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늪 … 중첩된 재해, 중첩된 복숭아 피해

[추석 앞둔 과수농가 - 괴산 복숭아]

  • 입력 2023.09.03 18:00
  • 수정 2023.09.03 19:3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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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3~5명의 농가가 참여하고 있는 충북 괴산 박형백씨의 복숭아 출하 사무실. 예년 이맘때면 매일 100상자씩 출하하느라 분주했겠지만 박씨는 한가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았다. 냉해와 폭우, 병충해 등 한 해를 관통한 재해의 영향으로 수확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1일 20~30상자 출하가 고작이며 심지어 이날은 작업물량이 아예 없는 날이었다.

박씨는 로컬푸드·생협·관행유통 등으로 복숭아를 나눠 출하해 왔다. 하지만 하루 20상자면 로컬푸드 한 군데 납품으로 끝나는 양이다. 생협 납품 차질로만 하루에 1,000만원 가까운 매출손실이 나고 있다.

그나마 납품하는 물량도 클레임이 줄을 잇는다. 박씨는 “외관이 울퉁불퉁한 건 냉해 때문이지만 더 골치는 비다. 과일이 밖에서부터 썩는 게 아니라 안에서부터 썩으니, 출하할 땐 멀쩡하던 게 소비자에게 도착하면 문제가 생기는 거다. 농민들로선 도리가 없는 문제”라고 호소했다.

충북 괴산군 불정면 복숭아밭에서 박형백씨가 과실을 살피고 있다. 부패와 낙과가 속속 진행 중이지만 개중에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도 눈에 띈다.
충북 괴산군 불정면 복숭아밭에서 박형백씨가 과실을 살피고 있다. 부패와 낙과가 속속 진행 중이지만 개중에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도 눈에 띈다.

괴산은 지난 7월 대규모 홍수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홍수는 7월 15일이었지만 그 전후로도 비는 꾸준히 내렸다. 당도가 떨어진 ‘물복숭아’는 당연히 가격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당도가 회복된 지난달 중순부터는 착과불량·부패·낙과현상 때문에 정작 내다 팔 물량이 없어졌다.

복숭아는 제수용품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일이라 선물용으로 수요가 많다. 한 농가가 수확시기별로 여러 품종을 안배해 재배하기 때문에 6월부터 9월까지 출하가 계속 이뤄지긴 하지만, ‘명절 특수’가 확실히 존재하는 품목이다. 그러나 올 추석만큼은 특수를 누리는 농가가 극히 드물다.

박씨는 최근 몇 년의 농업 환경을 “재해의 일상화”라고 표현했다. 그는 “20년 전 농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재해가 이렇게 중첩되는 일은 없었다. 기존에 쌓아온 농사 데이터, 작업 적기가 이젠 맞지 않게 됐고 그저 색깔 보고 때가 된 것 같으면 거기에 따라가기 급급하다”며 “기후위기의 제일 큰 피해자는 과수농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량이 적고 흠과가 많아도 수확작업을 그만둘 수는 없다. 과실을 제때 따내지 않으면 내년에 꽃눈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농민들에게 한층 크게 와닿는 건 역시 ‘품위별 가격 양극화’다. 크고 예쁜 과일을 선호하는 국내 과일 소비풍조가 상품-하품 가격을 왜곡시키고 있으며 올해처럼 상품이 드물 때 이것이 농민들에게 더 큰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박씨는 “‘눈으로 먹는 과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조금 못생겨도 맛있으면 괜찮다’라는 인식이 퍼진다면 소비자에게도, 농민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 같은 풍조라면 소비자들은 계속 비싼 과일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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