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호 특집] 쌀로 터져나는 농협 창고 … 올해산 쌀·채소 수매까지 ‘흔들’

농협 창고에 든 쌀, 아직도 73만톤 … 대규모 적자 불가피

지역농협 경제사업 ‘올스톱’ … 농협도 울상·농민도 답답

  • 입력 2022.06.26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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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21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 산이농협 벼건조저장시설에 농민들로부터 수매한 뒤 판매하지 못한 쌀(톤백) 수백여 개가 빼곡히 쌓여 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감자 선별기도 톤백 보관으로 인해 운영을 못 해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1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 산이농협 벼건조저장시설에 농민들로부터 수매한 뒤 판매하지 못한 쌀(톤백) 수백여 개가 빼곡히 쌓여 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감자 선별기도 톤백 보관으로 인해 운영을 못 해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한승호 기자

속절없는 쌀값 하락에 농가의 개인 보유물량 처리도 막막하지만, 덩치가 큰 농협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다. 재앙 수준의 쌀값 폭락이 닥친 지금, 전국의 농협들도 창고에 쌓인 쌀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시세에 따라 어느 정도 탄력적 운영이 가능한 민간 도정업자들과 달리 농협은 다량의 쌀을 상시적으로 취급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과 벼건조저장시설(DSC)은 자연히 쌀값 폭락의 피해를 직격으로 받게 된다.

해남 산이농협(조합장 김애수)은 6기의 사일로에 순수 창고면적만 800평에 달하는, 단일농협으로는 제법 큰 규모의 DSC를 보유하고 있다. 6월 말 현재, 이곳엔 사일로는 물론 창고 구석구석까지 2021년산 벼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농가 희망물량 전량 수매’를 구호로 7,360톤의 벼를 사들인 지 반년여, 긴급 처리한 야적 물량을 제외하고 6,800톤이 아직도 창고에 묶여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쌀값은 점점 떨어졌고, 한 줄기 희망이던 정부비축은 ‘역공매’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농민과 농협을 등졌다.

김애수 조합장은 “40kg당 6만4,000원에 수매한 벼를 거래처들이 5만4,000원에 팔라 한다. 어림잡아도 17억~18억원의 손해가 나는 건데 어떻게 팔겠나”라며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농식품부도, 농협중앙회도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양파가 들어있어야 할 냉장창고에도 쌀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화재예방을 위해 조명이 설치되지 않은 냉장창고에서 김애수 조합장이 불빛을 비춰 쌀을 보여주고 있다. 한승호 기자
양파가 들어있어야 할 냉장창고에도 쌀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화재예방을 위해 조명이 설치되지 않은 냉장창고에서 김애수 조합장이 불빛을 비춰 쌀을 보여주고 있다. 한승호 기자

손실 자체도 개별 농협이 감당하기 힘든 규모지만 단지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름이 다 되도록 농협의 모든 창고를 쌀이 차지하고 있으니, 다른 경제사업이 마비돼 농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양파는 선별·소분작업할 공간이 없어 간신히 쌓아만 놓은 상태며, 저장 후 판매 적기를 기다려야 할 보리는 수매하는 족족 시세대로 판매하고 있다. 감자 선별기는 쌀 톤백에 가로막혀 먼지만 쌓이고 있고 고추와 초당옥수수 역시 아예 손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올해산 쌀이다. 햇벼 수확기까지 창고와 사일로를 비우려면 늦어도 7~8월부터는 저장벼 판매를 시작해야 한다. 십수억대 손해를 감내하든 햇벼 수매를 대폭 줄이든, 어느 쪽이나 농협에겐 사망선고와 다름없는 길을 당장 스스로 걸어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몇몇 농협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해남지역 다른 농협들만 해도 각각 수천톤씩의 벼를 쌓아놓고 있고, 전국 RPC·DSC 중 4,000톤 이상을 갖고 있는 곳만 추려봐도 40곳이 넘는다. 5월 말 기준, 농협의 전국 벼 보유량은 합계 73만톤. 총 2,400억원 규모의 손실이 예상된다.

박승석 당진해나루쌀조합공동사업법인(통합RPC) 대표는 “손해를 보면서도 1만톤의 잔여물량을 조금씩 판매하고는 있는데 아마도 30억원 가까이 적자가 날 것 같다”며 “설령 3차 시장격리가 이뤄지더라도 가격 추가하락을 막는 의미가 있을뿐, 대규모 적자를 면할 길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충격적인 쌀값 폭락으로 지역농협들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처지며, 통합RPC들은 규모에 비례해 더욱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농업을 굴려가는 가장 큰 톱니바퀴가 농협인 만큼, 농협의 부실화는 농민들에게도 큰 악재다. 쌀값 방기와 가격하락 조장. 정부의 안일한 행보가 농업 문제를 일파만파로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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