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호 특집] “25년 농사지었어도 수중에 남은 게 없다”

  • 입력 2022.06.26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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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21일 경북 영천시 일원에서 농민 김재석(53)씨가 저장 중인 마늘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21일 경북 영천시 일원에서 농민 김재석(53)씨가 저장 중인 마늘을 둘러보고 있다.

 

작금의 농업 현실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한 마디였다.

코로나19 이후 두 배 넘게 급등한 인건비를 비롯해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비료·농약 등의 농자재와 유류비 인상에 대한 현장 목소리는 이미 수차례 다양하게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수확을 마친 마늘 재배 농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속속들이 더욱 깊숙이 그 실상을 드러냈다. 과정별로 소요되는 농기계 작업비에 운반비, 엔진 양수기 가동을 위한 유류비, 건조기 사용으로 인한 전기료까지. 이상기후로 전국이 더위로 들끓었던 지난 21일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만난 마늘 재배 농민은 담담하게 오늘날의 영농 상황을 털어놨다.

농민 김재석(53)씨는 영천시 화남면 일원에서 1만3,000평가량 대서종 마늘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로 25년째다.

김씨는 “예전 아버지 때는 1,000평만 농사지어도 먹고 살고 애들 키우고 할 거 다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13배 넘는 면적을 농사짓는데도 생활비에 애들 학비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오죽하면 25년 농사짓고 살았는데 만기 적금 하나가 없겠나. 생산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고 농산물 가격은 매년 들쭉날쭉하다 보니 소위 깡통 찼던 때가 한두 해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김씨에 따르면 수확기 남성 인력 인건비는 오늘날 18만원으로 올랐다. 그마저 수확 적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알선 업체 요구에 따라 웃돈을 얹어주는 일도 부지기수다. 오른 인건비는 마늘 재배 농가에 특히 체감되는 바가 크다. 파종에서부터 종 제거, 수확, 운반, 선별, 종구 준비까지 일련의 과정마다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정부에선 올해 외국인력 입국이 늘었다고 하는데 현장에선 체감되는 게 사실 하나 없다. 인건비는 오히려 더 올랐고, 사람 구하기 힘든 것도 지난해와 다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김씨는 “인력 문제 떠오르면 정부에선 기계화 얘기부터 꺼낸다. 그런데 1년에 한 번씩 쓰자고 대당 1,000만원 넘는 파종기랑 수확기 살 수 있는 농가가 몇 농가나 되겠나”라며 “기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멀칭, 경운, 수확 등의 기계 작업비도 평당 100원씩은 다 올랐다. 값이 안 오른 게 없다”고 한숨 쉬었다.

인건비 외에도 값 오른 비료, 농약, 유류비 등은 최근 농가의 숨통을 옥죄는 요소다. 비료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 농협에서 일부 지원을 한다지만, 가격이 한 차례 더 상승될 거란 이야기가 최근 확산되며 농가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김씨는 “올해 정말 이래도 되나 싶게 농약에서부터 비료, 유류비까지 올라도 너무 올랐다. 비료값을 지원해준다고는 하나, 경작면적이랑 과거 사용량을 기준으로 할당하는 비료 보조는 솔직히 부족하다”며 “보유 농기계 별로 배정하는 면세유 혜택도 이상기후에는 속수무책이다. 올해는 특히 지난해 가을 이후 비다운 비가 제대로 한 번 내리질 않았을 정도로 극심한 가뭄 때문에 엔진 양수기로 물까지 주느라 경유만 150L 정도 더 썼는데 농업용 트럭 운행을 제외한 양수기 순 사용량만 저 정도다. 여기저기 임차한 농지가 흩어져 있어 농업용 트럭 기름값도 만만치 않은데 주유소 갈 때마다 기름값이 올라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씨에 따르면 수확 후 농작물을 옮길 때 포크레인과 5톤 트럭 사용에만 하루 80만원이 소요된다. 소유한 1톤 트럭으로 가까운 곳의 수확물을 운반하는데 소요되는 기름값은 또 별도다.

이날 김씨는 “며칠 전 평당 1,500원 하는 임차 농지가 나와 보러 갔다. 상태가 나쁘지 않아 다음날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땅주인이 평당 2,000원을 달라고 해 결국 포기했다”라며 “농약·비료값을 비롯해 인건비, 기름값, 하다못해 가장 기본적인 농지 임차료까지 생산비 어느 항목 중 농민이 의지대로 아낄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농산물 가격 역시 농민에게 선택권이 없다. 요새 언론에서 물가 상승 보도가 연일 터져 나오며 농산물 가격 특히 올해 마늘 가격이 좋다고들 떠드는데, 급등한 생산비에 30%가량 줄어든 올해 생산량을 따지고 보면 적정가격 그 이상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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