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3선이면 많이 하셨잖아요

  • 입력 2022.04.1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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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삽화 박홍규 화백
삽화 박홍규 화백

최근 광주광역시 대촌농협(조합장 전봉식)의 조합장직 비상임 전환이 논란이 됐다.「농업협동조합법」상 조합장을 반드시 비상임화해야 하는 기준은 조합 자산규모 2,500억원인데, 자산규모 1,500억원도 채 되지 않는 대촌농협이 굳이 조합장 비상임 전환을 서두른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대의원회에 상정했다 부결된 정관 개정안을 불과 한 달 뒤인 1월에 다시 상정해 턱걸이 통과시켰다는 점에서 그 행보는 가히 ‘필사적’이라 할 만하다.

이 필사적 행보의 이유를 추리해 보건대 ‘조합장 임기 연장’을 그 목적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농업협동조합법」상 상임 조합장은 연임이 2회로 제한돼 3선까지만 가능하지만 비상임 조합장은 연임 제한이 아예 없다. 전봉식 대촌농협 조합장은 현재 3선 상임 조합장이며, 지난 1월 대의원회는 내년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조합장을 비상임화할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였다. 전 조합장은 이번 정관 개정으로 4선 도전 자격을 얻었다.

조합장 선거를 앞둔 3선 상임 조합장들의 비상임 전환 시도는 농협의 고질적인 논란거리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합장 선거 1~2년 전부터 관련 논란이 등장하는 게 거의 통과의례 수준이다. 지난 선거 당시 광양원협과 서충주농협 사례가 대표적이었고 이번 선거 역시 분위기가 다르지 않다. 현장의 증언과 포털에 검색되는 기사만도 부지기수며 이런저런 이유로 이슈화되지 않는 사례들까지 생각하면 농협 전반에 얽힌 심각한 문제다.

현직 조합장 A씨는 “주변에서도 비상임 전환을 한 3선 조합장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요즘은 코로나19를 구실로 대의원회 의결을 비대면으로 진행해 정관 개정이 더 쉽다. 문서를 가지고 서명을 받으면 막상 반대할 사람이 거의 없다”며 “대의원회에서 토론을 거쳐 결정하는 거면 또 모를까 서면으로 비상임 전환을 결정하는 건 더욱 문제가 많다”고 직언했다.

낯뜨거운 방법으로 임기 연장에 성공해서 농협을 건전하게 잘 이끌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러기도 쉽지 않다. 권한을 내려놔야 할 비상임 조합장이면서 상임과 똑같은, 혹은 더 큰 권한을 누리기도 하며, 무엇보다 지역에서 갖는 농협의 위상을 감안할 때 조합장의 장기집권은 지역 내 불건전한 기득권집단 형성, 즉 토호세력화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는 결코 조합장 개개인의 도덕성에 맡겨선 안될, 명백한 제도상의 결함이다.

토호세력화와 부정부패를 경계하는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수협조합장의 연임은 모두 법으로 제한돼 있다. 특히 수협조합장의 경우 상임이 3선, 비상임이 2선까지로 비상임 조합장 연임을 더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조합장 연임의 유일한 이점이 ‘조합 경영방향의 일관성’이라 볼 때, 조합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비상임 조합장에게 상임보다 최대임기를 더 짧게 부여하는 건 지극히 합리적이다.

농협 비상임 조합장의 ‘무제한 연임’은 장점이 뚜렷하지 않고 단점과 폐해는 너무나 뚜렷한「농업협동조합법」의 대표적 독소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말미암아 심하게는 10선 조합장(서울 관악농협)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만들어지고 있고, 상임 조합장들의 임기 연장 수단으로 악용되면서부터는 ‘비상임 조합장제’의 순수한 취지도 훼손되고 있다.

마침 국회에는 비상임 조합장의 연임을 3선까지로 제한하는「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이 발의돼 본격적인 논의를 앞두고 있다. 농협과 관련된 법 개정은 대체로 방대하고 복잡한 경향을 띠지만 이 안건만큼은 ‘조합장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상’ 단순하고 명료한 성격의 것이다. 농협의 고질적 폐단 중 하나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아주 쉬운 기회가 지금, 국회의원들의 눈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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