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발전에 파괴되는 농산어촌 … 결국 떠나가는 주민들

생태계와 공동체마저 붕괴, 가족 같던 이웃이 ‘원수’ 되는 상황
부푼 꿈 안고 농촌 찾은 귀농인도 환경·안전 등을 이유로 ‘탈농’

  • 입력 2023.08.13 18:00
  • 수정 2023.08.13 22: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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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김정수 풍력반대 남정면 양성리 투쟁위원장이 지난 8일 풍력발전시설 예정지인 동대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한승호 기자
김정수 풍력반대 남정면 양성리 투쟁위원장이 지난 8일 풍력발전시설 예정지인 동대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한승호 기자

 

“업자와 그에 매수된 주민들이 한 편이 됐다. 발전사업을 두고 찬반으로 나뉜 주민들 사이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예정지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주민들은 찬성 목소리를 높여 발전기 바로 아래에서 살아가야 할 주민들의 목소리를 소용없게 만들고 있다. 가족 같던 이웃이 한마디로 원수가 됐다. 서로 얼굴도 안 볼 지경이 된 지 오래다.”

풍력발전 사업이 예정된 경북 영덕군 남정면 양성리 주민의 이야기다.

이처럼 풍력·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은 농산어촌 생태계와 공동체를 갈가리 찢어내고 있다. 무분별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또 다른 폐해인 셈이다. 아울러 정부는 고령화·공동화되는 농촌을 되살리기 위해 각종 정책사업과 예산을 투입 중이지만, 신재생에너지는 농산촌에 오랜 기간 거주해온 주민들 사이를 찢어내는 것은 물론 부푼 꿈을 안고 인생 제2막을 설계하며 농산촌을 찾은 귀농인을 내쫓고 있다.

경북 영덕군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 중인 김정수 풍력반대 남정면 양성리 투쟁위원장은 “풍력발전 예정지 반경 1km 안에 거주 중인 주민들은 지난 5년간 생업을 포기한 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풍력발전을 반대 중이다. 대규모로 산림을 파괴하는 풍력발전은 결코 친환경 재생에너지가 아니고 생태환경은 물론 군민들의 생존권까지 위협한다. 또 2021년 12월 기준 44기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데 이어 11개소(156기)의 발전사업이 예정돼 있는 영덕군에 풍력발전기가 그대로 들어선다면 지방 소멸의 시대 영덕군으로 귀농·귀촌할 주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그대로 영덕군이 소멸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남정면 양성리 일원에 계획 중인 영덕 남부풍력발전은 3.3MW 규모 발전기 30기가 들어서는 대규모 사업으로, 20년 동안 99MW 풍력발전으로 얻는 수익만 약 5,200억원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예정지인 동대산 일원은 지난 1994년 자연 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고 이처럼 깨끗한 환경에서 주민들 대부분은 송이 재배로 생계를 유지 중인데, 풍력발전기가 들어서면 송이 채취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을뿐더러 생계유지가 불가할 경우 주민들은 수십 년간 살아온 마을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8일 청송군청 앞 농성장에서 만난 청송환경공익위원회 소속 농민 역시 “평생을 도시에서 살다 은퇴 후 귀농하려고 산 좋고 물 좋은 청송군에 들어왔다. 하지만 집을 지으려던 곳 바로 앞에 풍력이 들어선다는 얘기에 반대 활동을 시작했다”며 “집은 아직 짓지도 못했고, 풍력발전이 용량을 더 키워 들어선다면 당초 귀농을 결심했던 마음을 접고 청송군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주변 지인도 은퇴 후 귀농을 하겠다며 찾아오곤 하는데, ‘공기 좋고, 경치 좋다’ 감탄하다가도 바로 앞에 풍력이 들어선다고 하면 여긴 안 되겠다며 마음을 접곤 한다”고 전했다.

이어 해당 농민은 “저출산과 지방소멸을 사회문제로 지적하면서도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농산촌 인구유입을 막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는 이 현실을 개선할 생각이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첫 단추부터 어긋난 면봉산 풍력이 이대로 추진되고 심지어 용량을 키워 설치된다면 결국 주민들이 다 떠난 가운데 풍력발전기만 돌아갈 것이다”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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