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과실은 영근다

  • 입력 2023.09.03 18:00
  • 수정 2023.09.05 15:39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민족의 명절, 추석 연휴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28일 전북 장수군 장수읍 개정리의 한 과수원에서 농민들이 명절 선물용으로 쓰일 홍로 사과를 수확하고 있다. 장수에서 3,000평 규모로 사과 농사를 짓는 김석봉(53)씨는 “냉해와 병해로 인해 수확량이 절반 가까이 줄 것 같다”면서 “이번 명절에 장수 사과를 많이 찾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민족의 명절, 추석 연휴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28일 전북 장수군 장수읍 개정리의 한 과수원에서 농민들이 명절 선물용으로 쓰일 홍로 사과를 수확하고 있다. 장수에서 3,000평 규모로 사과 농사를 짓는 김석봉(53)씨는 “냉해와 병해로 인해 수확량이 절반 가까이 줄 것 같다”면서 “이번 명절에 장수 사과를 많이 찾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기후위기의 시대, 농민만큼 고달픈 직업도 없을 것이다. 도시가 경험하는 이상기후는 대개 불편함과 답답함 혹은 일시적 재산 피해 정도지만 농민들은 곧바로 소득과 생계에 지장을 받는다. 도시민으로 치면 월급이나 연봉이 삭감 또는 중단되는 일에 해당한다.

농민 중에서도 가장 고단한 건 과수농가들이다. 작기가 짧은 밭작물의 피해는 보통 계절 단위로 일어나지만 과수농가는 1년 동안 닥치는 모든 재해를 고스란히 다 받아내야 한다. 그리고 최근 몇 년의 재해는 냉해와 습해, 가뭄과 홍수, 태풍과 폭염, 우박과 서리 등이 한 해 동안 연쇄적으로 닥쳐오는 양상이다.

올해도 그랬다. 늦겨울~초봄 들쭉날쭉했던 기온에 예년보다 일찍 핀 꽃들이 냉해를 입으면서 일찌감치 착과량 감소가 예견돼 있었다. 여기에 여름철 장마·홍수의 영향으로 질병과 무름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덜했지만 우박·태풍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마늘은 냉해를, 고추는 우박을, 배추는 습해를, 콩은 홍수를 맞았지만 과수는 몇 달에 걸쳐 이 모든 걸 다 겪었다.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자고로 추석이란 무르익은 오곡백과로 친지들과 풍성한 식음을 나누는 날이다. 하지만 올해 ‘백과’의 사정은 좋지 않다. 과일은 귀하고 정상과는 더 드물다. ‘과일값 폭등’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유통가에선 실속과일, 대체과일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농산물값 폭등의 이면엔 농민들의 눈물이 있다. 우리 정부는 물가 안정에 있어 농산물 가격 상승을 최우선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농산물 가격에 폭등이 일어났다는 건 상식 이상으로 작황이 무너졌다는 뜻이며 이 상황에선 대다수 농가가 정상 소득을 올릴 만한 수확량을 확보하지 못한다. 가격이 폭락하든 폭등하든 눈물을 흘리는 것이 농민들의 삶이다.

사과 19%, 배 22%, 복숭아 12%. 정부의 생산량 감소 전망치는 이 정도지만 현장의 체감은 그 두 배 이상이다. 특히 과수는 소위 정상과가 아니면 제값을 받지 못하는 특징이 있어 표면상의 피해보다 실제 피해가 훨씬 커진다. 또한 과수에 한 번 닥친 재해는 내년, 내후년의 수세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허탈한 심정을 뒤로하고, 농민들은 오늘도 밭으로 나가 과일을 따고 있다. 경제적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서일 것이고, 내년 농사에 대비하기 위해서일 것이고, 혹은 출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래처나 소비자를 위해서일 것이다. 무엇보다 얼마 안되나마 긴 기다림 끝에 영글어 가는 열매들을 그대로 두지 못하는 마음이 가장 클 것이다.

그 무거운 발길과 손길 덕에 우리는 이번 추석에도 친지들과 둘러앉아 과일을 깎아 먹을 수 있다. 올 추석의 과일은 비싸거나 못나거나 작은 것들이 많을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농민들의 노고와 한숨을 떠올린다면 가격이나 외관을 떠나 달콤 새콤한 맛을 좀 더 기껍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