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지적하는 ‘볏값 하락’의 원인, 정부와 양곡 재고·수입쌀

시장서 원하면 수확기 전이라도 비축미 ‘방출’해주는 정부
매년 들여오는 의무수입쌀 가공용 방출도 여전히 높은 편

  • 입력 2023.11.05 18:00
  • 수정 2023.11.05 18:19
  • 기자명 장수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달 말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산지 볏값이 최근 하락하는 이유로 정부, 농림축산식품부의 양곡 정책과 수입쌀 방출 등을 꼽았다.

최근 농식품부는 소비자를 향해 물가안정용 할인쿠폰을 발행하는 한편, 농민들의 생산비 보장 요구에는 ‘쌀이 남아돌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폭락했던 쌀값이 제자리를 찾을 새도 없이 ‘80kg 산지쌀값 20만원’ 유지를 정책 기조로 내걸었으며, 조생종 벼가 수확될 지난 8월에도 양곡재고를 방출해 농민들의 공분을 샀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9월 기준 정부 양곡 재고는 143만톤에 달한다. 이 중 수입쌀 재고가 31만톤이다. 정부는 현재 양곡 재고가 ‘적정 재고량(80~100만톤)’을 크게 초과하는 데다 소비가 침체된 상황에서 올해 회계연도 말 재고량이 160만톤 수준에 달할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정부의 양곡 재고는 시장 상황에 굉장한 영향을 준다. 더욱이 시장 요구에 따라 수확기 이전에라도 민간을 위해 정부 양곡 재고를 ‘방출’한 전적이 있다면 시장에선 정부 양곡 재고 방출에 기대 아닌 기대를 걸고 수확기 산물벼 수매에 적극 나서지 않게 된다. 최근의 상황이 딱 이와 같다.

정부는 지난 8월 16일 ‘원료곡 부족’을 호소하는 농협과 민간 RPC를 위해 산물벼 5만톤 방출을 결정한 바 있다. 이는 더디게 오름세를 타던 쌀값을 제대로 꺾어냈으며, 나아가 시장에 ‘부족하면 언제든’ 정부가 비축물량을 방출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신호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농민들은 정부 양곡 재고 방출과 함께 소비자 물가안정을 위한 ‘할인쿠폰’도 산지 볏값 하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권혁주 영암군농민회 사무국장은 “농협과 민간 RPC 모두 급한 불만 끄겠다는 심산으로 조곡 수매에 나설 뿐 필요한 물량 전체를 확보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부 양곡 재고가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고, 정부가 이를 방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혀 내비치지 않는 까닭에 언제든 물량이 풀릴 수 있다는 걸 감안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남발하는 정부의 할인쿠폰도 현장의 벼 수매에 영향을 준다. 매일같이 RPC를 찾아가 볏값을 확인하는데 할인쿠폰 발행을 발표한 이후부터 볏값이 꺾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권 사무국장은 덧붙여 “쌀값 상한을 알아서 정해버리고 할인쿠폰을 발행하는 정부 때문에 농협 등 RPC에선 쌀 판매를 걱정할 수밖에 없고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농민들로부터 벼를 사들이려 한다. 농민들한테 벼를 사지 않아도 정부 재고량이 많고 요구 시 방출까지 해주니 수확이 진행될수록 볏값이 떨어지는 거다”라며 “정부가 재고 물량을 방출하지 않을 거란 의중만 내비쳤어도 볏값이 이 정도로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또 물가안정을 앞세워 할인쿠폰을 발행하는 일련의 행위 자체가 제대로 된 농산물가격 형성을 막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밖에도 고질적인 ‘수입쌀’ 가공용 방출 문제는 제대로 된 산지 볏값 형성의 대표적 장애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는 농민뿐만 아니라 국회서도 자주 지적받는 부분 중 하나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강조한 바와 같이 매년 40만8,700톤의 의무수입쌀은 가공용과 주정용 등으로 방출돼 정부가 주장하는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을 더욱 교란시키고 있다.

지난해 의무수입쌀의 13.5%만 식용·가공용으로 사용한 일본과 달리 우리 정부는 지난해 전체 수입쌀의 63.7%를 가공용으로, 21.5%를 주정용으로 풀었다. 국내 시장과 경합하는 가공용·주정용 방출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까닭에 농민들은 의무수입쌀을 전량 사료·원조용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