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비상임 조합장, 상임과 다를 게 뭔가요

비상임조합장-상임이사 체제

‘임기 연장 수단’ 악용된 결과

제도 취지 실종, 탐욕만 남아

  • 입력 2022.04.10 18:00
  • 수정 2022.04.10 18:4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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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 비상임조합장-상임이사 체제의 핵심은 경영의 전문화·체계화에 있다. 조합장이 상임인 조합도 상임이사를 둬 업무를 분장할 수 있지만, 비상임 조합장은 특히 권한을 전폭적으로 위임해야 하는 게 「농업협동조합법」이나 개별조합 정관의 취지다. 경제·신용사업 등 대부분의 사업 및 그와 관련한 실질적 인사권을 상임이사가 갖고, 조합장은 임원 의사수렴과 대외교류·복지후생 정도를 맡는 식이다. ‘4선 제한’을 뚫기 위한 3선 상임 조합장들의 비상임 전환 시도는 비록 그 의도가 추악할지언정 결과적으로는 조합 경영에 합리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법과 정관의 취지가 현실에 정상적으로 반영된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유효하다. 불행하게도 현실에서 비상임 조합장의 권한은 상임 조합장과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절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합장직의 불순한 비상임 전환은, 과정도 추악하지만 결과조차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임기 연장을 위해 조합장직을 비상임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비상임 조합장의 권한이나 급여는 사실상 상임 조합장과 다를 바가 없다. 사진은 지난 1월 27일 광주광역시 대촌면에 걸린 ‘대촌농협 조합장 비상임 전환’ 규탄 현수막. 농민 제공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임기 연장을 위해 조합장직을 비상임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비상임 조합장의 권한이나 급여는 사실상 상임 조합장과 다를 바가 없다. 사진은 지난 1월 27일 광주광역시 대촌면에 걸린 ‘대촌농협 조합장 비상임 전환’ 규탄 현수막. 농민 제공

기본적으로 상임이사가 조합장으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얻기는 대단히 어렵다. 조합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조합의 책임자는 조합장’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비상임 조합장 후보의 핵심 공약이 주로 경제사업일 정도로 최소한 경제사업에의 간섭은 매우 일반화돼 있다. 자신이 주관하는 이사회·대의원회를 ‘활용’하기에 따라 비상임 조합장은 조합 사업 전반에 폭넓은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

상임이사의 ‘목줄’을 조합장이 쥐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표준정관상 상임이사 선임·연임을 결정하는 인사추천위원회 7인 중 적어도 2인이 ‘조합장 사람’으로 보장돼 있고 의장 역시 조합장이다. 사업·인사에 대한 조합장의 간섭에 상임이사가 반발하기 어려운 구조며, 애당초 선임 과정에서부터 조합장에게 맞는 ‘코드인사’가 이뤄지게 된다.

보통은 내부전문성 등의 명분을 들어 조합장의 관리하에 있던 전무급 직원을 상임이사에 앉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라면 특히 기존 조합장-전무 관계에서 큰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조합장 비상임화가 조합장과 정년이 임박한 직원의 임기를 동시에 연장해주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전직 비상임 조합장 A씨는 “말만 비상임이지 상임 조합장의 모든 권력과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자리다. 사업이 분장돼 있지만 회의할 때 조합장이 지시하는 사항을 100% 따라야 하며, 상임이사가 가져야 할 인사권도 실제론 조합장이 다 행사한다”고 증언했다.

그렇다고 급여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전환하면서 급여를 일부 줄인 조합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조합이 대부분이며 비상임 조합장 연봉이 2억원에 이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정학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전반적으로 비상임 조합장의 급여가 상임보다 낮지 않다. 비상임 조합장이 대의원회에 급여 인상안을 올리면서 ‘다른 조합은 우리보다 사업규모가 작은데도 조합장 급여가 더 높다. 조합 체면을 구길 수 없다’는 등의 이해 못할 이유를 댄다”며 혀를 찼다.

비상임 조합장 및 상임이사제가 의미없는 건 아니다. 조합장 대부분이 전문 경영인이 아닌 농민 출신인 만큼 상임이사를 통한 경영 전문화는 분명 필요한 장치다. 하지만 경영 전문화라는 순수한 목적과 의지가 아닌, 임기 연장이라는 야욕이 작용한다면 결과는 크게 틀어질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유효한 해결법은 야욕의 빌미인 ‘무제한 연임’을 끊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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