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민의 품을 벗어난 농협

  • 입력 2023.08.04 11:33
  • 수정 2023.08.04 13:2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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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통합RPC가 운영위원회 구성에서 농민 위원들을 퇴출시킨 일로 여주 일대가 시끄럽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여주통합RPC가 전국 쌀값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농협의 협동조합 정신이 어떻게 훼손되는지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농협의 주인이 조합원이라는 건 굳이 법이나 정관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협동조합’이라는 태생이 보장하는 바다. 건강하지 못한 조합이 간혹 조합원을 배반하는 일은 있지만 조합원은 그런 조합을 정당한 권리로써 응징하고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여주통합RPC처럼 지역농협들이 출자해 만든 조합공동사업법인(조공법인)은 조합원들이 아니라 조합, 실질적으로는 조합장들을 주인으로 한다. 조합원의 영향력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그 영향력이 법·제도적으로 명확하게 보장되지 않아 애매해진다. 조합장들끼리 모여 “농민들 무시하자”고 결정하면 그걸로 끝이며 농민들은 ‘항의’를 통해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조공법인은 그나마 여주 사례처럼 싸움이라도 가능하지만, 농협중앙회가 운영하는 거점통합RPC의 경우엔 상황이 더 안좋다. 수매가 결정 자체가 중앙 단위에서 이뤄지니 지역 농민들로선 수매가에 불만이 있어도 이의를 제기하고 다툴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농협중앙회라는 조직이 갖는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의 결집체지만 그 회원은 조합원이 아니라 조합(조합장)이다. 농협중앙회의 사업이 농민조합원의 의중을 반영하지 못하고 되레 농민조합원을 통제하는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 중앙회에서 지주회사로, 지주회사에서 자회사로 옮겨갈수록 농민들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농협은 명백히 조합원들의 조직이지만, 지역농협을 기반으로 쌓아올리는 조공법인이나 농협중앙회, 그 자회사들도 조합원들의 조직이라 말할 수 있을까. 누구의 의견이랄 것도 없이 제도와 현상이 이를 부정하고 있다.

이들 협동조합 ‘파생법인’들은 협동조합 정신을 보다 효율적으로 실현할 목적으로 만들었고 실제로 순기능도 다수 존재하지만, 한편으로 협동조합 정신을 뿌리부터 공격하는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기자는 농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조공법인의 난립을 경계하며 △농협중앙회를 지역농협들의 연합회 체제로 개편하고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조합원 직선제로 전환하자는 농협개혁 진영의 제안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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