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체 농민수당’ 위해 넘어야 할 산들

공익형직불제와 가치충돌 우려 불식해야
“농민수당의 완성, 지역 안착이 선결과제”
지역 중심·지자체 권한 확대에 공감대 형성

  • 입력 2020.07.05 18:00
  • 수정 2021.07.07 09:5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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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10일 충북지역 농민들이 충북도청 앞에서 충북 농민수당 조례제정 및 농민수당 입법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충북 지역은 주민 발의 조례안이 의회에 제출됐으나 충북도에서 6개월 넘게 불수용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안기원 기자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10일 충북지역 농민들이 충북도청 앞에서 충북 농민수당 조례제정 및 농민수당 입법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충북 지역은 주민 발의 조례안이 의회에 제출됐으나 충북도에서 6개월 넘게 불수용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안기원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현주·한우준 기자]

 

농민수당 확산의 시발점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라고 볼 수 있다. 첫 등장은 2016년 총선 당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농민요구안에 포함된 월 20만원의 농민수당이었고, 2년 뒤 지방선거에서는 농촌 지자체들이 현실을 타개할 자구책으로 주목해 많은 지역에서 주요 의제로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농민수당을 공약으로 수용했던 지자체장들은 바로 농민들과 함께 실질 이행에 나섰는데, 불과 반년 뒤 해남군이 조례를 제정하며 전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후 전남에서 농민수당을 시행하는 기초 지자체가 많아지자 자연스레 광역화 시행도 힘을 받았다. 전북·전남은 물론이고 호남 바깥의 광역 지자체들도 농민운동의 요구를 받아 속속 조례를 제정하면서. ‘농민들이 아래에서부터 직접 시작해 국가정책으로 만들겠다’는 이 계획의 2단계는 대체로 순조로이 진행 중이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충남은 농가당 연간 60만원으로 정한 초기의 틀에서 벗어나 지급액을 30% 이상 상향했고, 제주나 경기(농민기본소득)의 경우 최초로 농가가 아닌 농민 개인 단위 지급을 결정하는 등, 내용에서도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광역시행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히자 이제 농민수당 운동의 최종 단계라 이야기할 수 있는 중앙정부 차원의 농민수당 실현을 위한 논의도 시작되고 있다. 농민수당 운동을 이끌었던 전농과 진보당(당시 민중당)은 그 수단으로 입법화를 제시하며 지난해 9월 농민수당법 초안을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농민수당 법제화가 대표 농정공약으로 제시됐다.

 

“‘공익적·다원적 가치 보상’, 직불제만으로 충분치 않다”

이 계획이 처음 세워진 2018년 전후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농민수당의 확산 속도 못지않게 주변 환경의 변화도 눈에 띈다. 새로운 변수는 진통 끝에 ‘공익’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결국 개편을 마친 직불제다. 120만원의 기본형 소농직불제와 가산형 직불제가 추가된 공익직불제는 공익적 가치를 보상한다는 목적이 강화돼 정부 정책으로서의 농민수당과 중복성 충돌이 우려된다.

입법화 과정에서 중복성 논란을 뿌리칠 수 있는 농민수당만의 굳건한 논리는 이미 한 차례 필요성이 환기된 바 있다. 기초 지자체들을 중심으로 농민수당이 한참 확산되고 있던 지난 2019년 초 보건복지부가 둔 ‘훈수’가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농민수당이 ‘중앙정부 허가 없는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고, 보건복지부는 지방정부들의 요청에 농민수당 조례를 검토한 뒤 ‘농민의 소득 보전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라며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확산세에 제동이 걸리진 않았지만 사실상 보건복지부의 간섭을 받는 사회보장제도로 취급된 데다, 추후 공익직불제가 시행되는 등 정책 환경 변화가 일어날 경우 중복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정부의 시선을 드러내 농민들의 반발을 샀다.

도입 운동 초기 농민수당을 설계하는데 참여하고, 이후 전남 농민수당 도입에 매진한 박형대 진보당 장흥군위원장은 공익직불제와의 중복 문제와 관련해 “농민수당 입법화는 공익직불제를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익이라는 글자 하나 붙였다고 똑같이 치부하거나 합쳐버리는 것은 잘못됐다”라며 “아무리 소농직불금이 더해졌다 해도 공익직불제의 근간은 면적과 규모 중심이고, 농민수당은 농민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 중심의 정책”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무진 전농 정책위원장 역시 “소농직불금 역시 면적을 기준으로 일부 농민에게만 소득을 보전하는 것이고, 가산형 직불제들은 의무조건이 붙는다. 농민수당의 모든 농민에게 농사짓는 가치를 보상한다는 내용과 전혀 다르므로, 공익직불제와 중복될 이유가 없다. 기본·가산의 형태로 공익직불제의 일부 내용으로서 포함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지역 안착 더뎌진 가운데 불완전한 농민수당법 발의

박 위원장은 법제화를 위해선 먼저 충분한 동력이 형성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지역의 경험을 입법화 동력으로 밀어붙여야 하는데 지역 정책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으면 ‘불완전한 농민수당법’이 만들어질 우려가 있다”라며 “농민들의 입법화 준비는 준비대로 하되, 지역 중심 농민수당 운동의 완성도를 높여나가야 한다.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는 지역의 도입을 실현하고, 이미 도입한 현장에서는 평가를 통해 지급대상, 농민의 자격문제 등 부족한 점들을 채워나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불완전한 농민수당법’은 21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이미 제출된 상태다. 이는 농민수당의 돌풍을 목격한 정치권에 의해 농민운동 진영과의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이뤄졌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정읍·고창) 등 의원 30명은 21대 국회가 개원한 직후였던 지난달 4일 ‘농어업인 공익수당 지원법안’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제출했다. 필요 예산의 정부 부담 비율을 50%~90%로 설정해 놓은 것 외엔 기존 조례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농민수당의 최저지급 금액 또한 월 10만원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지급대상을 경영체와 농가에 한정한 초기 모델의 대표적 한계점이 그대로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박덕흠 미래통합당 의원도 ‘농업인 기초연금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라는 법률을 냈으나 이름만 기초연금으로 달리할 뿐 그 내용은 완전히 동일하다.

이 정책위원장은 “두 법안은 기존 지자체 조례의 한계에 대한 추가적인 고민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조례에서 바뀐 것이 거의 없는 허술한 법이라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라면서도 “(농민운동 진영의) 본래 계획은 농민수당을 지자체 사업으로 안착한 뒤 제도화한다는 것이었는데, 아직 경남, 강원, 충북의 시행이 이뤄지지 않았고, 먼저 도입한 지자체들 이외엔 도입 시기도 2022년으로 미뤄진 상황에서 이야기가 우후죽순 나오고 있으니 미룰 수도 없는 입장이 됐다. 지급대상 결정을 위한 농민의 정의 등 이미 드러난 문제를 법안에 추가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정책 농민수당은 지역 중심으로 가야”

농민수당의 확산 흐름을 본 전문가들은 농민수당을 국책화할 때 반드시 지방정부의 비중을 확대하고 그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마다 경제·사회·농업 여건이 다르기에 농업의 공익적 역할도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역 현안에 따라 우선 실천해야 하는 공익 활동이 달라져야 한다면, 이에 맞춰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과정을 담당하는 지역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예컨대 2019년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시행 지역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지역별로 우선 개선해야 한다고 느끼는 문제가 달랐다. 홍성이나 함평 응답자는 ‘국토 환경, 자연 경관 훼손’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뽑았고, 경북 김천 응답자는 ‘생태계 및 생물 다양성 훼손’이 중요한 문제라고 답했다”고 지역 상황에 맞춘 정책의 필요성을 말했다.

지방정부 중심의 농민수당에선 그 초점을 농민이 아닌 농촌 전체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경철 농민기본소득전국추진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농민수당이 공익적 가치, 농업의 지속성 보장 등 여러 목적이 있지만 인구정책적 성격도 있다. 현실적으로 지방정부가 농민수당을 하려는 이유는 인구 감소 대응 차원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세수 감소, 조직 축소 등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지방정부가 농촌인구정책에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또한, 실제 지방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지방 공무원이 중앙에 있는 공무원보다 농촌현실을 더욱 잘 안다”며 지역 중심으로 농민수당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박 정책위원장은 “농민수당을 다루는 기관을 총리실 산하로 만들어 농민수당 문제를 농촌수당 문제로 확대하고, 농촌문제나 지역균형발전의 측면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농업이 갖는 공익적 측면을 고려해서 농민수당과 농촌수당 지급액 등은 차이를 둬야 한다. 하지만 농업·농민의 문제는 단순히 농업·농민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농촌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농업·농민의 문제만을 고려하기는 어렵고 농촌 인구의 3/4에 해당하는 농촌 주민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농업·농민도 발전 가능하다”라며 시야 확대의 필요성 또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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