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보다 막강한 권력, 비상임 조합장의 ‘왕국’

연임제한 없어 종신집권도 가능

강력한 조합 장악과 토호세력화

새 조합장 등장조차 쉽지 않아

  • 입력 2022.04.1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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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비상임 농협조합장의 ‘무제한 연임’이 초래하는 문제는 단지 3선 상임 조합장들의 ‘비상임화 추진’ 추태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조합장들의 장기집권이 그 자체로 훨씬 더 큰 폐해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조합장 3선만 해도 12년, 4선이면 16년 집권이다. 조합장 장기집권은 조합의 일관된 사업추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10년을 훌쩍 넘기는 임기는 일단 사회 통념상으로도 공감을 얻기 힘들다.

더욱이 농협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조직이다. 조합장 임기가 길어질수록 지역의 기득권 권력들과 유착해 토호세력을 형성, 건강한 지역 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개연성이 매우 커진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수협 상임·비상임 조합장 등에 연임 제한규정이 마련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장기집권 조합장일수록 조합 장악력이 커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임원과 직원, 대의원까지 조합장의 측근으로 채워지고 나면, 그 조합엔 더 이상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반영되기 힘들어지고 장기집권 체제는 더욱 견고해진다.

상술한 모든 내용은 가정이 아니라 실제 지역농협 현장에서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임기응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조합장들의 장기집권으로 인해 조합이 협동조합의 본분에 맞지 않게 운영되더라도 비판·견제할 능력 자체를 상실했고, 지역의 유력한 세력과 결탁해 기득권 형성에도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시지역 농협 전직 대의원 A씨는 “조합장이 왕 노릇을 하다 싫증이 나 황제가 되려 하나 싶을 정도다. 직원들도 벌벌 떨고 비상임 조합장이면서 모든 사업을 좌지우지하는데, 대의원·이사들을 자기 사람으로 다 틀어쥐고 있으니 문제를 제기할 길이 없다”고 호소했다.

비상임 조합장의 제한 없는 장기 연임은 조합 및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국내 최다선 조합장(10선)을 보유한 서울 관악농협의 회의 모습. 관악농협 박준식 조합장은 1940년생으로, 1983년 당선 이래 40년째 조합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관악농협 제공
비상임 조합장의 제한 없는 장기 연임은 조합 및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국내 최다선 조합장(10선)을 보유한 서울 관악농협의 회의 모습. 관악농협 박준식 조합장은 1940년생으로, 1983년 당선 이래 40년째 조합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관악농협 제공

문제가 많다면 조합원들이 새로운 조합장을 뽑으면 되겠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우선 익히 알려져 있듯 현직 조합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가 걸림돌이다. 이정학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조합장 후보는 선거운동이나 토론이 모두 제한돼 있지만, 현직 조합장은 일상적 활동이 다 선거운동이 된다. 심지어 축·조의금 같은 경우 조합 돈으로 유권자를 관리하는 셈이다. 선거에서 현직 조합장에게 도전해 이기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는 조합원들의 낙후된 의식이 크게 작용한다. 우리나라 농협은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만든 협동조합이 아닌, 군사정권 하의 관제조직이라는 태생적 결함이 있다. 역사적으로 조합원의 주체의식이 조직의 확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농촌조합은 보수적 지역문화, 도시조합은 폐쇄적 조합구조가 더해져 조합장에게 철옹성을 제공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조합원들이 조합장의 부당한 업무추진을 무산시키거나 조합장을 교체한 사례가 나오는 걸 보면 조합원 의식의 중요성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다.

비상임 조합장 무제한 연임은 조합 상황에 따라선 종신집권까지 가능케 하는 독소조항이다. 지난 2019년 조합장 선거 기준, 전국 조합장은 4선이 67명, 5선 25명, 6선 16명, 7선 이상 5명(최다 10선)이며 최근의 분위기론 내년 선거에서 4선 이상 장수 조합장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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