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콩 생산기반 보호에 힘쓰겠다더니, 수입 콩 사용에 ‘앞장’

농식품부 인가 콩가공식품협회, 회원사에 TRQ 수입 콩 제공
487% 관세율 5%로 적용해 들이는 수입 콩, 한 해 약 20만톤
국내 수요 충당 목적이나 결국 식품 대기업 ‘수익확대’ 용으로

  • 입력 2023.09.10 18:00
  • 수정 2023.09.10 19:16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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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정부가 저율관세할당(TRQ)으로 들여오는 콩 대부분이 식품 대기업 주머니로 흘러가는 실정이다. 심지어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 인가를 받은 한국콩가공식품협회에선 국내 콩 생산기반의 보호를 협회 목적에 두고 있지만 수입 콩 유통을 주요한 업무로 삼아 연간 약 3만톤의 수입 콩을 회원사인 식품 대기업에 제공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1993년 농식품부가 인가한 한국콩가공식품협회는 정관에 협회 목적을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우수한 콩가공식품을 생산 공급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여 콩가공식품의 수요기반을 구축하고 나아가 농업인의 소득향상과 국내 콩 생산기반의 보호에 힘쓰고 회원 상호 간에 협력을 통하여 콩가공식품산업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협회가 진행 중인 유일한 사업은 원료 콩 공급 사업이다. 수입 콩 비중이 전체의 80% 이상이고 국산 콩 공급 비중은 20%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사실상 회원사에 TRQ 수입 콩을 공급하는 게 협회의 가장 큰 업무인 셈이다.

협회는 TRQ 공매(수입한 농산물을 최고가 낙찰 방식으로 판매하는 것)를 비롯해 직배(정부가 설정한 일정 가격으로 업체에 배정하는 것, 농식품부는 개별 업체가 아닌 단체나 협회에 직전 2개년 사용물량을 비율로 계산해 물량을 배정함)까지 연간 3만톤의 수입 콩(대두·콩나물콩)을 회원사에 공급하고 있다. 한국콩가공식품협회 회원사는 △CJ제일제당 △풀무원 △아워홈 등 유수의 대기업이 포함된다.

설립 당시 인허가만 진행했을 뿐 현재 협회 운영을 직접 관리·감독하지 않고 농식품부 예산을 지원받아 협회가 진행하는 사업도 없지만, 설립 목적이 정관에 분명히 명시돼 있는 만큼 수입 콩 공급 일색인 농식품부 산하 협회의 사업에 농식품부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는 실정이다.

아울러 한국콩가공식품협회뿐만 아니라 TRQ 콩 수입권 공매에 참여하거나 직배 물량을 공급받는 협동조합과 연합회 등의 단체 모두 대기업을 회원사로 두고 있어 저율관세 수입 콩이 대기업 ‘배 불리기’ 용으로 쓰인다는 비판 또한 피할 길 없어 보인다. 한국콩가공식품협회처럼 직배 물량을 배정받는 한국장류협동조합 등의 회원사 역시 △대상 △샘표 △몽고 등의 대기업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공매보다 그 물량이 훨씬 많은 직배는 올해 약 19만6,000톤 반입이 예정돼 있으며 현재까지 17만6,000톤이 도입됐다. 단가는 kg당 1,400원 정도다. 이마저도 지난해엔 kg당 약 991원에 불과했다. 2020년과 2021년의 직배 단가 역시 각각 kg당 937원과 941원으로 현저히 낮은 편이었다. 최근 3년 대비 올해 TRQ 수입 콩 직배 단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편이지만, 국산 콩 도매가격에 비하면 여전히 5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지난 6월 국산 콩 도매가격은 상품 기준 kg당 5,280원이며, 이마저도 수확기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5.6%, 11.8% 하락한 값이다.

487%인 관세율을 5% 저율관세로 낮춰 들여오는 수입 콩의 가격 경쟁력이 국산보다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문제는 낮은 직배 단가가 수입 단가 및 환율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발생하는 손해를 ‘농산물가격안정기금’을 활용해 메꾼다는 점이다. 이에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022년 회계연도 결산 분석을 통해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콩 등의 TRQ 수입 물량이 증가 중인 가운데, 국제 농산물 가격과 환율 상승으로 수입 비용 또한 증가하고 있으나 판매 과정에서 직배 가격은 크게 상승하지 않아 수입 및 판매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농산물가격안정기금의 재정건전성 관리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국산 콩 사용을 장려하고 자급률 제고를 위해 온 힘을 쏟아도 모자란데, 농식품부 산하 협회는 수입 콩 공급에만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 사이 식품 대기업은 국산에 비해 턱없이 낮은 직배 단가로 원재료를 공급받아 이익을 챙기고 있고, 나아가 정부는 ‘농산물의 원활한 수급과 가격안정을 도모하고 유통구조 개선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한 농산물안정기금을 TRQ 직배와 수입 단가 차이로 발생한 손해 메꾸기에 활용하고 있다”며 “대기업의 이익을 위한 TRQ 운용은 적절치 않으며, TRQ 수입 콩 저가 공급이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 안정이 아닌 대기업 이익만을 위하고 있는 만큼 개선해야 한다. 2024년 예산안에서도 수입쌀 예산(약 612억원)과 농산물 수입 비축 예산(약 409억원)을 확대했는데, 대기업 주머니 채우기 용의 농산물 수입 관련 예산을 당장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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