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배는 대표적인 제수용품이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일상소비가 잘 이뤄지지 않지만 제사상에만큼은 빠져선 안될 과일. 때문에 일 년에 두 번, 추석과 설이 배 농가들이 기다리는 절대적 대목 시즌이다.
모든 과수농가가 그렇듯 올해 배의 상황도 참담하다. 이상고온 현상으로 예년보다 일주일가량 꽃이 빨리 피었고 곧바로 비가 내리는 바람에 조기 수정을 할 수도 없었다. 이후엔 모두가 알고 있는 냉해의 직격. 냉해 이후 남아 있는 꽃으로 늦은 수정을 해 놓으니 배의 품위마저 형편없이 망가졌다.
충남 아산 김태선씨의 과원은 지난 7월 보험사 착과량 조사에서 평년대비 40% 감소 소견을 받았다. 조생종부터 차례로 수확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저장창고엔 빈자리가 더 많은 상태다. 농사경력 45년, 갈수록 잦아지는 재해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농업재해보험의 효과가 제한적인 이상 농가로선 재해가 와도 잔여물량 출하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현재 배 가격은 작황부진으로 평년보다 높게 형성되고는 있지만 홍로사과처럼 폭등이라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요 몇 주 ‘원황’ 품종 15kg 도매가격은 4만원대 중반에서 5만원대 중반 사이로 평년(약 4만5,000원)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추석을 겨냥해 곧 본격 출하할 ‘신고’ 또한 가격 상승폭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올해처럼 품위가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선 품위 간 가격격차도 큰 부담이다. 홍로는 하품 가격도 무시 못할 만큼 올라와 있지만 배 시세는 생산비를 보전받기 빠듯하다. 김씨는 “한 박스 20과짜리 배와 30과짜리 배는 값 차이가 두 배나 난다. 30과짜리 배에 오히려 봉지 등 자재비가 1.5배 더 들기 때문에 실제 격차는 더 크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김씨는 그간 신뢰관계를 구축해온 직거래 소비자들이 있어 일반적인 농가보다는 안정적으로 수확물을 판매하고 있다. 그는 “6월 중순 봉지 씌울 때까지만 해도 ‘올해는 딸 게 하나도 없네’ 싶었는데 이후에 그래도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더라”라며 “배 농가들 모두 힘들지만, 가격이 예년보다 20% 정도만 높게 나와 준다면 어떻게든 한 해를 견딜 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확량은 줄고 품위는 떨어졌다. 게다가 과수는 한번 수확량 급감을 겪으면 내년 수확량에도 악영향이 미치고 나무 자체의 수명마저 단축될 수 있다. 여러모로 웃을 일이 없는 시기지만, 그래도 ‘배의 계절’은 성큼 다가왔다. 국산 배의 70%는 여전히 신고, 그리고 신고의 태반은 여전히 추석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