반복되는 고통

  • 입력 2022.06.26 18:00
  • 수정 2022.06.26 20:44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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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지난 20일 전북 정읍에서 만난 박형용씨는 "과거에는 단순히 '우리 몸에는 우리 농산물이 좋다'라고 얘기했지만, 기후위기·식량위기 시대에는 개인의 환경과 먹거리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전북 정읍에서 만난 박형용씨는 "과거에는 단순히 '우리 몸에는 우리 농산물이 좋다'라고 얘기했지만, 기후위기·식량위기 시대에는 개인의 환경과 먹거리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던 지난 20일 오전 10시께 만난 박형용(45)씨는 자신의 논 물꼬를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경과 임대로 친환경 농사 3만8,000평과 관행농 2만8,000평 규모의 쌀농사를 짓는 그는 “가뭄이 있었지만 나름 순조롭게 모내기를 끝냈다”고 안도했다.

하지만 박형용씨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기름값과 자재값 등 생산비는 계속 오르는데, 쌀값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가을 수확한 벼의 일부 물량을 지난해 11월 정부 공공비축미(벼 1등급 40kg 기준 7만4,300원)로 판매했지만, 이후에는 산지 벼값이 계속 떨어져 해를 넘기도록 남은 물량을 판매하지 못했다.

정부가 지난 2월 역공매(정부가 정한 예정가격 이하 입찰 물량 중 최저가부터 매입) 방식으로 시행한 1차 시장격리 당시 박씨도 입찰에 나섰지만 기대보다 낮은 예정가격에 낙찰받지 못했다. 5월에 시행된 2차 시장격리도 같은 방식이었지만, 그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남은 벼를 판매하기 위해 농협에 위탁해 입찰에 참여했다. 다행히 낙찰은 됐지만, 아직 가격은 통보받지 못했다. 2차 시장격리 결과 40kg 벼값이 전국 평균 6만643원이었다는 점에서 만족할 만한 가격은 기대하기 어렵다.

박형용씨는 “지난해 10월 농협 수매가격이 40kg 기준 신동진 품종은 6만6,000원, 다른 품종은 6만4,000원이었다”며 “원래 쌀을 수확기에 팔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 자연적으로 (수분이 빠져) 감량이 나는 점 등을 고려해 가격이 조금 오르는데, 올해는 오히려 가격이 더 떨어져 작년 가을에 판 사람보다 손해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박씨는 계속 떨어지는 쌀값이 올가을 수확기 쌀값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박씨는 “이 상태면 올가을이 더 문제다”라며 “농협은 어떻게든 지금 창고에 쌓인 것들을 처분하려 할 텐데, 8~9월에 헐값으로 시중에 유통시키는 상황이 올까 걱정된다. 그렇게 되면 올가을 벼값은 폭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래도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농업기반이 있지만, 소농들은 올가을 훨씬 더 힘들거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농업은 ‘보험’이라고 강조했다.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밀을 먹고 싶다고 해서 언제까지 지금처럼 수입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잖아요. 조금이라도 수입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대체할 수 있는 건 쌀인데, 한 번 무너진 농업기반은 복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설령 쌀이 조금 과잉생산되더라도 쌀농가들이 농업기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해요.”

지난 20일 전북 익산의 이증수씨가 지난 가을 수확 이후 팔지 못하고 쌓아둔 벼 가운데 정부 시장격리곡 낙찰물량을 반출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지난 20일 전북 익산의 이증수(오른쪽)씨가 지난 가을 수확 이후 팔지 못하고 쌓아둔 벼 가운데 정부 시장격리곡 낙찰물량을 반출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다른 농민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3시경 전북 익산시 성당면 대선리 소재 회선경로당 인근 파란 슬레이트 지붕의 창고 앞에 다다르자 어둑한 창고에서 이증수(62)씨가 나왔다. 창고 안에는 노란 지게차 한 대가 쉴 새 없이 1,000kg 톤백(대형포대)을 밖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1,000kg 톤백을 800kg 톤백으로 재포장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논 4만여평을 빌려 농사짓고 있는 그는 “이맘때면 창고가 텅 비어있어야 하는데 벼를 팔지 못해 1,000kg 톤백 60포대를 여태 쌓아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원래는 1,000kg 톤백을 창고에 적재해두면 도매상들이 가져갔는데, 올해는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못 팔아먹고 있었다”면서 “2차 시장격리 때 농협에 입찰을 맡겼는데 60포대 중에 35포대 가져간대서 오늘 작업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 가을에는 40kg 벼값이 6만7,000~6만8,000원 했는데 지금은 정부 격리곡으로 가져가는 게 6만1,000원정도 얘기한다”며 “그나마도 지금 시장 가격은 5만6,000~5만7,000원까지 떨어졌다. 남은 물량은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걱정이다. 이제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다”라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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