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끝나니 농민 걷어차는 여주 조합장들

여주통합RPC, 운영위원 중 농민대표 5인 전원 제명 결정

쌀값 결정에 농민 참여 막혀 … “수매가 삭감 획책” 비난

성난 농민들 항의방문에 RPC 측 “이사회서 재논의할 것”

  • 입력 2023.07.31 19:23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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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여주통합RPC가 RPC 운영위원 중 농민대표 5명을 전원 제명해 농민들이 분개하고 있다. 여주시농민단체협의회가 31일 여주통합RPC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여주통합RPC가 RPC 운영위원 중 농민대표 5명을 전원 제명해 농민들이 분개하고 있다. 여주시농민단체협의회가 31일 여주통합RPC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대표이사 윤주병, 여주통합RPC)이 RPC 운영위원 중 농민 위원들을 일괄 제명해 논란이다. 농협이 쌀 수매가를 삭감하고자 농민과의 협의체계를 일방적으로 깨뜨렸다는 비판이 팽배하다. 농민들은 긴급히 여주통합RPC에 모여 집회와 항의로 분노를 표출했다.

통합RPC 운영위원회는 RPC 운영에 관한 전반적 사항과, 특히 그 해의 ‘쌀 수매가’를 협의하는 기구다. 여주통합RPC 운영위원은 본래 RPC 대표이사와 회원농협 조합장·이사, 농협중앙회 시지부 및 시청 관계자, 생산자·소비자단체 등 14명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이 중 생산자 대표가 5명(농민단체장 2명, 농가대표 3명)이었다.

그런데 지난 6일, 여주통합RPC 이사회는 돌연 규약을 개정해 이 5명의 농민대표를 운영위원에서 모두 삭제해버렸다. 농민대표들의 빈 자리는 총원을 14명에서 12명으로 줄이고 회원조합 조합장 1명, 회원조합 이사 2명을 증원함으로써 메웠다.

규탄발언하는 류병원 여주농단협 회장(여주시농민회장).
규탄발언하는 류병원 여주농단협 회장(여주시농민회장).

더 큰 문제는 농민들이 이 사실을 근 한 달 뒤인 지난 27일에야 인지했다는 것이다. 통합RPC 운영위원으로 참여해온 한 농민대표가 “올해는 왜 운영위원회 일정 얘기가 없냐”고 문의하자 RPC 측이 그제서야 운영위원 개편 사실을 밝힌 것이다. 지역 농업의 구조를 갈아엎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통합RPC 이사회(RPC 대표이사와 각 참여농협 조합장들로 구성)는 농민들과의 사전 논의 없이 밀실 회의를 진행했고, 결과 공지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농민들의 거듭된 추궁에도 여주통합RPC는 규약을 개정한 이유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농민들 사이에 ‘쌀 수매가를 마음대로 낮춰 RPC 경영여건을 완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겠냐’는 해석만이 돌고 있을 뿐이다. 지난 28일 가남농협 운영공개회의에선 이 건에 대해 “지난해 쌀 수매가 동결로 RPC 적자가 엄청났다”는 농협 측 발언이 나왔는데, 이 역시 농협의 수매가 삭감 의중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 개편된 운영위원회의 제1차 회의가 있던 31일, 여주통합RPC 앞엔 여주시농민단체협의회(회장 류병원, 여주농단협) 소속 농민 100여명이 모여 규탄 집회를 벌였다. 류병원 여주농단협 회장은 “쌀값을 떨어뜨리려 하는 의도가 너무나 뻔하다”라며 “전국 햅쌀 수매가 결정을 주도하는 지역인 만큼, 여주 쌀값이 떨어지면 대한민국 쌀값이 다 떨어진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특히 조합장 선거를 앞뒀던 지난해 ‘수매가 동결’에 뜻을 모았던 조합장들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농민단체들을 배척하려는 모습에 많은 농민들이 공분하고 있다. 현직 여주통합RPC 운영위원이면서 운영위원회 참석을 거부한 고석재 가남농협 이사는 “그렇게 적자를 못 견딜 것 같으면 지난해에 조합장들이 표 깎일 걸 각오하고 수매가 인하 설득에 나섰어야 했다”라며 “RPC 회원조합장 8명 중 7명이 이번에 재선했다. 올해 12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치면 조합당 15억원 손실인 건데, 결국 조합장들이 조합 돈 15억원씩을 선거자금으로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당초 여주통합RPC의 적자 위기를 지난해 수매가 동결로 돌려선 안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지역 농민 전주영씨는 “이천과 여주의 쌀 수매가가 4,000원 차이인데 이천 RPC들은 적자가 거의 안나고 여주통합RPC만 100억원 이상 적자가 난단다. 통합RPC가 자기 경영상 과실을 수매가 탓으로 돌리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고, 김영준 여주농단협 사무국장은 “조합마다 신용·경제사업으로 올리는 엄청난 수익은 얼마인지 공개하지도 않으면서, RPC가 통합되고 나선 RPC에서 적자 나면 큰일날 것처럼 떠들어댄다”고 지적했다.

여주 농민단체 대표들이 ‘농민이 배제된’ 여주통합RPC 운영위원회 회의장에 들어가 “이 회의와 회의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여주 농민단체 대표들이 ‘농민이 배제된’ 여주통합RPC 운영위원회 회의장에 들어가 “이 회의와 회의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한 차례씩 대표자 발언을 마친 뒤 농민들은 여주통합RPC 운영위원회 회의장에 들어가 “농민을 배제한 운영위원회를 인정할 수 없다”, “농민 운영위원들을 원상복구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운영위원회 이후 조합장들은 언론 취재를 거부하고 자리를 떴으며, 윤주병 여주통합RPC 대표이사가 농민들 앞에 나서 “(농민 운영위원 삭제는) 회의를 효율적으로 해보려 한 것”이라며 “농민단체들이 주신 얘기를 이사회에서 충분히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전했다. 

여주통합RPC는 다음달 7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운영위원 재개편 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주농단협은 이날 운영위원회가 원상복구되지 않을 경우 더욱 강한 투쟁으로 맞서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운영위원회를 마치고 나온 이병길 여주농협 조합장(오른쪽 두 번째)에게 한 농민이 항의하고 있다.
운영위원회를 마치고 나온 이병길 여주농협 조합장(오른쪽 두 번째)에게 한 농민이 항의하고 있다.
여주통합RPC 사무실에서 윤주병 RPC 대표이사가 농민들에게 둘러싸여 해명하고 있다. 농민들의 집요한 추궁과 윤 대표의 원론적 답변이 되풀이되며 한때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여주통합RPC 사무실에서 윤주병 RPC 대표이사가 농민들에게 둘러싸여 해명하고 있다. 농민들의 집요한 추궁과 윤 대표의 원론적 답변이 되풀이되며 한때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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