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명절 제수·선물용 사과 ‘홍로’ 가격이 치솟았다. 지난달 한때 10kg 도매가격이 8만원대를 돌파. 평년의 두 배에 가까운 가격이다. 부담스러운 가격에 소비자들도 지갑을 열기 두렵지만, 농민들의 고충도 만만찮다. “사과가 없어서 못 따는데 값이 오르면 뭐하나”라는 푸념이다.
홍로 주산지인 전북 장수 사과밭엔 예년에 비해 확연히 빨간색이 줄었다. 봄 개화기에 냉해가 덮치더니 7월엔 한 달 내리 비가 쏟아졌다. 가뜩이나 착과 수가 줄어든 와중에 탄저병이 기승을 부린 것이다.
피해가 덜한 편이라는 고문재씨의 과원도 썰렁하긴 매한가지다. 사과가 덜 달리면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고, 잎이 무성해지면 약제가 사과에 닿지 않는다. 탄저 피해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재해의 악순환이다.
농가마다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의 수확량 감소. 그나마 상품성이 없어 아예 출하를 포기하는 농가도 있다. 고씨는 “가격이 높아 피해가 덜한 극소수 농가는 이익을 볼지 모르겠지만 장수 전체에 들어오는 돈은 반토막이 나고 있다. 예년만큼 버는 농가가 15%나 될까, 적어도 30%는 심각한 적자를 볼 것”이라고 탄식했다.
높은 가격도 달갑지만은 않다. “언론마다 가격이 너무 높다고 떠들어 대니 농민 입장에선 불안하다. 가뜩이나 유통비용이 높아 농가소득은 생각보다 낮은데, 폭등 이슈로 소비까지 침체될까 걱정”이라는 것이다. 명절을 겨냥한 홍로 출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 급작스런 소비부진이 겹친다면 가격은 예상보다 크게 떨어질 수도 있다.
다만 적어도 현시점에서 7만~8만원의 도매가격은 일부나마 농가경제를 지탱할 수 있을 만한 가격임은 분명하다. 물량 자체가 귀해지다보니 하품 가격마저 평년 상품가격에 육박(3만~4만원대)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홍로농가 대부분이 근심과 우려 속에서도 건질 수 있는 사과를 건져내려 구슬땀을 흘리는 분위기다. “사과 한 알에 농부 손길이 60번 간다”는 현장의 격언이 있듯, 1년 내내 공들여 온 사과 한 알 한 알을 포기할 수 없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위안거리는 또 하나 있다. 흉년을 맞은 오렌지의 국내 수입량이 급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렌지와 국산 과일의 대체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당사자인 농민들은 확실히 그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고씨는 “재해 때문에 해마다 기복은 있지만, 수입과일이 덜 들어오기만 하면 한국 과수농사는 지을 만하다. 재해만큼 힘든 게 수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