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만 만족하는 ‘쌀값 20만원’ … 농민들 “쌀값이 재해다”

매년 증가하고 있는 생산비 안중에 없는, 정부만의 ‘쌀값 목표’
정부 뜻대로 20만원 유지 중인 쌀값, 공공비축미 단가 우려

  • 입력 2023.11.05 18:00
  • 수정 2023.11.05 18:15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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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달 5일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농협 앞에서 열린 ‘여주쌀 명성 회복 및 벼 수매가 정상결정 촉구 세종대왕 농민 결의대회’에서 ‘수매가 보장’ 머리띠를 맨 농민들이 굳은 표정으로 농민단체 대표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5일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농협 앞에서 열린 ‘여주쌀 명성 회복 및 벼 수매가 정상결정 촉구 세종대왕 농민 결의대회’에서 ‘수매가 보장’ 머리띠를 맨 농민들이 굳은 표정으로 농민단체 대표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한승호 기자

 

윤석열정부의 ‘자화자찬’ 쌀값 회복 자랑이 계속되자 지난달 30일 전국쌀생산자협회는 올해 농민들의 쌀농사가 지난해보다 더 큰 ‘적자’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만족하는 80kg 쌀값 20만원도 형편없지만 농민들의 볏값은 더 처참하다며 쓴소리와 함께 대책 마련을 촉구한 쌀협회는 “10월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쌀값은 20kg 기준 5만2,387원으로 밥 한 공기(90g)로 환산하면 236원에 불과하다. 자고 일어나면 인건비가 오르고 면세유 가격이 오르고 농지가격이 오르고 은행 이자가 불어나는 마당에 밥 한 공기 쌀값 225원(80kg 쌀값 20만원 가정 시)이 나라의 정책 목표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라며 “통계청 쌀값대로라면 농민들은 볏값으로 40kg 7만원 이상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 정부 정책은 농민이 아닌 가공유통업자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날을 세웠다.

실제 경기·강원을 제외한 충남과 전남·북의 경우 40kg 볏값이 농협 선지급금 기준 5~6만원 선에 불과하며 4만원 수준인 경우도 종종 확인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물가안정’을 앞세운 정부의 할인쿠폰 발행 소식에 하락세를 기록 중이어서 현장 농민들이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쌀협회는 “농민과 함께 공정한 볏값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농협이 자기 잇속만 챙기겠다는 심보로 선지급금이란 이름의 40kg 볏값을 4~5만원으로 정했다. 정부가 말하는 ‘공정한 쌀값’보다 농민들의 볏값 보장이 시급하다”라며 “쌀협회가 실시한 생산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건비와 임대료 인상으로 올해 쌀농사는 지난해보다 더 큰 적자 농사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45년 만의 최대폭 쌀값 하락 사태를 겪고 948만원이라는 참담한 연소득으로 생활하는 농민에게 연이은 비정상 쌀값은 죽으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라고 지적했다.

 

‘쌀값 20만원’이면 ‘적자’

쌀협회가 계산한 올해 200평 쌀농사 생산비는 82만3,750원이다. 연간 170일에 달하는 자가노동비용은 제한 값이다. 농기계 작업비와 병충해 방제비용, 인건비 등 일부 지출 항목이 지난해와 비교해 더 올랐고, ‘쌀값 상승’ 등의 영향으로 토지임대료 또한 올랐기 때문이다.

쌀협회는 볏값을 조곡 40kg 기준 6만2,000원으로 추정해 계산했는데, 200평 한 마지기에 4섬(40kg 조곡 11개 포대)이 생산된다는 가정 아래 수입은 68만2,000원으로 계산된다. 이 결과 농민들은 올해 한 마지기당 14만1,750원의 ‘마이너스’ 수입을 얻게 될 전망이다.

농기계 작업비를 비롯해 토지임대료의 상당한 지역 간 차이를 감안해야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토지임대료가 저렴한 전남 등의 지역에서 거래되는 볏값 역시 경기·강원에 비해 낮은 것을 고려하면 전국 상황은 앞선 쌀협회의 분석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기계를 소유하고 있어 트랙터·이앙기·콤바인 작업비가 소요되지 않는 농민의 경우 앞선 계산보다 나은 수입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일시불로 농기계를 구입하는 농민이 전무한 만큼 이자와 원금 상환비용 등을 따져보면 여건이 모두 비슷할 것이란 게 농민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현장의 농민들은 올해 이상기후의 여파로 방제비용 등이 추가된 것에 반해 생산량이 예상보다 적고 볏값까지 너무 낮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고 있다. 정부의 80kg 쌀값 20만원 타령에 분통을 터뜨린 농민들도 다수다.

지난달 31일 전남 영암군 시종면에서 만난 김봉식 쌀협회 전남본부 사무처장은 “가뭄이니 장마·폭우니 하는 것보다도 쌀값이 ‘재해’다. 정부에서 무슨 법칙처럼 떠받들고 떠드는 80kg 쌀값 20만원은 40kg 볏값으로 7만2,000원 정도인데, 생산비를 보장받기 위해선 볏값이 8만원은 돼야 한다. 쌀값이 20만원(볏값 7만2,000원)이어도 농민들은 적자인데 전남에선 볏값이 7만원인 곳을 단 한 곳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다”라고 전했다.

권혁주 영암군농민회 사무국장 역시 “물가는 매년 상승하고 최저임금도 매년 오르는데 쌀값만 20년 전 그대로다”라며 “평소 2~3번이면 충분할 병해충 방제를 올해는 이상기후 때문에 4~5번까지 했는데 단수는 떨어지고 볏값은 나날이 하락세다. 앞으로 더 떨어질 일뿐이라 걱정이고 내년 볏값도 걱정이다”라고 토로했다.

 

공공비축미 매입단가 하락 우려

정부의 바람대로 수확기 쌀값(80kg)이 20만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올해산 공공비축미 매입가 역시 큰 기대를 걸 수가 없는 상황이다. 공공비축미 매입단가는 10~12월 수확기 전국 산지쌀값(80kg) 평균가격을 40kg 볏값으로 환산해 등급별 차등비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산정하는데, 사실상 올해 정부가 80kg 쌀값 20만원을 목표로 제시해 산지쌀값 상승세를 둔화시킨 탓에 공공비축미 매입단가 산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올해부터 산지쌀값 추정 방식이 산술평균에서 가중평균으로 변경·적용돼 농가 공공비축미 수취액은 더 하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변경된 산지쌀값 추정 방식이 적용될 경우 농가 손해액 발생은 불가피하다. 기존의 산술평균은 조사 대상업체의 쌀값을 모두 더한 뒤 업체 수로 나눠 평균값을 도출하는 단순평균 방식이었지만, 가중평균(비추정평균)의 경우 대상업체 유통량에 가중치를 매겨 쌀값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안호영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5일을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 종전의 단순평균 방식으로 계산한 산지쌀값은 20kg 기준 4만7,145원이었던 반면, 가중평균 방식 적용 시엔 4만4,734원으로 약 5.1%(2,411원)가량 낮게 산출됐다. 당시 안호영 의원은 “2019년산의 경우 407원, 2020년산은 665원, 2021년산은 1,337원의 차액이 발생했다”고 지적하며 “변경된 추정 방식으로 인한 산지쌀값을 공공비축미 매입에 적용할 경우 542억원의 차액이 발생하고 농가에는 차액만큼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쌀값 산정 방식 변경으로 농가가 받는 쌀값이 줄어드는 만큼 공공비축미를 사들이는 정부 입장에선 예산 지출이 매년 수백억원씩 절감된다. 농민은 손해 보고 정부는 예산을 아끼는 통계방식 변경을 즉각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80kg 쌀값 20만원선 유지 기조와 공공비축미 매입단가 산정방식 변경까지 겹쳐 수확기 막바지 산지 볏값과 공공비축미 수취가 하락이 불 보듯 뻔해진 가운데 농민들의 촉각이 쌀값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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