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쿤 투쟁 20년, ‘이경해 정신’ 되새겨 신자유주의 이후 도모해야② - 토론

국회토론회 ‘반(反)세계화 칸쿤 농민투쟁 20년, 신자유주의 시장개방 20년의 고찰’

  • 입력 2023.09.10 18:00
  • 수정 2023.09.10 19:14
  • 기자명 강선일·김수나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김수나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WTO가 농민을 죽인다!”던 이경해 열사의 절절한 외침. 2003년 9월 10일 멕시코 칸쿤에서 울려퍼진 그의 외침은 20년 세월 동안 이 땅 한반도와 세계 농민 모두의 귓속에 내내 울려퍼졌다.

20년이 지났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무너져가고 있다. 세계 농민들은 신자유주의 시장개방 20년을 청산하고 농민이, 민중이 주인 되는 새 세상을 열어가고자 준비 중이다.

밝은 미래를 열어가려면 과거를 잘 되새기며 지금 현재의 발걸음을 힘차게, 여럿이 함께 앞을 향해 내디뎌야 할 테다.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하원오, 전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양옥희, 전여농)·비아캄페시나 및 위성곤·강성희 국회의원 주최, <한국농정> 주관으로 열린 ‘반(反)세계화 칸쿤 농민투쟁 20년, 신자유주의 시장개방 20년의 고찰’ 토론회는 그 발걸음이 시작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칸쿤 농민투쟁 당시와 그 후 20년 세월을 회고하며, 지금 이 순간 이경해 열사의 뜻을 어떻게 이어받으며 살 것인지, 향후 어떤 대안을 만들 것인지를 치열하게 논의했다.

정리 강선일·김수나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반세계화 칸쿤 농민투쟁 20년, 신자유주의 시장개방 20년의 고찰’ 토론회 중 참석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반세계화 칸쿤 농민투쟁 20년, 신자유주의 시장개방 20년의 고찰’ 토론회 중 참석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토론① - 농민운동의 국제연대 강화 계기, 칸쿤투쟁

/ 윤금순 2003년 칸쿤 농민투쟁단 참가자(경북 성주, 당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2003년 9월 10일은 농민운동가로서의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날이었다.

2003년 9월 10일(한국시간 9월 11일), WTO 각료회담 반대투쟁을 위해 모인 세계 민중은 오후 1시 행진을 시작했다. 시위행렬은 우리 농민투쟁단이 만든 전통상여를 앞세우고 행진했다. 각료회의가 열리던 컨벤션센터 앞, 시위행렬은 거대한 바리케이드가 쳐진 ‘킬로미터 제로(KM 0)’에 도착했다. 철망 바리케이드 뒤엔 총을 멘 멕시코 경찰들이 서 있었다. 당시 많은 시위 참가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가졌다. 멕시코는 시위 중 물리적 충돌이 있으면 총을 쏘던 나라였기에, 물리적 충돌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는 거다. 당시 현장에선 경찰이 곧 발포하리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농민들은 바리케이드를 들이받았다.

바리케이드 앞에서의 투쟁 도중, 선두의 한국 농민 두 명이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나 싶더니, 목에 “WTO kills farmers!(WTO가 농민들을 죽인다!)”라고 쓴 팻말을 멘 한 사람이 아래로 툭 떨어지는 게 보였다. 이경해 열사는 곧 병원으로 이송됐다. 우리는 병원으로 이동해 쾌유를 바라는 집회를 열었으나, 끝내 열사는 숨을 거두었다.

병원 앞은 추모의 촛불로 가득 찼다. 세계 각국의 투쟁 참가단은 우리 농민투쟁단을 위로했다. 중남미 분들은 우리 농민들을 처음 봤음에도 눈물을 흘리며 열사를 추모했다. 다음 날인 11일,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생각했던 킬로미터 제로의 바리케이드는 우리 농민을 비롯한 세계 민중의 손에 의해 무너졌다. 각료회담은 성과 없이 무산됐다.

칸쿤투쟁 이후 한국 농민운동 진영은 국제연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 2004년 전농·전여농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비아캄페시나 4차 총회를 통해 비아캄페시나에 가입했고, 2005년 12월 홍콩 WTO 각료회담 반대 원정투쟁을 거치며 더욱 다양하게 다른 나라 농민과의 연대활동을 진행했다.

점차 지구에서 자유무역체제를 뒷받침할 동력은 사라져 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자유무역 및 농산물 수입에 기반했던 한국농정의 관행을 뒤집어야 할 때다. 농민권리와 자연환경 보전에 기반한 농정 실현이 필요한 때다.

 

토론② - 세계 농민과 ‘WTO 장벽’ 걷어낸 기억 생생

/ 전기환 2003년 칸쿤 농민투쟁단 참가자(강원 춘천, 당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2003년, 우리나라 농민들은 9월 칸쿤 WTO 각료회의 소식을 접하고 저지투쟁에 나설 것을 결정한 뒤 원정투쟁단을 꾸렸다. 전체 200여명 투쟁단 중 농민 120여명이 참가했다. 농민단체가 대규모 원정투쟁단을 꾸린 건 2003년 칸쿤투쟁이 처음이었다.

칸쿤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비행기표 예약을 맡은 전농·전여농 실무자들은 상황실까지 꾸려 비행기표를 구했다. 우리는 4개 조로 나눠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칸쿤으로 갔다.

9월 3일 칸쿤에 도착한 선발대에게 나는 두 가지 요구를 했다.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상여를 제작하라는 것. 상여를 3일 만에 다 준비했더라. 각목부터 틀거리까지 상여에 필요한 준비물을 통역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준비했는지, 역시 전농의 힘은 대단하다고 느꼈다.

상여를 앞세우고 농민투쟁단은 칸쿤투쟁을 전개했다. 9월 10일 세계농민행동의 날, 농민들은 반(反)세계화를 상징하는 다양한 도구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다운! 다운! WTO!” 구호를 외쳤다. 행진 도중 킬로미터 제로의 바리케이드를 맞닥뜨린 그때, 이경해 열사가 바리케이드 위로 올라가 “WTO가 농민들을 죽인다”고 외치며…. 아, 이경해 열사여!

11일 이경해 열사 추모제가 열린 분수대 광장은 해방구였다. 멕시코 농민단체 대표자는 이경해 열사의 죽음은 ‘WTO에 의한 타살’이라며, 협상 저지를 위해 멕시코 농민이 앞장서 싸우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12일 추모집회엔 베네수엘라 외무차관, 환경단체 ‘지구의벗’ 대표가 참여해 “WTO가 농민을 죽였다”며 각료회담 중단을 요구했다. 정작 각료회담에 참석한 한국 측 대표단은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아 한국 투쟁단의 원성을 들었다.

그리고 13일 세계민중행동의 날, 우리는 킬로미터 제로의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렸다. 그것은 WTO 장벽을 걷어낸 투쟁이었다.

칸쿤투쟁은 농민운동 진영에 세계 민중과의 ‘반WTO 연대전선’ 강화 계기를 마련했다. 지금의 전농은 국내 현안투쟁에 전력하다 보니 국제연대투쟁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하는 듯해 아쉽다. 개방농정에 맞서 국내 현안투쟁과 국제연대투쟁을 함께 하며 대안을 찾아가자.

 

토론③ - 국제 농민연대로 새 체제 향해 나아가야

/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농업 수치만 보면 농민들에게 ‘농사짓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농업소득만 봐도 1,000만원도 안 되는데 경영비는 2,000만원이다. 사명감이나 숙명으로 농사지어야 할 상황이다. WTO는 농촌에서 농민을 몰아냈다. 점령군처럼 농촌을 파멸에 이르게 했다.

WTO체제 이후 농정은 본질을 외면했고 겉보기엔 좋았으나 현지에서 외면받는 정책뿐이었다. 농민단체가 아닌 정부가 정책을 주도하면서 결국 농민단체도 서서히 빨려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마치 독립운동처럼 처음엔 다 같이 투쟁하다 시간이 지나면 변절하거나 정권에 포섭되듯 말이다.

농민운동의 많은 세력이 빠져나갔고, 농민 대다수는 근근이 살아가며 고령화돼 힘조차 잃어버렸다. 뜻을 잃지 않은 이들 소수만 남아 투쟁하는데 정부 힘은 계속 커지고 있으니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연구자로서 참으로 우려스럽다. 농민운동 진영 내에서도 같은 주제인데 정파에 따라 나뉘어 계속 반목한다면, 그저 각자도생하는 단체로 남는다면 대 정부 투쟁이나 반세계화 투쟁에서 연대가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 WTO체제는 한계를 맞았다. 주도자인 미국조차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WTO 규정을 무시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 위기, 먹거리 위기, 기후위기까지 더해져 전환의 시대, 새로운 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아직은 선언에 그치고 있지만 유엔 농민권리선언이 만들어진 건 큰 의미다. 이를 각 나라, 국제기구에 녹여낼 수 있도록 농민단체들이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공정한 무역 생태계를 살리는 새로운 체제를 위해 상위로는 유엔 국제기구를 아래로는 정부에 촉구하며 국제연대를 이뤄내야 한다. 이에 ‘식량안보법’을 제정하고, ‘향촌진흥’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며 미래의 새로운 사회 가치를 ‘생태문명 건설’로 잡고 있는 중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매우 시사적이다. 독립, 해방 국가로 살기 위해 농업은 필수다.

 

토론④ - 아이들 미래 위해 학부모·농민 손잡자

/ 이빈파 화성먹거리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학교급식 운동을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왔다. 2003년 11월 11일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킨 이래, 시민사회는 학교급식에서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만드는 주민발의 조례를 전국 76% 광역·기초지자체에서 만들어냈다.

정부는 주민발의 조례 속 ‘우리농산물 사용 지원’이라는 용어가 WTO의 ‘내국민 대우원칙(수입품·국산품을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에 어긋난다며 ‘우리농산물’ 표기 금지 및 주민발의 조례의 수정 또는 파기를 요구했다.

급식운동진영에선 이에 반대하며 더 많은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어 내겠다고 답했고, 정부에 “WTO 협상을 폐기하라”며 맞섰다. 2005년 9월 5일, 대법원은「전라북도 지역산 친환경식재료 사용 학교급식지원조례」가 WTO의 ‘정부조달에 관한 협정’ 상 내국민 대우원칙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정부 논리에 맞서 싸우고자 전문가들과 함께 법 공부를 하던 중, 내국민 대우원칙은 ‘같은 종류의 농산물’에 대한 대우기준임을 확인했다. 따라서 지역산 친환경농산물은 같은 농산물이어도 다른 종류로 간주돼야 하므로 전북 조례 파기행위는 잘못됐다는 것을 알리기 시작했다. 결국 2006년 2월 외교통상부에서 “국내 농산물 사용 학교급식에 대한 양허안을 WTO에 제출한다”는 공문을 보내왔고, 2013년 도하개발의제(DDA) 협상 과정에서 양허안이 통과돼 정부 차원의 ‘학교급식 우리농산물 사용’ 공표가 이뤄졌다.

식량자급을 꿈도 못 꾸게 만든 정부에 맞서, 우리는 급식운동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 왔다. 운동 과정에서 학부모가 대거 결합했고, 학부모와 농민이 손잡고 함께했다. 무엇보다 ‘반대운동’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긍정적 운동’, 즉 대안을 만드는 운동을 전개했기에 급식운동은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 농업을 되살리고, 아이들이 이 땅의 농산물을 먹으며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다시 학부모와 농민이 손잡고 함께 싸우자.

 

토론⑤ - 개방농정 30년 투쟁, 대안은 `농민 3법’

/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수입개방 체제 30년은 투쟁의 역사였다. 전농이 그 투쟁에 뛰어들기 전 역사로는 1985년 ‘소몰이 투쟁’이 있다. 정부의 무분별한 소 수입으로 송아지를 사서 어미 소로 키운 뒤 새끼를 낳으면 두 마리를 팔아도 처음 샀던 송아지값이 안 됐다. 이것이 농민이 대중 투쟁에 나선 계기가 됐다. 그 싸움이 이어져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라운드 개방 투쟁으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2003년 이경해 농민이 ‘WTO가 농민을 죽인다’라고 외쳤듯 농민들은 죽음과 파산으로 내몰렸다. 농민 수도 급감했다. 나도 20년 넘게 농사지었으나 동네에선 여전히 막내다. 더는 후계농이 들어오지 않는다. 1987년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제를 앞세워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지만, 농민은 최저가격(공정가격)을 만들지 못해 소득 감소가 지속됐다. WTO, 신자유주의 체제에 따른 농민 피해에 정부는 대농체제를 권장했지만, 이 과정에서 인력 부족은 농약과 화학비료로 대체돼 기후위기에 놓였고, 농민소득은 계속 줄어 현재 농가와 도시민 소득 차이는 2배 이상 벌어졌다. 현재 우리의 대안은 ‘공정가격과 생산비 보장’, ‘양곡관리법 개정’, ‘필수농자재법 제정’, ‘농민기본법 제정’이다. 농민기본법은 실제로 농사짓는 ‘진짜 농민’을 농업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법이다. 내용은 △여성농민을 동등한 농민으로 대우 △농산물 가격‧농민소득 보장 등이다. 이것이 실질적인 대안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사회 - WTO 가는 곳 어디서든, 농민은 투쟁한다

/ 금시면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사무처장

모건 오디 비아캄페시나 사무총장 및 김정열 국제조정위원으로부터 비아캄페시나의 대안무역체계 수립 관련 계획을 들으며, 우리 또한 ‘농민 주도적 대안시장’은 무엇인지, 자유무역은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진정으로 공정한 지역 차원의 무역모델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아캄페시나가 선도적으로 고민하는 것을 전농·전여농도 함께 고민해 새로운 무역체계를 만들어야겠다.

이빈파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유통·소비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농민·도시민 간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재확인했다. 농민들도 ‘국민농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왔고, 현재 많은 농민회원이 지역에서 로컬푸드(지역먹거리) 운동을 진행 중이다. 실천과 투쟁의 현장에서 우리 모두 함께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비아캄페시나>(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저) 책자를 보면 이런 간결한 문구가 있다. “WTO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모이든, 우리(농민)도 모일 것이다”라는 문구다. WTO가 가는 곳 어디든, 그곳은 농민의 투쟁현장이다. ‘우리가 이경해다’라는 마음으로 반세계화·반WTO·반FTA 투쟁을 해야겠다. 박경철 연구위원 표현대로 물극필반(物極必反), 즉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 반세계화 투쟁 20년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우리 가슴에 담고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힘차게 진행하자.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