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농협 유통자회사 통합

‘11월 1일’ 통합회사 출범 코앞인데 내부 혼란 여전

구체적 논의 이제야 시작 … 구매권 논쟁 격화 예상

  • 입력 2021.10.1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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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경제지주의 유통자회사 통합이 외견상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많은 혼란과 잡음을 양산하고 있다. ‘통합회사 출범’이라는 성과만 좇으며 농협이 조급증을 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1월 1일 통합회사 출범이 예정돼 있지만 정상적인 형태로 기능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농협 유통자회사 통합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반쪽짜리 통합’으로 거론된다. 첫째는 5개 유통자회사 중 농협하나로유통을 제외하고 4개사(농협유통·농협충북유통·농협부산경남유통·농협대전유통) 통합에 그쳤다는 점이다. 분산돼 있는 경영 및 영업전략을 일원화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목적으로 오랫동안 5개사 통합을 추진해왔지만, 결국 벽을 완전히 트는 데 실패한 것이다.

말 그대로 자회사에 불과한 여타 4사와는 달리 농협하나로유통은 농협경제지주의 직영회사 성격을 띤다. 인사나 급여체계에 4사와 현격한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노조의 소속도 농협하나로유통은 한국노총, 4사는 민주노총으로 물과 기름 같은 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협이 숙원인 유통자회사 통합을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 불완전 통합이라는 절충안을 택한 것이다.

둘째는 앞뒤가 바뀐 통합 추진이다. 현재 4사 통합은 모든 법적 절차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돼 있지만, 법적 절차를 제외하면 사전작업이 사실상 아무것도 진행된 바가 없다. 일반적으로라면 법적 절차를 추진하기 전에 내부 정리작업이 선행됐어야 할 일이다.

5개사 통합이 무산된 데 대해선 비판이 있을지언정 부득이한 상황을 모두가 공감하고 지나간 분위기지만, 이 두 번째 문제는 앞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현실적 과제다. 4사 노조가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자 농협경제지주도 뒤늦게 이들과 논의에 임하고 있다.

상황은 황당하리만치 촉박하다. 당장 통합회사 출범이 보름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 가장 기본적인 4사 급여체계 통합안이 이제야 논의되기 시작했다. 구매권 조정 문제를 논의할 구매제도개선협의체도 지난달 중순경 구성됐지만 연휴와 사전준비 등의 이유로 아직까지 한 차례의 회의도 열지 못하고 있다.

구매권 문제는 특히 장기적인 조율이 필요한 문제다. 농협경제지주로 구매권을 일원화하는 기본 설계안은 경제지주의 수익만 높이고 통합회사의 자립성을 빼앗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경제지주 주도의 구매효율화와 자회사 주도의 협동조합정신 구현(산지와의 연대)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농협경제지주 측은 “노조의 요구에 따라 경제지주가 통합회사의 경영개선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별도의 조정이 있기 전까진 구매체계의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중앙회가 통합구매 실적을 중요 사업평가 지표로 삼는 이상 결국은 경제지주 통합구매로 갈 것”이라며 “구매권 없는 유통회사는 마케팅도 스스로 할 수 없고, 대외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통합회사 출범 전까지 모든 합의를 마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농협 측은 합의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11월 1일 통합회사를 출범할 계획이며 논의는 출범 이후에 계속 치열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농협의 숙원이었던 유통자회사 통합은 밀어붙이기식 전략으로 일단 발을 뗐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기형적인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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