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군 송전탑 주민협의 절차, ‘밀실·졸속’ 파열음 계속

송전탑 반대 주민들, 한전과의 협의 결과 ‘원천 무효’ 재논의 촉구

한전 특별지원금으로 주민 분열 심화, ‘보상 말고 지중화 추진하라’

  • 입력 2024.01.07 18:00
  • 수정 2024.01.07 18:28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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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현재 진행 중인 강원 홍천군 송전탑 건설사업에 대해 사업시행자인 한국전력공사(사장 김동철, 한전)를 향한 주민들의 원성이 계속되고 있다.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입지 선정과 보상 문제 등에 대한 한전과의 협의 및 최종 합의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입장이다.

해당 사업은 ‘500kV HVDC(초고압직류송전)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사업’이다. 신한울 핵발전소 1·2호기와 강릉·삼척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에 보내기 위한 시설이다. 홍천군은 횡성군·양평군과 함께 이 사업의 서부-2·3구간에 들어 있다. 이 구간 총 선로길이는 약 47.66km로 93개의 송전탑이 들어선다.

지난해 9월 취임한 김동철 한전 사장은 취임 후 첫 현장 행보로 이 사업의 현장을 찾는 한편, “적기(2025년 6월) 건설에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10월 승인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서부구간 사업 승인을 신청한 상태라 사업의 시계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홍천군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6일 산자부 앞에서 사업 승인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지중화(송전선을 땅속에 설치)를 포함해 사업 계획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민주적인 주민 참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2019년부터 4년간 투쟁해 온 주민들의 현재 결론이다.

초고압 송전탑 건설 사업은 애초 ‘주민도 모르는 새’에 시작됐다. 주민들은 그간 천막농성, 삼보일배, 차량시위, 일인시위, 입지선정위원회·주민설명회 보이콧 등 생업을 뒤로 하고 싸웠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는 주민의견 수렴 절차에서조차 다양한 방식으로 배제됐다.

「전원개발촉진법」은 한전, 발전사 등 전원개발사업자가 주민 등의 의견을 청취하고 그 의견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이를 실시계획에 반영하라고 규정한다. 또 사업 과정에서 주민 갈등을 해소하고 사업 추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신설된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조항도 1월 19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 시행령도 설명회나 공청회를 개최하되, 이를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할 경우라도 사업에 대한 설명과 주민 의견 청취를 위해 노력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여전하다.

여기에 한전이 지급한 특별지원금을 놓고 주민 사이 갈등과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이 돈은 한전이 내부 규정에 따라 송전선로 경과지 마을과 그 인근 마을에 지급하는 것으로 법령에 따른 보상과는 별개다. 그간 밀양 등 송전탑 건설 지역에서 마을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됐고 주민대표가 이 돈을 유용하는 등 문제가 계속됐다.

홍천군에서도 가장 많은 지역(8개 마을)이 경과지에 들어가는 남면 신대2리엔 지난해 9월 총 25억원(가구당 생활안정지원금 900만원, 마을발전기금 12억5,000만원)이 지급됐고, 현재 20가구가 수령하지 않고 있다. ‘돈을 받는 순간 합의한 걸로 간주’돼서다. 마을에선 ‘누군 받고 누군 안 받았다’는 뒷말이 돌면서 주민 사이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6일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열린 ‘500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홍천군민 기자회견’에서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들이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사업계획실시 승인 절차 전면 중단’을 산자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2월 6일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열린 ‘500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홍천군민 기자회견’에서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들이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사업계획실시 승인 절차 전면 중단’을 산자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주민들 충분한 설명도 못 듣고 서명, 어느새 합의서까지 완료

지난 2일 홍천군 남면 신대2리에서 만난 주민 10여명은 “주민 대부분이 정확한 내용도 모른 채 이·반장이 하라고 하니까 서명”했고, 이 서명으로 선정된 주민대표가 마을 전체와의 논의도 없이 한전과 합의했으므로 “합의서는 원천무효”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에 따르면 주민 대부분은 합의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합의서의 상세 내용을 알지 못한다.

2022년 마을 임원회의에 송전탑대책위원으로 참여했던 가부원씨는 송전탑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초 대책위원에서 해임됐고 논의에서 배제됐다. “주민대표위원들이 지난해 2월 13~16일 용도를 알 수 없는 서명을 받았는데, 신대2리 주민들은 무슨 서명인지도 모르고 참여했다. 심지어 연명부엔 홍천읍에 사는 사람(신대2리 주민이 아님)도 있었다. 대책위원이었지만 송전탑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서명 진행도 내겐 알리지 않았다. 이때 받은 서명으로 선정된 주민대표가 2월 17일 한전과 협의서·합의서를 썼다는 것도 9월 초에야 알게 됐다.” 가부원씨의 말이다.

한전은 협의서는 당시 서명으로 선임된 주민대표와 체결했고, 이후 한전 특별심의과정을 거쳐 최종 합의서 체결 및 공증을 진행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주민들 전반이 협의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총회 등 별도의 공론화 과정도 없었던 상태라 갈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신대2리 주민들의 서명 동의율도 과반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황규천씨는 “찬성하는 이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서명을 받을 때도 왜 필요한 건지 설명하지 않고 이·반장 직위를 이용해 무조건하라는 식이었다. 시골 어르신들의 순박함을 악용했고 절차라는 게 없다. 이걸로 주민들이 알지도 못한 협의서·합의서를 작성했으니, 사문서위조나 마찬가지다. 마을의 중차대한 문제인데 이·반장, 새마을회장, 부녀회장 등 7~8명이 한전에서 하라는 대로 한 거다”라고 일갈했다.

사실 주민 의견수렴 절차는 첫 단계인 입지선정위원회 때부터 파열음을 냈다. 김준옥씨는 “한전이 조직한 입지선정위는 처음엔 (송전탑이) 우리 마을이 아니고 신대1리 쪽으로 간다면서 마을과 마을도 갈라놨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운영도 ‘밀실’에서 이뤄졌다. 김씨는 “입지선정위가 5번 정도 열렸지만, 주민들은 전혀 몰랐다. 언제 한 번 정보가 새서 주민들이 현장을 덮치기도 했다. 모임을 한 번 할 때마다 500만원씩 나왔다는 소문도 있다”라고 전했다. 입지선정위 뒤 만들어진 송전탑대책위는 한마을 안에서 분열을 일으켰다. 김준옥씨는 “대책위원들이 한전에서 돈을 얼마 받았다는 헛소문이 돌아서 대책위원들과 주민 간에도 갈등이 생겼다. 오죽하면 이장 어머니가 ‘얘 어디 가다가 맞아 죽지 않을라나 모르겠다’는 걱정까지 할 정도다”라고 전했다. 결국 송전탑대책위는 지난해 12월 20일 마을 자치 조직인 대동회에서 무기명 투표를 통해 해체됐다.

지난 3일 만난 한 주민의 집 옆에 서 있는 765kV 송전탑. 주민들은 바람이 몰아치는 날 송전탑에서 퍼져 나오는 웅웅 소리가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지난 3일 만난 한 주민의 집 옆에 서 있는 765kV 송전탑. 주민들은 바람이 몰아치는 날 송전탑에서 퍼져 나오는 웅웅 소리가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피해는 이보다 훨씬 더 장기적이다. 송전탑 건설이 가시화되면서 귀농 가구들이 떠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다. 애써 가꾼 집과 땅을 내놨다는 소식부터 매입가에 견줘 바닥을 쳤다는 땅값까지 마을이 뒤숭숭하다.

최순복씨는 “송전탑 보상 문제가 있으니 마을에선 새로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싫어하는 분위기다. 자기 몫이 적어진다고 생각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귀농·귀촌 인구가 유입될 수 없는 환경이라면 홍천군의 미래는 절대 밝지 않다고 우려했다. 대대로 농사짓고 살아온 이들의 재산 손해도 문제다. 남궁유민씨는 “전기 없이 못 산다는 거 우리도 안다. 그렇다면 보상이 이래선 안 된다. 땅을 내놔도 보러 오지도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자고 요구한다. ‘입지선정위나 대책위의 논의 과정 자체가 절차적 정당성이 없으므로 이를 근거로 주민이 합의했다고 보는 건 무효’라는 거다. 협의서·합의서를 작성하려면 마을총회를 열고, 이에 대한 동의 서명을 따로 받아야 함에도 주민대표를 선정하는 서명을 최종 합의의 근거로 썼다는 건 `명백히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한전이 ‘관광 시켜주고 회·한우 사주고, 900만원씩 주는 거’ 그만하고, 지중화 방식의 건설로 다시 협의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마을엔 이미 20여년 전 들어온 765kV 송전탑이 있다. 아버지가 반대했던 765kV 송전탑에 자식이 찬성하는 500kV 송전탑을 더하며 마을이 갈라서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한편 한전은 “주민대표는 신대2리 5개 반에서 각 두 명씩 다양하게 구성했다. 또 협의서·합의서 작성에 대해 주민대표들에게 일괄 위임한다는 주민 서명을 마을이 자체적으로 진행했다고 해서 대표들과 합의를 진행한 것이라 절차상 하자는 없다”라는 입장이다. 지중화 역시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며 “해당 지역은 산악지라 송전선로 유지·보수를 위한 전력구(지하에 케이블을 수용하는 구조물)를 만들기 어렵고 지중화시 자연훼손이 더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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