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시설, ‘있던 곳’에 ‘똑같이’ 지어야만 보험금 준다

농작물재해보험 약관·보험금 지급 기준 ‘또’ 논란
장소 옮겨 복구할 경우 ‘감가상각’해 보험금 책정
업무요령 속 시설 감가율, 농민은 알 수조차 없어

  • 입력 2020.12.13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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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상식을 벗어난 농작물재해보험 약관 및 보험금 지급 기준이 수해를 입은 농민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지난 8월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시설하우스가 완전히 무너진 가운데 경찰들이 하우스 철골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상식을 벗어난 농작물재해보험 약관 및 보험금 지급 기준이 수해를 입은 농민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지난 8월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시설하우스가 완전히 무너진 가운데 경찰들이 하우스 철골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상식을 벗어난 원예시설 농작물재해보험의 약관과 보험금 지급 기준에 농민들이 분개하고 있다. 이미 피해가 발생한 그 자리에 그대로 원예시설을 다시 지어야만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섬진강댐 방류 실책으로 유례없이 큰 피해를 본 전남 구례군에서는 최근까지도 많은 시설농가들이 영농기반을 다시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지만, 보험금 산정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약관과 지급 기준이 발목을 붙잡아서다.

원예시설 농작물재해보험 약관은 ‘손해를 입은 장소에서 실제로 수리 또는 복구되지 않은 때에는 재조달가액(보험의 목적과 동형·동질의 신품을 조달하는 데 소요되는 금액)에 의한 보상을 하지 않고 시가(감가상각된 금액)로 보상합니다’라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에 임차 농지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다른 농지에 시설을 복구하거나 비용 문제로 복구 자체를 포기할 경우, 손해를 입은 시설의 설치년도를 기준으로 감가상각한 금액만을 보상받게 되는데 이때의 보험금이 보통 재조달가액의 30~40% 수준에 불과해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원예시설 보험금의 감가상각 기준은 약관에도 명시돼 있지 않아 농민들로선 보험금이 어떤 이유로 깎였는지 알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손해평가사 업무방법서나 NH농협손해보험(대표이사 최창수, 농협손보) 업무요령서 등에만 농업용시설물 감가율이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농민들은 손해평가사나 농협손보가 무슨 근거로 보험금을 산정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지난 8일 손해보험 관계자 역시 “감가상각 기준이 무엇인지는 내부적으로 업무요령서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농민들은 사실상 확인하기 어렵다”고 문제점을 시인한 바 있다.

시설 농민들에 따르면 보험 가입 후 손해 발생 시 시설 복구 위치와 상관없이 재조달가액 전부를 보험금으로 지급받아야만 시설을 복구하고 다시 영농을 재개할 수 있다. 시설 농민 대부분이 농지를 임차해 사용하므로 원래 있던 곳에 시설을 다시 짓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시설을 다시 짓더라도 얼마 동안이나 농지를 사용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인데, 농민들은 보험금마저 감가상각되면 사실상 시설 복구와 영농 재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구례군의 한 농민은 임차한 농지에 시설을 지어 애호박 등을 재배해왔지만, 지난 수해로 전파 피해를 입은 시설이 있던 자리에 시설을 다시 지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해당 농민은 다른 농지를 임차해 시설을 복구하려 했지만, 감가상각된 보험금이 시설을 다시 짓는 데 필요한 금액의 4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여서 당장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농민은 “보험에 가입할 땐 보험사에서 가입금액으로 2억4,300만원 가량을 얘기하더니 얼마 전 다녀간 손해평가사는 감가상각을 따져 가입금액의 36% 수준밖에 안 되는 8,800만원을 보험금 최고 한도라고 추정했다”며 “집기류를 제외하고도 이전과 같은 규모로 시설을 짓는 데만 2억원 이상이 소요되는데 보험금이 턱없이 부족해 나머지 금액은 빚을 내게 생겼다”고 호소했다.

또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 일원의 700평 시설이 전파되는 피해를 입은 농민 정현우(57)씨는 현행 약관이 담고 있는 감가상각의 불합리함에 대해 성토했다. 정씨는 “보험금을 감가상각해 지급하려면 보험료 산정 시에도 가입금액을 감가상각해 책정해야 한다. 자동차보험을 예로 들면 자동차 연식에 따라 보험료가 인하되는데 원예시설 농작물재해보험은 가입 시 시설을 직접 확인하지도 않고 시설을 다시 짓는데 필요한 비용만큼을 보험가입금액으로 높게 책정한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정부와 지자체 예산이 보험료의 80~90%를 지원하는데, 농민에게 지급할 보험금은 감가상각을 따지면서 보험료는 감가상각을 따지지 않고 보험가입금액을 높게 잡는 만큼 NH농협손해보험에서 부당하게 배를 불리고 있다”면서 “NH농협손해보험은 농작물재해보험의 당초 취지를 잊지 말고 약관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한편 그간 불합리하게 착복한 정책자금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정책보험임에도 불구하고 농작물재해보험이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않고, 보험 자체에 대한 문제가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제기되며 농민 반발도 심화되고 있다”면서 전반적인 보험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에 전농은 원예시설 보험금 산정 등의 문제를 비롯해 농작물재해보험이 지닌 여러 한계점을 농림축산식품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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